며칠째 밤마다 서울소식만 쳐다봤다. IT강국은 세계최초로 집회시위의 인터넷 생중계를 가능케 했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낮 시간에도, 촛불시위 동영상 찾아보는 게 일이었다. 이 때문에 뒤늦게 마감에 쫓겨도 어쩔 수 없었다.

경찰의 폭력에 수없이 울컥거렸다. 80년 이후 30년 가까이 키워온 민주주의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는 참담함이었다. 그 속에서도 비폭력 원칙을 지켜내는 시민들에게 ‘위대하다’는 말보다 더 적합한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공안당국은 “‘평화’집회는 보장하지만 ‘불법’시위는 엄단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내놓는 게 전부였다. ‘평화’의 반대말은 ‘폭력’ 아니던가.

시민들의 높은 도덕성은 경찰들을 압도했다. 훗날 사가들은 이 순간을 뭐라 부를까. 5월항쟁, 6월항쟁에 이은 또 하나의 ‘항쟁’으로 기록될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 위대한 순간의 한복판에서, 비록 멀리서 바라만보고 있지만 한 장면 한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인터넷으로 잡아끄는 것 같았다.

▲ 지난 6월 2일 저녁 광주 구도심 금남로 일대에서 진행된 촛불집회장 무대 옆에 행사 주최측이 VTR을 통해 전날 새벽 서울에서 벌어진 경찰의 폭력진압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 광주드림
서울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광주에선 다소 생뚱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광주는 왜 이렇게 조용하지?” 물론 광주에서도 촛불집회와 거리시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6월 2일 저녁 금남로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난 50대 한 시민은 “서울 사는 친구가 그러는데, 광주는 왜 그렇게 조용하냐고 하더라. 내가 봐도 광주가 이렇게 차분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날도 촛불집회엔 500여명에 달하는 결코 적지 않은 시민들이 참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광주 안팎에선 ‘조용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라고 고상하게 부르면서도, 뒤에선 ‘저항과 폭력’이라는 또 다른 인식을 습관적으로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숫자의 문제인지, 격렬함의 문제인지 답을 찾아 금남로 촛불집회 현장에 나섰다. 실제 대부분 ‘서울이 저 정도면 광주는 수만의 인파가 연일 금남로를 가득 채워야 옳지 않느냐’는 무언의 기대치를 전제하고 있었다.

▲ 2일 저녁 7시가 조금 넘자, 시민들이 하나둘 경찰이 미리 차량을 통제해 확보해 놓은 금남로 촛불집회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바로 옆으로 차량이 지나다니는 '옹색'한 공간이다. ⓒ 광주드림
우선, 촛불집회가 벌어지는 ‘공간’에 대한 차이로 해석하는 부류. 촛불집회장에서 만난 시민 정영대(42)씨는 “서울 촛불집회의 진원지는 청계광장인데, 유동인구가 많고 자연스레 사람이 모이며 집중이 가능한 곳이다”며 “반면 광주의 촛불집회 장소는 충장로로 연결된 금남로 도로변이라 집중이 안된다”고 했다.

이날도 촛불집회는 경찰이 8차선 가운데 3개 차선을 집회장소로 내줬고, 시민들이 앉은 자리 바로 옆으로 차량들이 지나다녔다. 더욱이 광주는 최근 도시의 중심이 서구 상무지구로 옮겨지면서 동구 금남로 일대는 정치적 상징성만 남아 있을 뿐, 유동인구마저 적은 상태다.

현장에서 만난 서구의회 강은미 의원(민주노동당)은 급식에서 원인을 찾기도 했다. 이번 촛불시위의 출발은 중고교 학생들이라는 점에 주목한 결과다. 광주의 경우 초중고교 급식의 90%이상이 학교 직영체제인데 반해 서울지역은 태반이 위탁운영체제라는 점을 들었다.

▲ 광주경찰들이 금남로 왕복 8차로 가운데 3개 차로를 촛불집회를 위한 공간으로 통제하고 있다. ⓒ 광주드림
강 의원은 “아무래도 위탁보다 직영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보니, 서울지역에 비해 광주지역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공포나 절박감이 덜하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또 다른 40대 주부는 이와 관련해 “광주는 농도에 접해 있어서 ‘안되면 고향에서 가져다먹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반해, 서울은 온전히 사다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적 차이도 한몫 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부터 밤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으로 붙들어 놓는, 광주지역 학교당국의 강력한 ‘통제’도 역할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광주에서 학생들은 평일엔 찾아보기 힘들고 주말이 돼야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광주의 민주화 운동 역사와 연관지은 분석도 나온다. “광주는 원래 전국적으로 늦게 시작해 늦게까지 버티는 곳이다”는 것. 돌아보면 광주 80년 오월항쟁 때도, 그 시작은 서울이었다. 하지만 5.17 계엄조치 이후 서울을 비롯한 전국이 침묵에 들어갈 때 광주는 계엄군과 충돌하면서 10일간의 항쟁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내세웠다.

역시 역사적 관점에서 제기된 것인데, 이른바 ‘관망론’이다. 최근 서울 촛불시위에서 벌어진 경찰의 폭력은 광주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이미 80년 이후 문민독재시절까지 거의 매년 거리에서 보아왔던 모습이다. 물론 지금 서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충격이긴 하지만, 광주는 이미 대낮에 ‘학살의 충격’을 경험했던 터. 때문에 아무래도 광주에서 느끼는 충격이 덜하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

▲ 2일 저녁 광주 촛불집회 무대 주변의 인도. 비상시국회의 농성천막과 각종 피켓 등이 인도 주변을 차지하고 있다. ⓒ 광주드림
이밖에 한 60대 초반의 시민은 “광주는 그동안 맨날 앞장서서 두들겨 맞기만 했는데, 이번에도 앞장서야 한다는 법 있느냐”고 했고, 또 다른 이는 “광주에서 자칫 격렬한 시위가 벌어질 경우 수세에 몰린 당국에게 오히려 역전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어서 조심하는 것 같다”는 그럴듯한 해석도 내놓았다. 이 지역 시민단체 참여자치21 오미덕 사무처장은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켜보고 있을 뿐, 더 이상 안되겠다 싶거나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날 정도가 된다면 광주는 어느 곳보다 더 격렬한 형태로 폭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촛불 집회를 직접 준비하고 매일처럼 현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광주가 조용하다’는 시각 자체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다. 경찰과 물리적 충돌만 없을 뿐이지, 지금 광주가 결코 조용한 게 아니라는 것.

지난 주말 거리시위에서도 7000여명이 참석(경찰추산 4000명)했는데, 이는 같은 날 전국 집회로 보면 서울 다음으로 최대규모였다. 단순 계산법을 동원하더라도, 1000만명이 사는 서울에서 1만명은 1000분의 1인데 140만 인구의 광주에서 1000분의 1은 1400명이다. 광주에서 7000명이 모이는 것은, 서울에서 5만명이 모이는 것과 같은 수준이라는 셈이 된다.

또 다른 촛불집회 주최측 관계자는 5월 기념행사주간과 겹치는 바람에 광주의 촛불이 늦게 불붙은 점을 꼽았다. 광주에서 촛불집회가 처음 열린 건 지난달 10일. 서울에선 이미 촛불시위가 본격화된지 오래였다. 전남 여수에서도 첫 촛불이 8일에 타오른 바 있다. 물론 5.18전야제가 촛불집회 형식으로 치러지긴 했지만, 서울을 뒤따라가는 형국임을 부정할 순 없다.

‘조용한 광주’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당사자는 경찰이다. 이번 촛불시위 기간 광주경찰은 ‘엉뚱’한 이유로 전국적 조명을 받았다. 평소 하루에 대여섯 건에 불과하던 광주경찰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은 지난달 30일 하루에만 600건이 넘는 ‘칭찬’릴레이가 쏟아진 것이다. 서울 경찰이 갈수록 과격해지면서 잇따라 연행자와 부상자를 배출한 데 반해, 광주는 경찰의 ‘보호’아래 평화로운 거리시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29일의 경우 지역 대학생들이 경찰측과 ‘사전 협의’ 없이 갑자기 횃불을 꺼내 들었을 때도, 경찰은 이렇다할 제지 없이 묵묵히 교통 통제만 해줬다. 광주동부경찰서의 한 경찰은 “타깃이 여기 없으니까 조용하지”라고 했다. 이번 촛불시위의 타깃은 ‘청와대’인데, 광주에는 청와대는 물론 현역의원 한 명 없는 한나라당사가 전부. 때문에 시민들이 모여도 마땅히 갈 데가 없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시각에 대한 반론도 없지 않다. 최근 서울의 쇠고기 시위가 반정부 투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지방에서조차 시민과 경찰이 충돌이 벌어질 경우 감당키 힘들어질 수 있다. ‘조용한 광주’는 이를 우려한 경찰측의 ‘작전’에 불과하다는 설명도 있었다.

광주지역 일간신문 광주드림 행정팀 기자입니다. 기자생활 초기엔 지역 언론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주로 했는데, 당시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많이 절감했구요. 몇 년 전부턴 김광석의 노래가사 중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진다"는 말을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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