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3월 8일 김유열 EBS 사장이 취임 1주년을 맞이했다. 김유열 사장은 EBS PD 출신으로 취임 당시 사원들의 기대 또한 적지 않았다. 김 사장은 취임사에서 ‘꿈꾸는 EBS’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 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사장 취임 1년에 대한 소회가 궁금해 지난 2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EBS 사옥에서 김유열 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김 사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EBS 사장에 취임하신 지 어느덧 1년이 지났어요. 2년 차 맞이하신 소회가 궁금합니다.

“3월 8일이면 1년이 되는데 사장 취임 후 너무 힘들었어요. 1년 동안 거의 매일 새벽잠을 설쳤어요. 요새 지상파방송사 경영이 굉장히 어렵거든요. 부사장 할 때와 다르게, 사장 되고 나서 재정 전망을 보니 너무 어려운 거예요. EBS는 70%를 스스로 벌어 살아야 되는데 재정 안정성도 떨어지고, 사장이 됐다고 갑자기 무슨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죠. 비전을 펼치려면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데 바로 불어닥친 게 재정적인 어려움이었어요. 그래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가 지난해 3월부터 지속되고 있는 과제에요.

지난 1년은 돌이켜보면 심신이 굉장히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걸 하기 위해 착실히 기획하고 준비하는 시간이었어요.”

김유열 EBS 사장(사진= EBS 제공)
김유열 EBS 사장(사진= EBS 제공)

스스로 평가하신다면 몇 점 정도 줄 수 있나요?

“80점쯤 줄 것 같아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방송사 경영이 제 능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고 여러 가지가 다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어떤 비전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축소해야 했죠. 제가 하고자 했던 부분의 70%도 못하는 상황이어서 굉장히 인색하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EBS 사장으로서 하고자 했던 일은 뭐였나요?

“취임사에서 밝혔던 것은 크게 세 가지예요. 한국 사회 가장 베이스의 문제를 EBS의 학술 다큐멘터리의 방법을 통해 탐구해보고 싶었어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그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죠. 그래서 첫 번째로 저출생 문제를 짚어보고자 했고요. 두 번째는 한국 사회가 책을 너무 안 읽으니 독서 문제, 또 하나는 한국 교육 혁신의 문제예요. 임기 동안 이 세 가지 문제를 다뤄보겠다는 게 큰 꿈 중에 하나였는데 이것은 그래도 착실히 준비되고 있습니다.”

저출생 문제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얼마 전에 발표됐잖아요. 2022년도 합계출산율이라고 하는데 0.78명, 그리고 22년도 출생아수가 24만 명대로 떨어졌어요. 제가 태어난 6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출생아가 약 100만 명 시대였어요. 현재 그때의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하락해 10만 대까지 떨어진다는 인구 통계 예측이 나왔어요.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출생과 관련된 예산이 적게 집행되는 건 아니란 점입니다.

북유럽 국가들도 한때 저출생 문제가 심각했다지만 지금 합계출산율이 1.7명대, 프랑스 1.79명, 미국도 1.64명, 그다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아이를 낳는 이스라엘의 경우 2.9명이고 일본도 하향세였다가 몇 년 전부터 상향세로 바뀌어 1.3명대예요. 우리나라가 가장 낮은데, 이 문제를 전 세계 국가와 아주 저인망으로 샅샅이 비교 분석하고 원인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하거든요.

제가 보기에 한국의 저출생 대책은 지나치게 경제 중심 정책이에요. 출생 정책에 있어서 돈이 안 들어가더라도 바뀔 것이 있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예산 투자는 많이 하지만 점점 떨어지는 아주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해 있어요. 때문에 학술적으로 이런 현상에 접근해 문제의 근간을 제대로 분석해보자는 거예요.

이번에 저출생 통계가 발표됐을 때 모든 언론이 대서특필했지만, 문제를 깊이 있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EBS는 시사르포 제작하는 방송사가 아니잖아요. EBS만큼은 학술적으로 집요하게 접근해서 한국 사회에 하나의 의제로 던지고 지속적인 논의가 가능하도록 만들고 싶어요. 임기 동안 이 저출생 문제에 대해 깊이 파고 분석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독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나요?

“원래 책 읽기를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 많이 읽었고 부사장 되기 전까지는 일주일에 최소한 한두 권 열심히 읽었고, 또 읽기만 하지 않고 정리하면서 읽었어요. 최근 우리나라 국민들이 책을 너무 안 읽는데 그러면 앞으로 어떤 문제가 나올 것인지 생각해봤어요. 책을 어느 정도 안 읽냐면 성인 독서율이 192개 나라 중에 최하위권입니다.

그럼 책을 안 읽으면 나타나는 문제가 뭘까라는 거죠. 보통 지금 아이들에게 코딩 교육이나 소프트웨어 교육을 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할 것처럼 생각하는데, 실제 상황은 책을 엄청나게 읽은 사람들이 그 사회를 주도하고 지배하고 있다는 거예요. 특히 미국 중심으로 보면, 거대 IT기업을 이끄는 리더들이 어마어마한 해비 독서가들이죠.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이런 사람들이 다 엄청난 독서가들인데 그 어마어마한 독서 속에 인류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숨어 있다고 생각해요. 미국의 교육 체제를 보면 어마어마한 책을 읽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는 구조로 고등교육 시스템이 설계돼 있습니다. 한국의 고등교육 시스템은 책을 읽게 돼 있지 않아요. 고등학교까지는 한국도 책을 많이 읽는 나라지만요.”

EBS 일산 사옥 (사진= EBS 제공)
EBS 일산 사옥 (사진= EBS 제공)

앞서 재정적인 문제 언급하셨잖아요. 1년이 지났는데 그에 대한 답은 찾으셨나요?

“아니요. 해답 찾기 참 어려워요. 왜냐하면 한국 시장의 전반적 문제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죠. EBS 수입 구조에 광고보다 더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출판이거든요. 초등 중등 고등, 특히 수능 책 판매해서 그 수익으로 EBS가 공익 프로그램과 학습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학생 수가 엄청나게 줄고 있어요. 인구 문제죠. 게다가 학생 수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책을 사는 인구는 더 줄었어요. 책 판매량이 굉장히 떨어지고 있고 광고도 떨어지고 있어서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 이 부분을 어떻게 디지털 수익으로 대체할지 굉장히 연구를 많이 하는 중입니다.”

수신료 인상만 바라볼 수 없다며 수익구조를 다각화하겠다고 하셨는데 방안이 있을까요?

“첫 번째는 출판사업 광고사업 같은 전통적인 사업이에요. 그리고 디지털 사업 확장하는 부분은 오래전부터 준비해왔어요. EBS의 웹사이트만 8개가 있고, EBS는 타방송사와 달리 어떻게 보면 IT회사적 요소가 많아요. 저희가 원격 교육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근간이죠.

지금 정부에서 디지털 교육 강화를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인공지능 교육을 확대 부분을 시도교육청과 논의하고 있습니다. EBS는 몇년 전부터 인공지능을 통한 학습 서비스를 해오고 있는데, 저희가 콘텐츠도 제공하고 인공지능 솔루션도 제공해서 그런 서비스를 할 수 있게 갖추는 거죠. 이런 것들은 과거 전통적인 사업에서는 하지 않았던 디지털 부문 사업이에요.

그다음 원격으로 이루어지는 멘토링 사업, 예를 들어 지역에 있는 학생들과 멘토가 연결돼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멘토링 사업을 한 축에 두고 있고, 또 한편으로 유튜브 쪽을 강화하고 있어요. 유튜브 쪽에 교양 학습 콘텐츠들을 체계적으로 서비스하고 있는데 지난 1월부터 수익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요. 그리고 EBS의 평생학습 콘텐츠를 디지털 방식으로 구독하는 형태, 이런 걸 준비하고 있어요.

또 하나, EBS가 지금까지는 어떻게 보면 중앙방송에 그쳤거든요. 현재 지자체와 지역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관련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어요. 지역 상생팀을 별도로 둬서 지자체의 평생학습과 공간 사업을 EBS의 콘텐츠와 연계하는 사업인데, 이것도 지난해 후반기부터 확대하고 있고 어느 정도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이에요.”

EBS 프로그램 - 〈세계테마기행〉〈다큐프라임〉〈극한직업〉〈한국기행〉
EBS 프로그램 - 〈세계테마기행〉〈다큐프라임〉〈극한직업〉〈한국기행〉

사람들이 EBS를 많이 봐야 수입이 유지되잖아요. 시청률에 대한 고민도 있으실 것 같아요.

“맞습니다. 제가 편성기획부장 세 번 하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 고민해왔는데, 일단 프로그램이 좋아야 해요. 그런데 예를 들어 <세계테마기행>이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교양 프로그램 1~2등 했다고 하거든요? 하지만 광고가 꽉 안 차요. 광고에서도 EBS가 시청률에 비해 소외돼 있다고 보는 겁니다. 지난해에 광고 수입이 약 256억이었는데 EBS 시청률로 보면 최소한 500~600억 들어와야죠. 물론 광고가 시청률 기준으로 들어오는 건 아닙니다만, 똑같은 시청률 지표에도 EBS는 광고 단가가 싸고 광고 수주도 적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는 시청자와 광고주에게 매력 있는 방송이 돼야 하잖아요. 그러면서도 교육적이어야 하고요. 그래서 4월에 기자회견을 하려고 해요.

제가 2000년에 편성기획부장이 됐는데 그때 대대적인 개편을 한 번 했어요. 그다음 2008년도에 <세계테마기행> <다큐프라임> <한국기행> <극한직업> 등 교육적인 다큐멘터리를 편성했고 이제 세 번째로 대폭 개편합니다. 이번에 개편 폭이 어마어마하게 커요. 제가 취임할 때 내세웠던 ‘프로그램 대혁신’을 지난 1년간 준비해왔습니다. EBS가 공사 이후 세 번째로 큰 규모의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공익적이지만 시청률도 담보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혁신하자는 생각을 갖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EBS 출신으로 사장 취임은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부담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사실 재정 위기가 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그런 부분 때문이에요. 만약 제가 외부 출신이었으면 덜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30년을 같이 일해온 동료이고 동지인 사람들이 굉장한 기대를 하고 있었을 터인데, 그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고통이 있어요. EBS를 속속들이 아니까 올해 편성 계획서부터 충족시키는 것이 제가 가장 신경 써야 하고 또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유튜브 채널 EBS '자이언트 펭TV'의 캐릭터 펭수 Ⓒ연합뉴스
유튜브 채널 EBS '자이언트 펭TV'의 캐릭터 펭수 Ⓒ연합뉴스

언론 인터뷰에서 제2의 펭수가 나올 것이라고 하셨더라고요?

“‘제2의 펭수’라고 했더니 펭클럽에서 난리가 났어요. 사실 제2의 펭수는 아니고요. 펭수는 정말 비교할 수 없는 EBS의 탁월한 캐릭터고 펭수만의 세계관이 따로 있어요. 펭수와 완전히 다른 거지만 지금 2, 30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혁신적인 콘텐츠를 개발해보자고 해서 그것도 편성이 됐습니다. 자세하게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캐릭터들이 나오긴 할 것이고, 프로그램은 시추에이션 리얼리티 형태로 시트콤하고는 다른 콘셉트예요. 어떤 리얼리티 상황 속에서 여러 캐릭터의 이야기가 나오는, MZ세대의 어떤 시대정신을 담은 이야기들을 준비 중인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캐릭터로 어떻게 할지 아직 확정은 안 됐고, 기본적인 기획의 콘셉트만 마련된 상태예요. ‘제2의 펭수’라기보다 EBS에서 혁신적으로 내놓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리얼리티 콘텐츠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하셨는데 올해 중점 사안이 콘텐츠 대혁신이잖아요. 그에 대해 설명 더 부탁드립니다.

“EBS에서 2000년대에는 어린이 중심 대혁신을 했어요. 제가 편성부장 처음 맡았을 때 어린이 부분이 방송사 중 꼴찌였기 때문에 그쪽에 인력과 예산을 투자했어요. 2007년도에 두 번째 편성부장으로 컴백해서 2008년 프라임타임 프로그램의 약 70%를 교육 다큐멘터리로 바꿨거든요. <세계테마기행> <한국기행> <다큐프라임> <극한직업>인데, 이후 ‘다큐멘터리 명가’라는 닉네임을 갖게 됐죠.

이번에 세 번째로 하는데, 어떻게 보면 제가 첫 편성부장이 된 이후 23년 만의 개편입니다. 이번에 ‘대혁신’을 기획하면서 편성 라인들과 머리를 맞댄 이유는 2008년도 체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새로운 가치 창출은 어렵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편성 쪽에서 마음을 먹으면 경영진이 최대한 서포팅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콘텐츠 개발팀이 만들어졌고 이 혁신안을 짜기 시작했어요. 아마 재방송 배치하던 낮 시간대에 평생학교라는 프로그램이 생길 거예요. 프라임타임 때도 다양한 장르의 프리미엄 콘텐츠들을 대거 선보일 예정입니다.

‘대혁신’에 걸맞게 개편 폭이 가장 큰데, 수많은 콘텐츠가 시도되고 굉장히 실험적인 콘텐츠들이 많이 등장할 거예요. EBS로서는 어떻게 보면 어마어마한 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 게 프라임타임에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프리미엄 콘텐츠를 편성했거든요. 저는 이 부분에 역점을 두고 해왔어요. 앞으로 EBS 콘텐츠들이 한국 사회에 이것저것을 굉장히 다양하게 던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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