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시장의 장기 불황은 고장난 브레이크를 달았나보다. 음반시장 뿐이랴. 비디오시장도 불황이고 출판시장도 불황이란다. 어디 문화분야만 그럴까. 주택경기, 반도체, PDP 산업도 힘들단다. 장기 불황, 시장 위축이란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여기저기서 개인의 지갑을 당장 열라고 멱살을 잡는 것만 같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음반(CD) 한장 사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지갑도 지갑이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팍팍해진 탓도 있다. 게다가 21세기 디지털 시대에서, 고릿타분하게 내 돈 내고 콘텐츠를 사서 즐기는 것이 바보처럼 여겨지는 문화적 세태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음악을 듣기 위해 CD를 사도 요즘은 MP3플레이어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CD를 컴퓨터에 넣고 파일 형태로 변환하면 그 역할이 끝난다. 이런 점 때문에 CD를 사는 것이 더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 수도 있다.

S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앤조이'가 지난 8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년간 CD나 테이프를 유료로 구매한 경험이 있는지를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물었다. 결과는 참담하다. 전체 응답자의 50.2%가 '1년간 한 장도 구매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2000년도에 4100억원이던 음반시장 규모가 2004년 1300억원대, 2005년 1000억원대로 급감한 것도 이같은 현실을 증명한다. 올해는 600~700억원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음악산업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10만장을 넘긴 음반은 SG워너비의 4집(11만9천여장)과 에픽하이의 4집(10만7천여장) 뿐이다.

최근 음반시장 불황과 관련한 기사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대중들은 살 노래가 없어서 불법 다운로드를 애용하는 것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듣고 싶은 노래를 돈 내고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컴맹'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클릭 몇번만 하면 불법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다. 음악 뿐만 아니라 영화, 만화책, TV프로그램까지 모두 디지털 파일로 불법 공유된다. 옳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불법' 더 나아가 '범죄'라는 생각이 들어설 틈이 없다.

올해 시장 규모 2000억원을 예고하며 흥행 질주를 달리고 있는 뮤지컬은 VIP석은 고사하고 R석만 해도 최소 7만원에서 10만원을 훌쩍 넘긴다. 뮤지컬 한 편 보는 것은 고상한 취미생활을 한 것처럼 뿌듯하고, 대중 음악은 돈 내고 듣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음반시장을 비롯한 콘텐츠 유통 시장과 저작권 인식의 문제는 해묵은 골칫거리다. 해답도 쉽지 않다. 관련 정책과 제도가 충분히 정비돼 시장의 공정성과 합리성이 담보돼야 하고, 콘텐츠 생산자도 양질의 콘텐츠로 구매 욕구를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더 말하면 입 아픈 잔소리지만 수용자들도 인식의 전환을 해내야 한다. 더이상 남의 창작물을 공짜로 즐기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법과 제도도 필요하지만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적 인식이 더 깊게 뿌리내려야 할 때다. 책 한 권을 쓰기까지, 음반 한 장을 발표하기까지 저자와 뮤지션들, 그리고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개월간의 땀과 고통, 노력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물론 꼭 CD로 살 필요가 있냐고 할 수도 있겠다. 요즘은 인터넷 음악사이트에 접속해 500원을 지불하고 디지털 음원을 구매하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디지털 싱글, 디지털 음원은 여전히 어색한 존재다. 전체 컨셉에 맞춰 10여 곡이 가득 담겨있고, 음반의 주제를 드러내는 표지와 속지, CD 디자인 등 앨범 전체를 한꺼번에 감상하는 맛이 더 쏠쏠하다. 구닥다리라 불려도 어쩔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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