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난방비 폭탄’ 문제에 대해 말하는 정부 여당 관계자들의 모습은 답답하다 못해 분통이 터지게 만든다. 해도 너무한다. 이런 식의 국정 운영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대통령실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은 29일 KBS TV에 출연해 재차 ‘전 정권 책임론’을 거론했다. ‘지난 정부에서 제때 가격을 안 올려서 이번에 한꺼번에 올라갔다는 뜻 아닌가’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가격은 경제 활동의 시그널인데 제때 시그널을 못 준 게 큰 패착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하고 “근본적으로 석유·가스 등 에너지 가격 급등을 완화하는 방안은 원전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 거다.

보수언론은 전 정권이 선거를 의식해 대선 직전까지 가스비 인상을 미루다가 대선에 지고 나서야 인상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쓰고 있다. 요금 인상의 결정적 요인인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급등은 익히 알려졌다시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원인이다. 러시아로부터 파이프를 통한 천연가스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유럽 각국이 LNG를 찾기 시작한 여파가 국내까지 미친 것이다. 본격적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022년 2월 말에 시작됐고 대선은 그해 3월에 있었다. 전 정권이 선거를 의식해 요금 인상을 억제했다고 보는 게 과연 맞는 시각인가?

전국적으로 강추위가 찾아오며 난방비 급등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24일 서울 시내 한 주택 가스계량기 모습.(연합뉴스) 
전국적으로 강추위가 찾아오며 난방비 급등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24일 서울 시내 한 주택 가스계량기 모습.(연합뉴스) 

이런 기사의 근거로 제시되는 게 가스공사가 2021년 초부터 가스요금 인상을 요구했으나 전 정부가 묵살했다는 내용이다. 국민의힘 의원이 가스공사에 요청해 받은 자료가 근거다. 우크라이나 침공과는 무관한 일이니 그 당시 기준으로 따져야 한다. 2021년엔 어떤 일이 있었나? 이제야 실내마스크 해제를 말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 코로나19의 여파로 고통받던 때였다.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았고, 취약계층이 집에 머물러야 할 필요성도 큰 시기였다. 이때 가스요금을 올렸어야 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시라.

이것 저것 다 떼고 생각해도 ‘요금을 미리 올렸어야 한다’는 주장은 조삼모사에 가깝다. 요금을 미리 올렸으면 가스공사의 미수금 규모도 줄었을 거고 그랬으면 지금과 같은 비상시기에 대응할 여력이 더 있었을 거라는 건데, 현실적으로 가능했던 요금 인상 폭과 우크라이나 침공의 파장을 고려해보자. 그렇게까지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설명이 안 되니 결국 국민 탓을 한다. 이관섭 수석은 “가격은 경제 활동의 시그널인데 제때 시그널을 못 준 게 큰 패착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했는데, 가스비 부담이 있었다면 국민들이 알아서 사용량을 줄이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다. 국민들이 세상물정도 모르고 난방용 가스를 물쓰듯 한 게 지금 사태의 원인이라니, 별로 따뜻하게 지낸 것도 아니건만 괜한 죄책감마저 생긴다.

물론 기후위기의 시대에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야 하는 것은 맞다. 또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은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런 조건을 얘기하면서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정공법이다.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데 동참해주길 호소하면서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두텁게 하는, 개선된 구체적 대책을 내놓겠다는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가 있어도 모자랄 판이다. 다시 말하면 이 정권의 밑도 끝도 없는 ‘전 정권 탓’은 이런 신의성실한 대응을 굳이 하고싶지 않거나 해도 소용이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얘기가 기승전-탈원전으로 가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유력 당권주자 김기현 의원 등 여당 관계자들은 전 정권의 탈원전 정책이 LNG 의존도를 높게 했고 이게 요금인상의 요인이 됐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게 사실이라 한들, 그렇게 큰 변수였을까? 더군다나 LNG 발전 비중의 상향은 탈원전 때문이 아니라 ‘탈석탄’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명박 정권의 ‘저탄소 녹색성장’은 어떤가? 원전을 선호하면서도 신재생에너지와 LNG 발전 비중을 늘리는 게 핵심이다. 같은 논리면 탈원전이 아니라 ‘저탄소 녹색성장’이었어도 ‘난방비 폭탄’은 피할 수 없었다.

더 고약한 건, 오히려 전 정권이 과연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긴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크다는 점은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는 거다. 전 정권의 에너지 정책 로드맵은 2080년까지가 기준이었다. 실제로 전 정권 5년간 원전 발전 비중은 특정 원전의 벽에서 구멍이 발견된 이후 안전점검 시기에 일시적으로 줄었을 뿐, 이전 정부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원전 발전 비중이 늘어나는 건 막았는데, 그것도 원전 추가 건설을 중단하고 노후화 된 원전 일부 재가동을 불허한 정도이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다’며 여기저기 소문을 낸 간접적인 산업적 영향은 있을지 몰라도 난방비 문제와 관련한 대목에선 탈원전의 영향을 논할 여지가 없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윤석열 대통령을 선택했을 때에는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설명하며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참모 뒤에 숨지 않는 ‘직선의 리더십’을 기대했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그런 기대는 채워지지 않고 온갖 꼼수와 변명, 남탓으로 일관하는 리더십만이 부각되고 있다. 여당 내 껄끄러운 상대들이 연이어 박살이 나는 것을 볼 때, 참모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계속 이렇게 가야 할까? 선거공학과 표계산은 일단 잊자. 국민의 불행이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도 전 정권 책임 물을 일은 따끔하게 해야겠지만, 핑계에 지나지 않는 ‘전 정권 탓’을 거드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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