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 시위 및 경찰 폭력과잉진압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논평 -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만 10만이 넘는 시민들이 촛불문화제에 나왔으며 이 가운데 4만 여명이 청와대 앞에서 밤새 거리시위를 벌였다. 촛불은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고, 참가자들도 청소년에서부터 노년층까지,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부와 넥타이를 매고 하이힐을 신은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을 망라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거리로 나선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는가 하면 군화발로 짓밟았다. ‘무장테러집단’을 상대해야 할 경찰특공대까지 투입돼 맨몸의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연행하기도 했다.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오히려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조중동 등 수구보수신문의 상황 인식도 안이하기 짝이 없다. 조중동은 시민들의 저항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자, 정부를 감싸고돌던 태도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시위의 ‘순수성’을 문제 삼고 있으며, 시민들에게 ‘시위를 멈추라’고 촉구하고 있다. 또 경찰의 폭력과잉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는데도 이를 비판하지 않고, 시민과 경찰에 대해 ‘양비론’을 펼치며 시민들의 ‘과격행동’이 경찰의 과잉진압을 불러온 것처럼 다루고 있다.

조선일보, 시민과 경찰 ‘양비론’

조선일보는 6월 2일 1면 <시위대, 연일 청와대 진입 시도>에서 부제를 “밤마다 서울 도심 마비…폭력시위·강경진압 충돌”로 달았다. 시위대의 ‘폭력성’을 신문 첫 면에서부터 부각한 것이다. 기사에서도 “시위 인파 중 일부는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려다 경찰 버스의 유리창을 깨는 등 폭력 양상을 드러내기도 했다”며 시위대의 과격행동을 먼저 문제 삼았다. 이어 “경찰 또한 촛불집회 시작 이후 처음으로 물대포를 쏘고 경찰특공대를 투입하는 강경 진압 양상을 보였다”고 경찰의 ‘강경 진압’을 지적했지만, 기사 맥락에서는 경찰의 대응이 정당한 것처럼 해석될 우려가 컸다.

9면 <성난 시위대…성난 경찰>에서도 “촛불집회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과격해지고 있다. 경찰 대응도 강경해졌다”, “지난 주말부터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는 시위대와 이를 막는 경찰 간에 ‘전경버스 전복 시도’와 ‘물대포 발사’를 주고받는 폭력적인 양상으로 진행됐다”며 시위대가 ‘과격’해짐에 따라 경찰의 대응도 강경해졌다는 식으로 다뤘다.

8면 <‘과잉 진압’ 논란… 진퇴양난 빠진 공권력>에서는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이 정당하다고만 생각할 뿐, 법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망각한 채 불법시위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라며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 ‘과잉 진압’이라고 비판을 받으니 답답하다”는 경찰 관계자의 ‘해명’을 담았을 뿐이다.

당초 시민들의 평화시위가 과격해진 이유는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때문이었다. 31일과 1일 경찰은 시위대의 얼굴과 몸을 향해 물대포를 직격으로 쏘아 시민들을 흥분시켰다. 경찰이 물대포를 사용할 경우 ‘발사대의 발사 각도를 15도 이상 유지하여 발사되는지 확인 후 사용하여야 한다. 20m 이내의 근거리 시위대를 향하여 직접 살수포를 쏘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된 ‘경찰장비관리규칙’을 무시한 폭력과잉진압이었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고막이 찢겨나가는 등 중상을 입은 시민들이 생겨났음에도 조선일보는 “시위대와 경찰이 폭력적으로 충돌하면서 현장에선 부상자가 속출했다”고 전하는데 그쳤다. 심지어 사실이 확인된 피해사례는 외면하고 사실관계가 불명확한 사례만으로 “부상자가 늘자 인터넷에 유언비어도 극성을 부렸다”며 경찰폭력에 의한 부상조차도 ‘괴담’ 쯤으로 치부했다.

사설 <청와대 코앞에 밀어닥친 시위대를 보며>에서는 시위대의 ‘순수성’을 의심하기도 했다. 사설은 “정부가 불법 부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청와대 코앞 도로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밤새도록 시위를 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라며 “이제 취임한 지 석 달이 겨우 지난 대통령을 향해 ‘물러가라’고 하는 것이나 지금 시대에 ‘독재 타도’를 외치는 것도 순수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시위 진압에 경찰특공대를 동원한 경찰도 문제가 있다”며 경찰의 과잉진압을 지적해 양비론적인 태도를 보였다.

동아일보, “쇠고기 시위는 6월항쟁과 다르다” 강변

동아일보는 1면 <토 4만-일 2만 ‘청와대행’ 충돌>과 3면 <시위대 “청와대로 가자”… 서울 도심 연이틀 경찰과 대치>에서 시위대의 ‘거리점거’와 ‘경찰저지선 돌파’를 부각했다. 경찰의 물대포 사용과 경찰특공대 투입 등을 거론했지만 폭력진압에 대해 무비판적인 보도태도를 보였다.

12면 <경찰, 시위대 과잉진압 동영상 논란>은 경찰이 군홧발로 넘어진 여성의 머리를 차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에 대해 “이 동영상은 지난달 31일 저녁 무렵 시위대 진압 과정에서 찍힌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경찰 폭력에 대해 아무런 비판을 하지 않았다. 또 일부 사실 확인이 어려운 사례를 들어 경찰 폭력에 의한 피해가 조작된 것처럼 치부하기도 했다.

사설 <쇠고기 촛불시위는 ‘6월 민주항쟁’이 아니다>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민들의 저항이 ‘6월 항쟁’처럼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듯 ‘쇠고기 시위와 6월 항쟁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사설은 ‘쇠고기 시위’를 ‘6월 항쟁’과 비유하는 것에 대해 “민주항쟁에 참여한 학생과 시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전두환 정권의 독재 연장 음모를 막기 위해 전 국민이 함께 일어난 궐기”인 ‘6월 항쟁’과 “미국산 쇠고기의 위생검역 조건 협상에서 촉발”된 ‘촛불시위’를 “결코 동렬에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시위대로부터 ‘이명박 대통령 탄핵’ ‘정권 타도’라는 구호가 공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쇠고기 촛불시위를 6월 민주항쟁으로 몰아가고 싶은 세력이 있다면 국민 건강을 위협해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집단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또 다시 ‘배후세력’을 들먹였다.

지금 범국민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촛불집회와 거리시위는 동아일보의 주장처럼 ‘쇠고기 촛불시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정부의 쇠고기 수입 졸속 협상이 촛불문화제의 기폭제가 되었지만 이후 저항이 확산되어 간 것은 국민의 뜻을 외면하고 ‘밀어붙이기’로 일관하면서 시민들의 폭력적으로 진압하려 든 이명박 정부의 독선과 오만 때문이다. 또 출범 직후부터 잇따른 실정과 국정 파행도 시위 확산의 배경이라 할 수 있다. 동아일보가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쇠고기 시위와 6월 항쟁은 다르다’고 아무리 항변해봐야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수그러들지는 않는다.

중앙일보, 시민-경찰 충돌 단순 전달

중앙일보는 1면 <휴일 2만여 명 한밤 ‘광화문 대치’>에서 “경찰과 시위대는 날이 밝을 때까지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였다”며 경찰의 폭력과잉진압에 대한 비판 없이 충돌 양상만 단순하게 전달했다.

다만 중앙일보는 4면 <“광우병보다 여론 무시하는 정부에 분노”>에서 “촛불 집회 한 달째…왜 계속 이어지나”에 대해 “10대 불만 야기한 MB 교육정책”,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해 정부가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촛불집회는 어른 세대로 확산” 등을 이유로 제시하고 “광우병이 무서워서 나온 게 아니라 여론을 무시하는 정부의 태도에 화가 났다”는 시민의 말을 소개해 미 쇠고기 문제에서 촉발된 시민들의 분노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시위 현장에 나와 제대로 취재했다면 시민들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왜 분노했는지, 시민들의 시위가 왜 과격해졌는지 모를 수가 없다. ‘조중동’ 보도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조중동 기자’는 시위 현장에서 신분조차 밝히기 어렵다. 어디 그뿐인가. ‘불법시위’를 부각하는 조중동 보도에 분노한 시민들이 이들 신문에 광고한 기업들에게까지 항의하고 있다. 상황이 이토록 심각한데도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여전히 민심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조선·중앙·동아일보의 행태에 우리가 답답할 지경이다.

이미 조중동은 사태를 수습할 기회를 잃었는지 모른다.

2008년 6월 2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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