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7일 오후 한 장의 보도자료를 받았습니다. ‘서울 강남구청이 고용한 용역직원들이 넝마공동체 주민들의 화장실 이용을 막고 식수와 음식물 반입을 차단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시민단체들이 ‘서울시에 인권침해를 신고하고 28일 강남구청에 항의방문 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원래 강남구 개포동의 한 다리 밑에 거주하던 넝마공동체 주민들은 지난 7월부터 강남구청의 지속적인 퇴거요청에 시달리다 지난 달 자발적으로 인근 대치동의 한 운동장으로 옮겨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남구청이 식수와 음식물 반입을 차단한다’니요. 믿기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요.

▲ 영하 5도를 기록한 1일 밤 '넝마공동체' 회원들이 서울 수서경찰서 민원인 대기실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뉴스1

27일 밤 10시. 저는 음료수 몇 병을 사들고 현장을 직접 가보기로 했습니다. 기자 신분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기자라고 밝히면 강남구청이 제게 있는 그대로의 현장을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칼바람이 부는 무척 추운 밤이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했는데 원래 운동장으로 출입하던 길이 웬 커다란 컨테이너로 막혀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강남구청이 설치해 놓은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일부 주민들의 운동장 불법 점유로 당분간 운동장 출입구를 폐쇄한다’고 써 있었습니다. 제가 주변을 서성이자 컨테이너 옆에 주차되어 있던 어떤 차에서 한 남성이 내렸습니다. 현장을 지키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여기 통로를 폐쇄하면 저분들은 어떻게 출입하지요?”
“불법 저지른 사람에게 그런 거를 뭣하러 보장하나요?”
“그래도 인권이란 게 있는 건데...”
“어디서 나왔어요?”
“그냥 빈민 지원단체에서 나왔어요. 안에 계신 분들이 물이 부족하다고 해서요. 이것만 전달하고 갈게요.”
“불법 저지른 사람에게 인권 이런 거 없습니다.”

이 남성은 ‘안된다, 돌아가라’고만 했습니다.
제가 쉽게 물러서지 않자 이번엔 인근에 머물고 있던 덩치 큰 남성 서넛이 제 앞으로 몰려왔습니다. 다짜고짜 반말로 저를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라면 가지. 왜 말이 많아!”

덩치 큰 사내가 저를 몸으로 툭하고 밀었습니다.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현장에는 저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용역들이 막아놓은 좁은 통로의 끝에서 넝마공동체 주민이 저를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100여미터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제게 다가로 입구로 다가오면 용역들올 수 없었습니다. ‘통이 입구 바깥으로 사람을 집어던진다’고 했습니다. 넝마공동체에서 완전히 쫓겨나는 것이죠.

저는 말했습니다.
“물만 건네주고 돌아가겠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신을 강남구청 주택과 직원이라고 소개한 남성이 제게 말했습니다.

“그 물 안에 독이 들어 있는지 어떻게 알아?”
“독 안들어 있습니다. 제가 이 앞 편의점에서 사온 겁니다.”
“물은 우리가 오전에 충분히 넣어줬어. 그러니 돌아가.”
“저 안의 주민들은 물이 부족하다고 해요. 연락받고 제가 온 겁니다.”

실갱이가 계속 됐습니다.
남성들은 짜증이 났는지, 급기야 저를 때리려 했습니다.

“제 몸 건들지 마십시오. 더 건들면 저는 경찰을 부를 겁니다.”

사내들은 저를 비웃었습니다.

“부를테면 불러봐.”

아무래도 공권력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기자가 아닌, 일개 시민으로서 찾아온 저 개인은 너무나 무력했습니다. 용역깡패의 폭력에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하고 온전히 부당한 순간을 몸으로 받아 안아야 했던 철거민들의 무력감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경찰을 불렀습니다. 5분도 안돼 한 순찰차가 도착했습니다. 저는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저는 시민단체에서 나왔습니다. 주민들에게 물만 주고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경찰은 경비용역들과 몇 마디 대답한 뒤 건조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경찰은 그냥 돌아갔습니다.

저는 끝내 넝마공동체 주민들에게 물을 전달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주민들이 낸 보도자료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주민들은 며칠 째 저런 상태로 사실상 감금되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강남구청은 한국 전력과 강남수도사업소에 요청해 전기마저 끊었습니다. 주민들은 음식물의 자유로운 반입 차단, 전기와 수도까지 차단된 상태로 인간 이하의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 지난 9월 김덕자 넝마공동체 대표가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컨테이너집 앞에 서 있다. ‘인생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인가’라고 적힌 팻말이 어깨 너머로 보인다. ⓒ허재현 기자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철거민들이 특정 공간을 불법점유 했다 하더라도 이렇게 지방자치단체가 인권을 유린하면서 탄압을 했던 적이 있나요. 저는 우리 사회가 상식이란 걸 갖추기 시작한 이래 이런 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21세기에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상식 이하의 인권유린을 자행했습니다.

저는 불법점유를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법을 저질렀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권은 박탈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왜 모르고 있는지, 바로 그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28일 새벽 강남구청은 다시 용역들을 보내 넝마공동체 주민 20여명이 자고 있던 컨테이너 6개와 비닐하우스 2채 등을 철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용역직원들이 주민들을 질질 끌고가서 땅에 내동댕이쳤다고 주민들은 주장합니다. 일부 용역들은 주민 얼굴에 침도 뱉고 욕설도 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장면은 제가 본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27일 밤 경비용역에게 위협당했던 경험을 떠올리면 충분히 주민들에게 저런 폭력을 저질렀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강남구청이 고용한 용역, 그리고 주택과 직원은 상식이하의 행동을 하는 분들이었고 저는 그것을 목격했습니다.

넝마공동체는 빈민운동가 윤팔병씨가 지난 1986년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마련한 자활공동체입니다.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를 돌며 헌옷과 고물을 모아 생계를 이어갑니다. 삶의 의욕을 잃고 실의에 빠졌던 노숙인들은 이곳에서 자활의지를 얻어 다시 사회로 돌아갑니다. 지난 27년동안 이곳에서 용기를 얻어 다시 사회로 돌아간 빈민들이 3000여명에 이릅니다.

▲ 지난 11월28일 강남구 대치동 탄천운동장 앞을 가로 막고 서 있는 경비용역들. 강남구청은 용역을 고용해 운동장을 점유하고 있는 넝마공동체 주민들의 출입을 막아 사실상 감금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허재현 기자

주민들이 시유지를 불법점유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땅을 점유한 대가로 임대주택을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자활의지를 얻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공동체를 꾸린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서울역 등을 떠다니면서 계속 실의에 빠진 채로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이게 과연 우리 사회의 안정을 위해 더욱 바람직한 것일까요.

지금 넝마공동체 주민들은 찜질방을 전전하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나마 모은 돈이 다 떨어지면 이제 이분들은 또 어느 지하철 역사를 돌아다니며 추운 겨울을 나야 할지 모릅니다.

강남구청이 언론에 뿌리는 보도자료를 제가 안보는 게 아닙니다. 주민들이 임대주택을 얻고자 땅을 불법점유하는 것이라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퍼뜨리더군요. 게다가 넝마공동체 주민들 다수가 원래 공동체 사람들이 아니라 최근에 이익을 바라보고 들어온 사람들이라는 논리를 펴더군요. 넝마공동체 주민들을 실제로 만나보고 언론에 이런 설명을 흘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넝마공동체는 원래부터가 ‘뜨내기 노숙인’ 들이 오고가는 곳입니다. 장기거주 하는 빈민도 있겠지만, 최근에 사업에 실패한 뒤 갈 곳 없어 찾아들어온 노숙인도 있고, 다양한 사연으로 빈민들이 수시로 왕래하는 곳입니다. 장기 불법 점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넝마공동체 구성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강남구청의 논리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들 주민들은 노숙인들 중에서도 가장 우리 사회에 피해를 덜 입히는 방식으로 자활의지를 쌓아가는 분들입니다. 이들에게 넝마주이(헌옷수거)는 마지막 남은 생계의 끈입니다. 이 주민들이 강남 지역에 머물러야 어딘가에 팔 수 있는 괜찮은 헌옷들을 수거할 수 있을 겁니다. 강남구청이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시유지 불법점유를 관리하는 것만 강남구청이 할 일이 아니라, 빈민들의 자활을 돕는 것도 강남구청이 해야 할 일입니다.

신연희 구청장이 빈민들에게 ‘가장 악랄했던 구청장’으로 기억되지 않고, ‘가장 인간적인 구청장’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대통령 후보들께서도 서울 강남구에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십시오.

현재 한겨레 사회부 사건팀(24시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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