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관련 업계, 관련 학계가 모여 ICT대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지난 9월 출범한 이 단체가 주장하는 바는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아우르는 ICT콘트롤 타워로서 거대 정부부처 설립이다. 대선을 앞두고 정부 기구개편 논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선거용 조직인 셈이다. ICT대연합은 이석채 KT회장이 대표로 있는 기간통신사연합회(KTOA)가 주축인 것으로 알려졌다.

ICT대연합은 유력 후보자를 불러 간담회를 진행하며 대선 후보들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공약에 반영해줄 것을 요청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전폭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다짐했고 문재인 후보 역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면서도 ICT 산업의 부활에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ICT대연합이 주장하는 IT발전이 과연 누구를 위한 발전인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IT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이다. ICT대연합 뿐 아니라 후보들 모두 ‘IT생태계’와 ‘IT산업 발전’을 말한다. 하지만 IT생태계의 기층을 이룬 IT노동자에 대해 언급조차 없다는 점은 이들 공약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 박근혜 후보는 지난 10월 30일 ICT대연합 초청 간담회에 참석, '세계 최고 ICT 강국 비전 실현 5대 전략'을 발표했다. ⓒ미디어스

6일 미국의 컴퓨터월드(computerworld)는 우리나라 현실에 잘 들어맞는 기사를 게재했다. ‘기술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IT노동자 임금은 오르지 않나’라는 기사다. 이 기사는 IT기술을 강조하면서도 IT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이 10년 전과 비슷한 수준이고 그동안의 물가인상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떨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기사는 EPI(Economic Policy Institute)의 통계를 인용해 미국 IT 평균 임금이 지난 2001년 시간당 37.27달러에서 지난해 39.24달로 10년 동안 1.97달러 인상됐다고 전했다. 10년 동안 0.5%의 임금인상은 실질 임금의 하락을 의미한다는 지적이다.

또 이 기사는 Yoh Services에서 발표하는 또 다른 통계를 인용해 올해 IT관련 교수의 임금수준이 시간당 31.45달러라고 전했다. 지난해(31.78달러) 보다 낮은 임금 수준이다. 미국 정부 인플레이션 소비 가격지표 계산기(Consumer Price Index Inflation Calculator)에 따르면 지난 2010년 31.78달러를 벌어 소비했다면 올해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33.71달러가 필요하다.

물론 이 같은 지적은 우리나라 상황과 차이가 있다. 시간당 37달러, 39달러(우리 돈으로 4만원이 넘는) 임금을 받는 미국 IT노동자들의 처지는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다.

10년 동안 임금인상 없는 미국이 부러운 우리나라 개발자들

한 IT개발자에게 임금수준을 물었다. 경력이 7년차인 이 개발자의 대답은 “모른다”다.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정확한 임금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IT개발자들이 회사에 소속되지 않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임금수준을 알 수 없다는 얘기다. 또 프로젝트별로 건건이 수주를 하고, 개인이 계약하기도 하고 팀으로 계약하기도 하기 때문에 임금수준을 따지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다.

‘올해 얼마나 벌었냐’고 되물었다. 이 개발자는 “한 3~4천 만 원 정도 번 것 같다”며 “올해 제법 큰 프로젝트를 잡아서 이 만큼”이라며 “이걸 일반화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또 이 개발자는 “프로그래머, 개발자들의 프로젝트는 단가가 좀 있는 편”이라면서 “디자인 쪽이나 다른 IT쪽 벌이는 더 박하다”고 말했다.

또 이 개발자는 “벌이보다 못한 건 대우”라고 말했다. 이 개발자는 “대개 고립돼 혼자 일하기 때문에 일 시키는 사람들이 프로그램 개발, 수정에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알지 못한다”며 “위에서 이런 사정 모르고 언제까지 하라고 못 박으면 몇날며칠 밤 새워 마감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밤새는 게 일상”이라고 푸념했다.

웹디자인을 했던 한 디자이너는 “프리랜서로 일할 때 페이지 당 몇 만원 수준에서 작업을 한다”면서 “웹디자인너가 흔한 직종이기 때문에 단가가 낮다”고 말했다. 또 이 디자이너는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는 게 가장 낳은 선택”이라면서 “IT회사라는 게 갑자기 생겨났다가 없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안정적이진 못한 건 매한가지”라고 했다. 이 디자이너는 “디자인 학원들이 많이 생기면서 웹디자이너들도 많아졌다”면서 “이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졌고 전문성이 떨어진 만큼 대우를 못 받는 게 웹디자이너들의 처지”라고 말했다.

일주일 60시간 노동, 병을 안고 사는 IT노동자들

한국IT산업노동조합은 지난 2010년 진보신당과 함께 IT노동자에 대한 노동실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 결과, 야근 및 연장근로를 포함하여 지난 한 주 동안 일한 평균 노동시간은 55.9시간이었으며, 직장 내 연장 근로 외에 집에서까지 연장해서 근로한 시간은 평균 5.8시간으로 나타났다. IT노동자들은 일주일에 평균 60시간 이상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 IT산업노조 2010년 노동환경 조사

한국IT노조는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고객과 대기업의 단가 후리기와 무리한 납기 기간, 무리한 요구 사항으로 인해, 최소한의 노동기본권도 지키지 않는 사업자로 인해 ‘월화수목금금금’이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개발자는 오늘도 만성피로와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기자회견에 IT노조가 증언한 사례도 개발자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IT노조는 지난 2008년 서울시청에서 의장용 프로그램을 담당하던 개발자가 프로그램을 빨리 수정하지 않았다면서 서울시청 의사팀장으로부터 무릎과 복부, 옆구리를 구두발로 가격당한 사건, 농협 계열사 직원이 수년간 거의 자정을 넘는 시간까지 야근을 하다가 면역력 저하로 폐결핵에 걸려 폐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은 일 등을 폭로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살인적인 노동시간이 개선될 기미가 없다는 점이다. IT노조는 지난 2004년에도 실태조사를 했다. 당시 결과는 2010년 조사와 차이가 없었다. 2004년 IT노동자의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약 57.8시간으로 조사됐다. 6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하는 비중은 전체 응답자의 43.4%에 달했다. 80시간 이상의 초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도 7.6%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IT노동자들은 이 같은 장시간 노동으로 다양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조사에 따르면 ‘이유 없이 목덜미, 어깨, 팔이 아픈 근골격계 질환’이 있는 노동자는 79.2%, 머리가 앞으로 나오는 꾸부정한 자세가 있는 거북목 증후군은 73.1%, 잦은 야근에 따른 생체리듬 파괴로 인한 만성피로 82.0%, 두통과 속이 더부룩하고 몸이 무거움을 호소하는 노동자는 69.0%, 영상단말기(VDT)증후군을 앓는 노동자는 58.0% 등으로 나타났다. 또 심혈관 등에 무리를 호소하는 스트레스성 질환도 48.0%,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노동자도 37.2%에 달했다.

호소할 곳 없는 IT노동자들

개별 프로젝트를 받아 수행하는 IT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에 지쳐도, 직업병에 시달려도 호소할 곳이 없다. 기업체에 일하는 노동자는 그나마 낫은 편이다. 산업재해 신청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IT노동자들의 직업병은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경우가 드물다. 2008년 농협계열사 직원으로 일하던 IT노동자가 폐결핵으로 폐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지만 산재로 인정받지 못해 아직도 법정 투쟁을 하고 있다.

또 프로젝트 임금 채불된 경우도 호소할 곳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프로젝트 임금 채불 역시 민사소송을 통해 받아야한다. 지리한 민사소송은 1인 개발자들에게 또 다른 난관이다. IT노동자들의 다양한 커뮤니티에는 체불 임금에 대한 민사소송에 관한 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한 IT노동자는 “반드시 받아내고 싶다”며 자신이 받아야할 프로그젝트 목록을 올렸다. 이 목록에 올라온 금액은 많게는 300만원, 적게는 몇 십 만 원 단위이다. 민사소송 금액으로는 소액이지만 IT노동자가 기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돈이다. 일반적으로 민사는 짧게는 수개월, 많게는 수 년이 걸릴 수 있다. 지루한 법정 투쟁 동안 프로젝트를 발주한 회사가 문을 닫는 경우는 다반사다.

평소 친분이 있는 개발자는 “나도 그런 경우를 당해봤지만 고액이 아니라 소송을 하기도 난감하고 소송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가야 시간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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