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저녁, KBS <시사기획 창>은 <대선특별기획 1부, 대선후보를 말한다>를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은 KBS 새 노조 파업 이후 노사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대선후보진실검증단'이 3개월 전부터 준비해왔던 특집 프로그램이다.

사실, 방영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당초 지난달 27일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방송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보도본부 간부가 불방을 통보했다. "기획 방향 및 방송시점의 적절성 측면에서 기획의 조정 및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 KBS <시사기획 창>의 <대선특별기획 1부, 대선후보를 말한다>는 각 후보를 검증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KBS 화면 캡처

이미 수개월 전부터 기획안이 통과돼 취재ㆍ제작이 된 프로그램을 방송 하루를 앞두고 '기획 방향'와 '방송 시점'을 이유로 보류시킨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라는 평가가 나왔으며, 이는 결국 KBS 사측이 박근혜 후보에 대한 유불리를 따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KBS 안팎에서 제기됐다. 거센 반발 끝에 KBS 사측은 대선 특집 프로그램이 아니라 정규 프로그램인 <시사기획 창> 안에서 소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방송내용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대선후보검증단은 박근혜 후보가 몸담았던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영남학원, 한국문화재단, 육영수 여사 기념 사업회 재단 이사들의 '회전문 인사'를 심층 분석하는 등 일목요연한 정리를 프로그램에 담아냈으나 기존에 제기된 의혹에서 더 나아간 내용은 없었다.

일간지나 주간지를 통해 박 후보의 인사 비리나 재산 의혹은 꾸준하게 보도돼 왔다. 부산일보와 부일장학회 강탈, 180도 달라진 경제 민주화 등 역시 그동안 나왔던 내용을 보기 좋게 '정리'한 수준이었다. 적어도 공영 방송의 대선 특집 프로그램이라면 '일목요연한 정리'에서 좀 더 나아간 보도를 내놔야 하지 않았을까?

▲ 한국문화재단의 이사들은 박 후보의 측근들로 채워졌다. KBS 대선후보진실검증단은 이를 '회전문 인사'라고 비판했다.- KBS 화면 캡처

또, 48분의 방송을 정확히 24분씩 나눠 각 후보에 할애한 것도 '기계적 중립'의 덫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물론, 문재인 후보의 '말 바꾸기'나 '부산 저축 은행 의혹' 등도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박 후보의 거미줄 같은 측근 인사와 재단의 비리, 그리고 그것이 20년 세월의 독재와 크나큰 연관이 있다면 단순히 한 개인의 검증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 아니었을까?

"충성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알 것입니다. 한국이름 박정희"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당선되면 요직에 삼성 장학생을 앉히지 않겠다고 약속해달라"

KBS 대선특집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직전에 열린 대선 후보 1차 토론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가 한 발언이다. 이정희 후보의 발언을 보며, 새삼 지금의 언론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과연 대한민국 언론이 독재권력과 자본권력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보도를 한 적이 있었던가? 기본적인 검증 방송도 벌벌 떨며 내리기에 급급한 언론 현실에서 국민은 무엇을 통해 권력과 정치를 마주해야 할까? 한 트위터리안이 남긴 "국민이 알아야 할 권리를 막아 권력의 시녀가 된 언론, 이정희의 한 마디가 와닿는 이유"라는 날카로운 촌평이 기억에 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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