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11월 14일 경북 구미의 선친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박근혜 ⓒ 연합뉴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선거 후보가 100% 국민대통합을 공약 비슷하게 내걸었을 때 저는 바로 독재자 박정희가 생각났습니다. 독재자 박정희는 생전에 국론분열을 용납할 수 없다면서 국론통일을 소리높여 얘기했고 나아가 총력안보도 말했습니다.

저는 그 때 국민학생이었고 중학생이었고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나이가 어리도 철도 몰랐던 저는 국론은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았고 안보도 총력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니었습니다.

독재자 박정희가 피살되던 해로 기억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까까머리였습니다. 당시 저희 집안 정치 성향이 어땠는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할 틈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매우 가까운 친척 한 분이 당시 집권 여당으로 독재자의 앞잡이였던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의 사무장을 한 데 비춰보면 박정희 편이었던 것 같고, 어쩌다 한 번씩 나오는 얘기들이 조금은 독재자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데 견주면 그렇지 않은 것도 같습니다.

아버지와 큰형이 저희 집 안방에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큰형은 나이가 서른이었고 아버지는 연세가 쉰아홉이셨습니다. 갑자기 두 분 목소리가 낮아졌습니다. 느낌이 이상했던 저는 귀를 더 쫑긋 세웠겠지요. 누구는 새마을운동 보고 뭐라 했다가 중정(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이(齒牙)에 구멍이 뚫렸다더라, 누구는 박통(독재자 박정희를 그 때는 이렇게 일렀지요) 욕을 했다고 중정 요원한테 잡혀가 손톱을 뽑혔다더라 등등. 한동안 수군대던 두 분은 이야기를 마치고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말 절대 밖에 나가서 입도 떼면 안 된다.” 저는 무서웠습니다.

바로 국론통일과 총력안보의 실상이 이랬습니다. 통일될 수 없는 것을 통일하려 하고 총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총력으로 하려 하다 보니 독재가 나왔습니다. 아니 어쩌면 거꾸로 독재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릇 사람의 생각이란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로 가지런히 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로 모을 수 없기는 사람의 역량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사람 생각이 똑같다면 그리고 사람 역량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정당도 하나만 있으면 되고 대통령 후보도 한 명만 있으면 되고 다른 모든 것도 둘이 필요없고 하나만 있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그래서 사람이 가진 역량 또한 가는 방향이 이리저리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그것들을 하나로 하려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사람 이에 구멍을 내고 손톱을 뽑고 했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왔습니다.

또 국론통일과 총력안보는 민주주의랑 아예 맞지 않습니다. 국론통일이 돼 있는데 다수결이 무슨 필요 있습니까? 안보를 위해 총력을 모아놓은 자리에 무슨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겠습니까? 국론통일과 총력안보를 사는 국민들은, 지배자(스스로는 지도자라 하겠지만)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고난의 세월을 버텨야 하겠지요.

100% 국민 대통합도 하나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박근혜 말만 나와도 고개를 돌리거나 구역질을 하는 사람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독재자 박정희 치하에서 20대를 보낸 이들입니다. 특히 1975년 이후 박근혜가 ‘퍼스트 레이디’ 노릇을 할 때 20대를 보낸 사람이 많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차라리 이민을 가고 말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이민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박근혜랑 생각이 다른 사람도 많습니다. 박근혜는 스스로를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얼마나 많습니까? 대통령이 되는데 필요한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 후보라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여성은 무슨 얼어 죽을 개뿔’ 이러는 사람도 얼마나 많습니다. 박근혜를 일러 ‘생식기만 여성’이라 한 사람까지 있을 정도입니다.(저는 이런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반대편에는 독재자 자녀 출신 귀족을 두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지지한다는 운동권 출신 귀족, 김지하 같은 인물도 있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이런 사람들을 박근혜가 어떻게 통합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박근혜가 통합한다고 한들 이런 사람들이 그래 좋다 통합하자, 이렇게 나올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두 가지가 남습니다. 억지로 통합을 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내버려 두거나. 억지로 통합을 하면 독재가 되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것은 사기가 됩니다. 또는 독재와 사기를 한꺼번에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대로 내버려 둬도 문제가 되지 않는 쪽에는 사기를 치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문제를 일으키는 쪽에는 독재를 하는 식입니다.

저는 박근혜가 내세우는 100% 국민대통합에서 사기와 독재의 씨앗을 봅니다. 자기한테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힘없는 집단에게는 사기를 칠 개연성이 높고 자기한테 대놓고 문제를 제기할 정도 힘은 되는 집단에게는 독재를 할 개연성이 높다고 봅니다. 물론 독재자 박정희와 같은 방식으로 하지는 않겠지요. 시대가 달라졌으니까요. 그리고 이명박 지금 대통령이 새로운 방식을 많이 선보여 놓은 덕분도 있겠지요.

1963년 경남 창녕 출생. 1999년 경남도민일보 입사.

1998년 잡문집 <따지고 뒤집기의 즐거움과 고달픔>, 1998년 공동시집 <사람 목숨보다 값진>, 2008년 <습지와 인간-인문과 역사로 습지를 들여다보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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