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공평동 진심캠프 기자실에서 후보 사퇴를 발표한 후 측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드라마는 끝났고 선거가 남았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 및 백의종군 선언은 이 드라마의 결말을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만들었다. 기자가 오늘 쓴 시나리오 기사에서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높지는 않다고 보았던 (이 기사의 3절) 상황이 현실화된 것을 보고 역시 정치적 예측은 어려운 것이라고 느낀다.

안철수의 등장과 퇴장은 이미 이번 대선을 87년 이후 남한의 모든 대통령 선거가 그랬듯 ‘유니크한 것’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기자는 안철수 후보가 후보 등록 전 사퇴를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았다. 야권 단일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현재로서 높지 않고, 그렇기에 권력분점을 이루려면 안철수 후보가 사력을 다해 뛰어야 하는 상황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는 이런 상황을 ‘백의종군’이라는 네 글자 워딩으로 반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어제 저녁 11시 박선숙 기자회견으로 절정에 이른 지난 며칠 간의 공방으로 문재인/안철수 양 후보의 지지층은 서로에게 상처를 준 상황이다. 바꾸어 말하면 문재인 후보로서는 대선승리를 위해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을 사력을 다해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의 독대나 담판을 통해서 사퇴를 한 것도 아니고 협상이 교착된 상태에서 온전히 자신의 판단으로 사퇴를 선언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세련되게 상대편 탓을 하지 않고 단일후보 문재인에 대한 지지를 당부했다. 하지만 의도 여부와 상관없이 이 세련된 행동의 함의는 문재인이 안철수의 지지층을 공짜로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백의종군’을 선언했기에 문재인 후보를 위해 어느 정도는 뛸 것이다. 하지만 ‘대의’를 따르는 이로서 체면치레 정도로 뛰느냐, ‘진심’으로 정권교체를 위해 뛰느냐는 선택지는 남아 있다. 만약 그간 안철수를 새누리당의 ‘알바’인 양 욕해왔던 문재인의 극성 지지자들이 전자의 상황에 대해 비난한다면 그들은 안철수의 행동을 강제하기는커녕 야권 후보 지지층으로부터 ‘너무 심하다’라는 평을 들으며 고립될 것이다.

물론 ‘정치인 안철수’의 미래도 장밋빛은 아니다. 그가 자기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선거들이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는 2014년에 있지만 이 선거는 안철수가 정당공천을 축소하자고 한 영역에 있고, 총선을 하려면 2016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번 사퇴를 자산 삼아 민주당의 당권에 도전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역시 잃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정치인 안철수의 미래’와 상관없이 그는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몫’을 지닌 채 사퇴하게 되었다. 문재인 후보로서는 새정치 공동선언을 할 때보다 훨씬 더 안철수 후보의 뜻을 챙겨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되었다. 만일 그런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면 선거를 포기하는 행동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지지율이 뒤집혔을 때 최대한 표정관리를 하고 안철수 후보를 지극히 존중하며 경쟁을 통해 단일후보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이를 택하지 않은 대가는 즉자적으로는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를 파토낼 가능성을 안고 가는 것이었으나 그들은 자존심을 세우고 제3후보를 응징하기 위해 유류고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길을 택했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가 묘한 방식으로 사퇴하면서 그는 ‘민주당과 자신 모두가 상하면서 민주당에게 복수하는 길’보다 훨씬 안전하고 현명한 길에 들어섰다. 그는 이제 이번 선거의 결과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이기든 지든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에게 무언가 몫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에 섰다. 안철수 후보를 매도한 문재인 후보의 핵심 지지층들이 그의 몫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심지어는 그것이 정치개혁을 위한 올바른 길이 아니더라도 국회의원 정수 축소라도 문재인 후보가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제 문재인의 운명은 안철수의 생각에 달렸다. 민주당과 친노는 선거에 패배하더라도 사라지진 않겠지만 안철수가 자신들을 잡아먹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 되었다. 문재인 후보 개인으로는 사실상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지 않는다면 정치인으로서의 장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결국 그들은 얌전하게 사퇴한 안철수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분명히 억울한 점이 있었는데도 ‘땡깡’으로 매도당한 안철수 후보 지지자들의 마음을 추스르지 않으면 선거에서 이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어이없는 제안을 했던 시민사회 원로들이나 불공평한 판정을 했던 자칭 진보지식인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할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안철수의 협조를 구할 수 있을까? 확률적으로,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에 대한 야권의 승리가 쉽게 점쳐지지 않는 이유다.

▲ 공평동 진심캠프 앞에서 '닥치고/단일화'를 연호하던 촛불을 든 시민들이 오늘 밤 8시 25분경 안철수 후보의 사퇴 소식이 전해지자 '안철수'를 연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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