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S 보도국 사회부 기자 '서우진'이라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문화제'를 어떻게 보도했을까? 가상의 방송사 GBS 보도국 사회부 2진을 거쳐 여기자 출신의 앵커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MBC 드라마 <스포트라이트>에서 2008년 5월 서울 청계광장의 촛불문화제가 보도된다면, 아마도 드라마의 리얼리티는 100% 살아나지 않을까?

<스포트라이트>는 MBC 보도국 기자 출신인 '스토리허브'의 홍순관 사장이 사건 취재 경험을 토대로 초고를 쓰고, 2007년 초 전문직 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하얀 거탑>의 이기원 작가가 극본을 집필하면서 방영 전부터 2008년 상반기의 기대할만한 드라마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스포트라이트>는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 MBC 드라마 '스포트라이트'ⓒMBC
전문직 드라마로서 <스포트라이트>의 성패는 사회부 기자의 취재 활동을 얼마나 현실적으로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포트라이트>의 '리얼리티'는 실제 현실을 넘어서기 어려운 근본적인 한계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5회 분량이 방영된 현재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기에는 역부족인 정형화된 등장인물이나 이야기 구조 때문에 소재의 참신함과 화려한 출연진에도 불구하고 신통치 못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GBS 보도국 사회부의 능력 있는 캡 '오태석(지진희 분)', 사회부 1진 기자가 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사건사고 현장을 누비는 열혈 기자 '서우진(손예진 분)', 자기 몸 하나 편할 생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수습 불가능할 정도의 사고를 저지르는 사회부 수습기자 '이순철(진구 분)' 등은 드라마에서의 '역할'을 위해 존재하는 정형화된 등장인물들이다. 그리고 'GBS'와 '명성일보' 간의 대립, GBS 보도국 내의 '사회부'와 '정치부'의 대립, '보도국장' 자리를 놓고 사사건건 갈등을 빚는 '사회부장'과 '정치부장'의 대립과 같은 이야기 구조 역시 이분법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형화된 이야기 구조라 할 수 있다.

GBS 보도국의 뉴스 제작 현장이나 사회부 기자의 취재 활동이 흥미 위주로 흐르면서 불필요한 극적 긴장감만 유발시키는 것도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극적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여자 앵커가 생방송으로 뉴스를 진행하다가 실수를 하면서 방송 사고를 일으킬 뻔 했던 도입부의 에피소드나, 사회부 2진 기자 '서우진'이 특종을 얻기 위해 희대의 탈옥범 '장진규'를 인터뷰하기 위해 다방 종업원으로 변장하여 접근하는 장면들이 다소 억지스럽게 구성되면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실제 현실의 긴장감을 뛰어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 MBC 드라마 '스포트라이트'ⓒMBC
특히 드라마 도입부에서 서우진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은 '월화수목금금금' 사건사고 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사회부 기자의 취재 활동을 시청자에게 전달하기보다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구성된 상황들이라는 경향이 강하다. 탈옥범 장진규에게 접근하여 몰래 카메라로 취재하는 것에 성공했던 서우진이 녹화 테이프를 형사에게 빼앗겼다 되찾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부 캡의 경찰서장 폭행 사건이나 GBS와 앙숙 관계인 '명성일보' 기자이자 서우진의 오빠가 폭행 사건을 제보해서 GBS를 곤궁에 빠뜨리는 사건,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서우진이 경찰에서 되돌려 받은 녹화 테이프에서 음성이 삭제된 것을 알고 낭패를 당하는 에피소드 등이 바로 그러하다.

<스포트라이트>에서 사건사고를 다루는 방식도 '진정한 기자상'과 '진정한 저널리즘'이라는 드라마의 지향점과 배치된다. 수습기자 이순철의 취중 실수를 다룬 3회 방영 내용은 이러한 문제를 잘 보여준다. 탐사 보도 취재 현장에서 실수를 남발하다가 서우진에게 훈계를 들은 이순철이 경찰서 기자실에서 만취 상태로 잠을 자다가 '명성일보' 사회부 여기자의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사고를 저지른다. '명성일보' 사주의 농지 불법 점유 및 호화 별장 취재로 기세등등하던 GBS 보도국은 결국 '성추행 방송사'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명성일보' 사주 취재 건을 보도하지 않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시킨다. 이러한 뒷거래가 얼마나 비일비재한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만약 이것이 취재 현실이라면 언론의 정도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 지 난감할 뿐이다.

이는 곧 한국 언론의 현실이 '진실 보도', '사실 보도', '공정 보도'와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만약 이러한 에피소드가 실제 현실이 아니라면 <스포트라이트>는 극적 갈등과 대립을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현실을 과장한, 결과적으로 '비전문직 드라마'로 낙인찍힐 수도 있을 것이다. 진실은 실제 현실의 언론 매체 종사자들만이 알 것이다.

희대의 살인범 장진규와의 인터뷰 특종을 위해 서우진 기자가 다방 종업원으로 위장했다가 다른 방송사의 기자 납치 보도로 위험에 처하게 되는 내용을 다룬 4회 방영분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방송사 간의 보도 경쟁이 아무리 치열하다고 해도 다른 방송사 기자가 신분을 위장하고 살인범과 함께 있는데 사진과 함께 납치 기사를 보도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스포트라이트>의 사건사고 현장이 현실이 아니라 '드라마 속의 허구'임을 전제로 할 때나 이해 가능한 상황이다. 극적 긴장감 조성을 위해 작위적으로 구성된 에피소드로 치부할 수 있지만, 전문직 드라마마로서 <스포트라이트>의 위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분명하다.

▲ MBC 드라마 '스포트라이트'ⓒMBC
이처럼 <스포트라이트>가 애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도 실제 현실의 방송사 뉴스의 리얼리티를 드라마 속의 뉴스 '스포트라이트'가 따라갈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드라마 속의 현실이 아무리 '현실적'으로 '리얼'하다 하더라도 실제 현실의 '드라마틱'한 경우보다 더 '드라마틱'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곧 그 자체로 드라마틱한 상황에 놓인 사회부 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의 경우, 아무리 리얼리티를 살린다 하더라도 본전을 찾기 어려운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기자 정신'이 실종됐다는 사회적 비판이 팽배하고, 주요 보수 언론 매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기자 정신이 훼손당하는 드라마 속의 현장을 재미있게 바라볼 시청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올바른 기자 정신으로 무장하고 서우진을 호되게 훈련시키는 GBS 보도국 사회부 캡 오태석 같은 기자를 현실에서는 결코 찾아보기 어려운,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허구적 인물로 받아들이면서 극적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가 시청자와 소통하는 드라마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부 기자의 취재 현장 혹은 취재 활동이 아니라 실제 현실의 언론에서 제대로 보기 힘든,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우리 사회 전 분야의 권력에 대한 냉철한 감시자 역할로서 언론의 진정성이 구현되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방송사 보도국 사회부 기자의 취재 활동이라는 소재주의에서 벗어나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단, 이 때 중요한 것은 '특종'에 대한 강박 관념에서 비롯하는 기자들의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실제 현실에서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그러니까 하루 이틀 혹은 한 두 시간 차이의 시간차 보도로 따내는 형식적인 '특종'이 아니라 바람직한 사회 시스템 구축에 암적인 문제들을 독점 취재하여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로 변화시켜낼 수 있는 진정한 '특종'을 어떻게 취재하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드라마 <스포트라이트>의 기획 의도인, '진정한 기자상'과 '진정한 저널리즘'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길이다.

2008년 5월 대한민국 국민은 거리로 나와 여론 형성의 중심축이었던 언론, 그 중에서도 이른바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 언론 매체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을 재협상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지만, 보수 언론 매체들은 '배후 세력' 운운하며 촛불문화제의 불법성을 강조하는데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에서 '이명박 대통령'으로 정부의 '수반'이 바뀐 것뿐인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문제 보도 태도가 '반대'에서 '찬성'으로 달라진 것도 보수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키웠다. 국민적 관심사를 보도하는 보수 언론의 관점이 분명한 이유 없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보수 언론의 이러한 이중적 보도 태도는 사안의 진실성과 언론매체의 신뢰성과 직결되면서 국민의 불신감을 증폭시킬 뿐이다.

GBS 보도국 사회부 기자들이 2008년 5월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취재하느냐에 따라 드라마 <스포트라이트>의 향후 시청률이 결정되지 않을까? "촛불문화제 현장에서 GBS 뉴스 서우진입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현실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이것보다 더 사실적인 뉴스가 있을까?

윤석진 교수는 2000년 여름 한양대에서 <1960년대 멜로드라마 연구-연극·방송극·영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4년 가을 <시사저널>에 '캔디렐라 따라 웃고 웃는다'를 발표하면서 드라마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김삼순과 장준혁의 드라마공방전> <한국 멜로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 <한국 대중서사, 그 끊임없는 유혹> 등의 저서와 <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러로서의 TV드라마 시론> <극작가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충남대 국문과에서 드라마 관련 전공 과목을 강의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영상미학적 특징에 대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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