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유일한 희망,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혁명,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등 정치변동을 낳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있다. 필요조건이 '정통성의 위기(legitimacy crisis)'이고, 충분조건이 '효율성의 위기(efficiency crisis)'라 볼 수 있다. 효율성의 위기란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 일자리 창출, 복지 제공 등 국민에게 제공해야 할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것이다.

정통성의 위기와 효율성의 위기가 모두 발생하면 정치변동을 가져오게 된다. 선거를 통해서 집권당이 바뀌든, 아니면 4.19혁명을 통한 민주당 정부의 탄생 같은 급격한 정치변화가 따르게 된다.

▲ 29일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덕수궁 앞 서울시청 광장 모습 ⓒ 정영은

오늘(30일) 새벽이 되어서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촛불문화제라 불리는, '국민들의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하는 소비자 운동’(강원택 숭실대 교수의 말)이 ‘29일치 막’을 내렸다.

촛불문화제는 그 자체로 ‘혁명’이다. 'Web 2.0 시대의 혁명’이자 ‘Web 2.0 시스템과 네트웍을 이용한 혁명’이다. 구호의 내용과 다양성, 참석자나 주체, 집회의 진행 양상, 참석하지 않은 국민들에 대한 전달 및 보도 양상 등 모든 것이 새롭다.

광화문과 종로 일대가 해방구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집회가 일종의 축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조선, 동아, 중앙 등 세 개의 대표적인 족벌신문사가 바로 코앞에 있거나 가까이 있는데도 이 해방구에는 ‘조중동’은 보이지 않는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조중동은 이미 관심의 대상이 아닌 듯 했다. 언론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일까?

오마이뉴스의 ‘오마이TV’와 진보신당의 ‘칼라TV’는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었다. 그 자체로 놀랍다. 뿐만이 아니다. 참석자 상당수가 노트북 PC,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휴대전화 등을 통해 열심히 현장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미디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마이뉴스의 초창기 구호가 ‘모든 시민은 기자다’였다면, 이제 블로거 시대가 되어 ‘모든 시민이 미디어’가 된 양상이다. 기자가 몸담고 있는 미디어스(www.mediaus.co.kr)가 바로 ‘우리 모두가 미디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촛불문화제를 새벽까지 지켜보고, 딱 한 가지 걱정스런 대목이 있다.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정통성을 부인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는 조짐이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원인은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제공했다.

효율성 위기에 정통성 위기 겹치면 예측 못할 정치상황 발생할 수도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정통성의 위기란 정부가 법과 절차에 따라, 즉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대통령과 정부가 출범하지 않고,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군사쿠데타 등을 통해 집권하는 경우 발생하는 게 대부분이다.

▲ 29일 밤10시경 촛불집회 행진대열이 서울 종로1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희상

그런데 광화문 촛불문화제에서 상당수 참석자들이 문제 삼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거짓말 행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의 직접 비밀 선거에 의해서, 그것도 압도적인 지지로 선출되었지만, 취임 후 불과 100일 동안의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정부의 행태를 보면서 ‘이건 아니다,’ ‘해도 너무한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거짓말을 수시로 한다거나, 그 때 그 때 말이 달라지거나 말을 바꾸고, 스스로의 잘못을 진정으로 인정하지 않고 과거 정권에 원인과 책임을 돌리거나 아니면 일부 언론의 탓으로 돌리는 것 등이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만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직접 비밀 선거에 의해 탄생한 정권도 정통성의 위기를 겪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으로 전개상황이 주목된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탄핵의 위기에 몰려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난 것도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이라는 도청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거짓말’ 때문이었다.

29일 저녁 7시 서울시청 광장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할 무렵,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는 언론광장(상임대표 김중배)이 주관하는 월례포럼이 열리고 있었다. 주제는 ‘광우병 여론: 인터넷 괴담, 표현의 자유, e-공론장’이라는 다소 길고 얼핏 보면 잘 와 닿지 않는 내용이었다.

지정토론자 중에는 강원택 숭실대 교수도 끼어있었다. 지정토론이 끝나고 정치학자인 강 교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처한 상황을 ‘정통성의 위기’로 보는가였다. 그의 대답은 단호하고 간단했다.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었기 때문에 정통성의 위기는 아니라는 대답이었다.

강 교수도 효율성의 위기라는 데는 동의했다. 실제 심각할 정도의 정통성의 위기가 올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효율성의 위기 문제가 대단히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원유가 폭등에 따른 국제 원자재 가격의 연쇄 폭등, 세계경제 침체 등 대외경제여건이 심각할 정도로 안좋은 데다, 국내 기름값 폭등과 각종 물가 인상과 내수침체 등에 대해 정부가 체계적이고 실효성있는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당황하고 허둥대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 30일 새벽 3시30분 한 시민이 경찰을 향해 울부짖고 있다 ⓒ윤희상

여기다 국민을 속이고 말 바꾸기를 밥 먹듯 하며, 경상도 지역에서는 사실상 운하 사업을 시작한 것 등으로 인해 국민들과 정부가 직접 부닥치는 일이 계속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청와대 등에서 흘러나오는 내부 분위기다. 시스템을 구축할 생각이 없거나, 과거 정권 때 어렵게 만들어 놓은 시스템마저도 외면하는 양상을 보이는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의 행태가 ‘오대수’라는 것이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자.”

이명박 대통령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우리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다. 불과 100일 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오늘과 같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것의 없을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선택과 결단은 이명박 자신의 몫이다. 그의 운명과 나라의 장래가 그의 손에 달려있다. 해법은 독립언론 ‘시사In’ 37호(2008년 5월 31일자)에 모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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