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상품이 외국에 진출할 때 상품에 대한 기능의 우수성을 해외 구매자에게 어필하는 것보다 보완이 시급한 측면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야기’다. 상품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와 긴밀하게 결합할 수만 있다면 해외 구매자에게 지금보다는 훨씬 호소력 있게 다가설 상품이 수두룩하기에 말이다.

마술도 마찬가지다. 천편일률적으로 관객에게 마술을 열거하기보다는, 마술사의 사연을 이야기로 풀어가고 교감을 쌓는 공연이 보다 관객에게 와 닿는다. 마술 하나 하나의 행간 사이에 스토리텔링을 삽입한다는 건 마술사의 마술의 결을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의미와 일맥상통하기에 그렇다.

▲ ⓒ 이은결프로젝트
이은결의 <더 일류션>은 뮤지컬처럼 1막과 2막으로 구분된다. 1막은 이은결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통해 마술쇼의 블록버스터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단지 마술을 나열하는 수준이 아니라, 마술에 화려한 퍼포먼스라는 외장재를 덧입힘으로 무대를 더욱 빛나게끔 만든다.

이은결의 퍼포먼스는 단지 동작 하나 하나를 크게 움직이는 수순에 머무르지 않는다. 동작 하나 하나가 정교하게 계산된 퍼포먼스라는 건 1막의 에피소드 중 이은결이 스텝에게 퍼포먼스 동작 하나 하나를 일일이 지시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퍼포먼스 동작 하나 하나에도 이은결만의 장인정신을 덧입히는 게다.

1막은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예측 불가능한 마술쇼를 통해 관객의 긴장감을 극도로 높였다. 비어야 할 공간에서 불쑥 헬리콥터가 나타나질 않나, 유체이탈처럼 보이는 금속 벽 통과 마술과 공중부양 등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과 탄성을 자아내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 ⓒ 이은결프로젝트
1막이 숨 막히는 마술 블록버스터의 향연이라면 2막은 긴장감을 한시름 놓을 수 있는 무대였다. 활이 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긴장과 이완을 반복해야 하듯, 1막의 긴장감은 2막을 통해 이완으로 관객에게 ‘쉼’의 관람을 가능하도록 만들어준다.

2막은 마술사 이은결의 ‘사연’을 덧입힌 스토리텔링으로 다가온다. 어린이와 그의 어머니를 무대 위로 직접 초대함으로 <더 일류션>이 이은결의 원맨쇼에 그치는 게 아니라 관객과의 소통을, 어린이 관객의 흥미 유발을 놓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관객과의 소통을 중요시한 게 틀림없다. 그의 소통은 관객에게만 머무는 게 아니다. 이은결의 또 다른 파트너인 앵무새 ‘가지’는 이은결의 페르소나처럼 그의 마술쇼를 빛내주는 또 하나의 훌륭한 조연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은결은 개인적 체험을 마술쇼 안에 녹여내고 싶어 했다. 일찍이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매직 디렉터인 돈 웨인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이은결의 ‘쉐도우 매직’을 경이로운 아프리카의 풍광 안에 마술로 녹여낸 건 <더 일류션>에서만 볼 수 있는 백미였다.

이은결은 광활한 아프리카의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경이로움을 무대 위에서 체현하기를 바랐고, 그 감동을 개인의 체험에만 국한시키는 게 아니라 음악과 마술로 소화함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이은결이 체험한 아프리카의 감동에 간접적으로 동참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은결의 마술쇼는 <더 일류션>이 정점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가 마술쇼에 덧입힌 퍼포먼스에만 만족하지 않고 관객과의 소통을, 더불어 개인적인 감동을 무대 위에서 마술로 표현하고자 하는 열정이 계속 그의 안에 숨 쉬는 한, 이은결의 마술쇼는 정체되지 않고 매년 새롭게 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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