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진정추 준비위 창당대회에서 인삿말을 하던 권영길 전 의원의 모습 ⓒ뉴스1

권영길 전 의원이 무소속으로 경남도지사에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정권교체에 역할을 하기 위한 출마임을 강조하면서,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엔 민주당의 책임도 있으니 후보를 내지 말 것을 권유한 것이 특징이다. 사실 민주당 입장에서도 경남도지사 선거는 부담이다. 일단 새누리당 후보를 보고 선택하려고 뒤로 미뤘는데, 홍준표 후보로 결정되면서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있으면서도 경남에 연고가 있는 인물을 내세워야 하는데 마땅히 나설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후보를 내는 것을 쉽게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 민주당의 입장이다. 민주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선거에 후보를 내지 못했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도 후보를 내지 못했다. 만약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에서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다면 2012년 대선에도 후보를 내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권영길 후보와 야권후보 단일화 논의가 시작되면 경남도지사 선거에조차 후보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생긴다. 민주당으로서는 ‘불임정당’으로서의 악몽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우려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최근의 시국이 민주당에게 꼭 나쁘기만 하다고는 볼 수 없다. 권영길 전 의원 같은 이가 민주당에 대해 ‘역할’과 함께 ‘몫’을 요구하는 상황은 예전에 없던 일이다. 이런 상황은 민주당의 위기보다는 오히려 진보진영의 뿌리가 뽑혀나가는 정황을 드러낸다. 과거의 ‘비판적 지지’ 담론은 철저히 운동세력 내부의 논쟁이었다. 운동세력끼리 독자 후보를 낼지 말지를 두고 논한 것이지 민주당과의 관계가 문제는 아니었다. 민주당으로서는 1992년 선거에서 전국연합 등 재야세력과 폭넓은 연합을 했음에도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고 판단했기에 관여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오늘날의 민주당은 그와는 위상이 다르다. 지금의 민주당은 시민사회 세력의 역량의 상당수가 결집해 다시 창당된 ‘민주통합당’이다. 또 이제는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중도층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이수호 후보를 내세운 노동계와 심상정 권영길과 같은 이전엔 진보정당 정치인이었던 이들과도 나름의 접촉면을 가지고 있다. 당의 중심이 사라진다고 우려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하는 만큼이나, 새누리당 지지자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제외한 모든 정파를 아우를 수 있는 야권의 대표정당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문제는 이 국면에서 민주당이 실제로 이들을 규합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작게 보면 야권 단일후보 조정에의 요구일 수 있고, 크게 보면 미국에 존재했던 ‘뉴딜연합’처럼 복지국가 정책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을 묶어내는 연합일 수가 있다. 진보정당이 미조직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의 조직화를 유도하고 요구하면서 운동을 이끌어내고 그 운동을 조직으로 수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면, 민주당은 조직화되지 않은 시민들의 다발도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비전을 주어야 한다. 양쪽 모두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중요한 일이다.

진보정당 운동이 쇠퇴했을 때 안철수 후보가 강력한 제3후보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한국 사회가 본격적인 양당제로 개편되는데 대한 사람들의 심리적 저항감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대선에 결선투표제도 없고 비례대표 의원도 적은 실정에서 일정 기간 동안은 민주당이 전체 야권을 이끄는 역할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다. 후보를 못 내서 위기인 것이 아니라 이 연합을 안정적으로 이끌어낼 지도력이 없다는 것이 위기다. 반대로 말해서 그러한 지도력이 있다면 후보들은 선거가 끝난 후라도 당에 들어오게 된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결국 당선 이후 민주당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설령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이름만 조금 바뀐 민주당의 틀 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여기저기서 민주당에 몫을 요구하는데 짜증을 낼 게 아니라 적극적인 대처를 통해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요구된다. 문재인 후보가 말한 ‘맏형’론도 그래야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그러한 주장에 공감하여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조짐도 감지된다. 민주당이 고만고만한 인물을 내서 경남도지사 선거를 이기거나 대선에서 시너지 효과를 받는 것이 쉽지 않다면, 대승적인 결단을 하는 것도 오히려 지지율을 높이는 길이다. 안철수 후보 측이 다시 전략적 수를 던지는 이 시점에 권영길 후보의 제안에 ‘불출마’ 내지는 ‘조속한 단일화’로 화답을 한다면 민주당이 훨씬 더 책임감을 가지고 이 선거에 임한다는 신호를 유권자들에게 줄 수 있다.

덧붙여 과거 진보정당 운동을 이끌었던 몇몇 리더들에게도 이제는 민주당을 고민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 지난 몇 년 동안 노회찬 의원과 심상정 의원 같은 이들은 현실정치를 배운다는 이유로 기층 민중과의 접점을 넓혀나가기 보다는 정책생산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 결과 그들은 ‘진보정치의 리더’로서의 고민을 심화시키기 보다 ‘훌륭한 정책을 내는 좋은 보수정치인’이 될 수 있는 기량을 닦아온 것이 사실이다. 진보정당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곳에서 표류하며 후배들이 다른 길을 닦는 것도 방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재능을 더 확실히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민주당에게도 진보정당 운동에도 그리고 사회변혁에도 도움이 되는 길일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과정에서 얘기되는 '국민연대' 등에 현 진보정의당 측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인을 보내는 현실 역시 비판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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