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정말 바쁩니다. 글 한 편 여유롭게 쓸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그래도 열심히 발로 뛰고 있는 모습, 다들 이런 저런 경로로 지켜들 봐주셨을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6개월 전부터 한겨레 사회부 사건팀(24시팀)에서 일하면서 이런 저런 굵직한, 혹은 소소하게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기사들을 발굴해 쓰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난 여름 용역폭력 회사 컨택터스를 때려 잡은 것이고요. 반값등록금 집회에 참석했다가 벌금 폭탄 맞고 있는 대학생들의 사연을 기사로 써, 한 스님으로부터 1억원이 넘는 후원을 이끌어내어 벌금문제를 한번에 해결했던 것, KBS <각시탈> 보조출연자의 억울한 사연을 알려 수개월만에 KBS의 공개사과를 받아낸 것들. 여러 뿌듯했던 경험들이 떠오르네요.

제가 글을 쓸 수조차 없을 만큼 바쁜 건,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열심히 발로 뛰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너무 섭섭해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저, 게으르지 않습니다.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오늘은 기사로 작성되었다가 이런 저런 사정으로 결국 보도되지 못한 어떤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해 당선된 뒤로 서울시 산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 않습니까?

▲ 이원효 서울대공원 원장 ⓒ 연합뉴스
그런데 서울대공원은 여기에 별로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같지 않습니다. 이원효 서울대공원장의 이상한 노동관과 관련 있지 않나 의심되는데요.

오늘은 그 이야기입니다.

서울대공원 조경과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십명 일하고 있어요. 노조는 ‘조경과 소속 비정규직 39명 전원을 전환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서울대공원은 ‘18명만 전환할 수 있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서울대공원의 논리는 이래요. ‘1년에 9개월 이상 일해야 상시업무 대상’이라는 서울시 정규직 전환 지침이라는 게 있는데, 겨울철에 일감이 많지 않은 조경과 업무 특성상 전원 정규직 전환은 어렵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이건 핑계에 지나지 않고 속내는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올해 초에 1년에 9개월 정도만 일하는 업무를 하는 서울대공원 비정규직들이 전환된 사례가 있거든요. 그냥 정규직원이 많아지길 바라지 않는 이원효 원장의 개인 바람 탓이 큰 것 같습니다.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이 9월14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원효 원장을 만나러 갔습니다. 이 의원과 이 원장은 따로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 의원이 직접 전해준 내용으로는, 둘 사이에 이런 얘기가 오갔습니다. 이 의원이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자 이 원장은 난색을 표하며 “예산상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 의원이 “정규직 전환 예산까지 서울시가 지원하는데 무슨 문제냐”고 따졌습니다. 이 원장은 여기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정작 어려움은, 노동 통제가 안된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정규직 노동자들이 통제가 안돼 일시키기 어렵습니다.”

이원효 원장의 황당한 이런 얘기를 듣고 이 의원이 가만 있을 리가 없겠지요. 이 의원은 “민간기업에서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이유가 비용을 절감하고 노동조합을 잘 설립하지 못하는 것 때문인데 기관장이 그런 얘기를 하면 되겠냐”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 서울대공원 단풍풀장 보도자료 제공 사진. 지난달 22일 서울대공원은 낙엽풀장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이런 얘기가 알려지자 노조는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서울일반노동조합 서울대공원분회장은 “노동자를 협력의 대상이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전근대적 노동관이 드러난 것”이라고 분개했습니다. 이원효 원장의 발언으로 짐작컨대, 정규직 전환 숫자를 줄이려는 것은 노조가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이 원장의 바람때문이 아닌가 추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원효 원장은 저와의 통화에서 “정규직은 노동통제가 안된다”고 말한 적 없다고 밝혔습니다만, 이 의원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거짓 해명”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녹취가 되어 있지 않은 이상 서로 엇갈리는 주장을 검증할 방법은 없습니다만, 국회의원이 설마 언론에 거짓말을 하지는 않겠지요.

서울대공원에서 일하는 복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제가 직접 인터뷰해봤습니다. 이분들, 실제로 노예처럼 일해왔더군요. 관리자들이 개인적인 집안일을 돕거나 정규직원의 회식준비에 동원되거나, 정규직원들이 가져갈 나무 열매를 따는 일에 동원됐다고 증언했습니다.

이곳 조경과에서 수년 째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한 노동자는 지난 해 11월 조경과장 집 김장배추 40~50포기 저리는 일에 동원됐습니다. 서울대공원 조경관리하는 분이 왜 과장 댁 김장을 담궈야 합니까. 하지만 매년 재계약을 해야 하는 이분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서울대공원은 이건 사실이라고 밝혔습니다. “과장님 부인이 암투병이어서 그랬다”고 하더군요. 글쎄요. 과장님 사모님이 암투병인 건 정말 안타깝지만, 어쨌든 회사 직원 동원해 집안일 시키는 건 그래도 옳지 않지요. 또 다른 비정규 직원들도 비슷비슷한 개인적 업무 지시로 몇 년간 시달려 왔다고 합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개인적 일을 강요당하는데, 이분들 속이 어땠겠습니까. 당연히 화가 났겠지요.

한 직원은 지난 6월 회사 관리자에게 이 문제를 항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관리자 대답이 뭔지 아시나요.

“어차피 서울시에서 이 일을 알아봤자 우리는 같은 공무원이라 최소 수준의 징계만 내릴 것이다”며 대수롭지 않아했다고 합니다.

이원효 원장이 말한 ‘통제의 어려움’은 대체 어떤 뜻으로 한 말일까요.

저는 이곳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간 어떤 조건에서 일해왔는지 그 환경에서 답을 찾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서울시는 현재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연구를 맡겨 서울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담길 내용을 입수해 살펴보니 “미 전환된 기간제 근로자 50명(조경과 비정규직 39명 포함)을 2차전환시 공무직(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돼 있더군요. 서울시의 입장이 최종 확정되면, 서울대공원은 더 이상 늦추지 말고 노예처럼 일해 온 비정규직을 전원 정규직화 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서울시는 서울시 산하 기관에서 비정규직들을 노예처럼 개인적으로 부려먹는 경우들은 없는지 철저히 감시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드리는 건, 과연 서울대공원에서만의 일일까 염려되어서입니다.

많은 공공기관에 비정규직들이 많습니다. 사실상 정규적인 업무를 하면서도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것이지요.

혹시라도 노조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비정규직들을 노예처럼 쉽게 다루기 위해 이런 저런 핑계로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는 기관장들이 없는지 감시가 필요해 보입니다.


현재 한겨레 사회부 사건팀(24시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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