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에서 공부하고 있는 '북경만학도'님께서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관련해 글을 보내왔습니다. 한중 정상회담과 관련한 국내 언론의 보도태도를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필자의 요청으로 실명이 아니라 필명으로 글을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28일 오후.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다가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제목이 <靑 "中언론, 李대통령 방중 크게 보도">(연합뉴스)입니다. <미디어스>에 어제(28일) 제가 쓴 '이명박 대통령 중국에서 찬밥신세?' 와 완전히 반대의 제목입니다. 첫 기사부터 오보를 냈다니 역시 필명을 쓰길 잘했다는 안도감과 미안함, 이게 다 중국어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는 반성을 깊게 한 후 기사를 클릭했습니다.

허무합니다. 클릭하고 나서야 이 기사가 청와대의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쓴 기사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청와대는 27일 인민일보와 광명일보가 1면에서 한중정상회담을 중점적으로 보도했고, CCTV는 27일 저녁 첫 뉴스로 방송한데 이어 28일 오전에도 재방송을 내보냈다며 중국 언론이 대통령 관련 소식을 풍부하게 보도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안.쓰.럽.습.니.다.

이제 28일은 중국언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는지 찾아보겠습니다. 방송은 큰 차이도 없을뿐더러 이미 어제 소개해 드렸으니, 이번에는 28일자 중국일간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찾아보겠습니다.

신문에서는 보도내용보다 면배치나 사진을 살펴보는 작업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에 관한 사전지식이 거의 없는 중국의 평범한 국민이 관련 기사를 봤을 때 얻을 수 있는 정보나 이미지는 무엇인지 체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자아. 봅시다. 이명박 대통령은 중국국민들에게 눈도장 확실히 찍고 있을까요?

아래 사진은 제가 사는 곳 근처에서 구입한 5월28일자 일간지입니다. 1부에 중국화폐로는 1~2원입니다. 한화로는 현재 환률로 145원~290원 정도 됩니다. 중국에서 발행되는 일간지가 정확히 몇 개인지는 저도 파악이 안 됩니다. 일반적인 상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일간지 숫자는 적어도 10종류는 넘습니다. 대신 가게마다 종류의 차이는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주간지나 월간지가 한국에 비해 종류가 굉장히 많고 주제도 다양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오면 중국 잡지의 세계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한부씩 넘기며 이명박 대통령을 찾아봅시다. 먼저 <인민일보>입니다. 마침 28일에는 저희 동네에 <인민일보>를 파는 곳이 없어 홈페이지에서 찾았습니다. 아래의 사진입니다. 1면 오른쪽에 큰 박스기사에서 양국정상이 나란히 걷고 있습니다. 뒤에 소개시켜드릴 신문과 비교해서 큰 무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협력관계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조금 떨어져서 걷고 있고, 표정도 어둡습니다. 27일에 도착했으므로 함께 찍은 다양한 사진이 있을 법한데 이 사진이 선택되었습니다.

다음은 영문판 <중국일보>인 <차이나데일리>입니다. 사진이 매우 의도적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1면 톱으로 다뤘고, 제목만 보면 양국이 전략적 파트너쉽을 맺겠다고 하고 있지만 사진은 전혀 다릅니다. 양국 정상이 건배를 하는데 후진타오 주석이 이명박 대통령을 내려다보는 듯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매우 황송해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사진입니다. 사진설명이나 기사를 읽지 않는다면, 양국의 정상회담 보도에 나온 사진이라고는 믿기지 않습니다. 말풍선이 있다면 "자네도 한잔 하게."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이런말을 써도 될듯합니다.

이번에는 경제지입니다. 편의상 영문명을 따라 <차이나 비즈니스 뉴스>라고 읽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1면 메인 기사는 아니지만, 제호 바로 아래에 주요기사를 소개하는 코너에서 맨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사진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진이 바로 무엇이냐에 있습니다. 국내 언론은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의 지진피해를 애도하는 차원에서 중국 도착 후 비행기 트랩에서 손을 흔들지 않았다고 보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 사진을 자세히 보면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 흔든 겁니까?

다음 장을 넘겨보면 더 황당합니다. 지면 한가운데 매우 큰 크기의 사진으로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손을 흔들지 않았다는 보도가 사실이냐 아니냐는 그리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왜 하필이면 중국언론이 저 사진을 게제 했는지가 더 궁금합니다. 아직도 신문에서 매일 같이 볼 수 있는 지진피해 사진을 넘기다가, 이 사진을 보면 중국인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반대로 중국에서는 손님은 어떤 상황이든 주인에게 무조건 크게 웃으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게 예의일까요.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북경청년보>입니다. 역시 1면, 왼쪽에 세로로 길게 뽑아 양국정상회담을 소개했습니다. 사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기사가 2면에 있다는 표시가 있어 넘겨봤습니다. 넘겨보니 뒷면에도 사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2면에서도 왼쪽 제일 하단에 있는 중간 크기의 상자기사에 기사가 마무리되어 있습니다. 전혀 눈의 띄지 않는 편집이라 한참을 찾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국제관련 신문입니다. 1면에선 대만의 국민당 우보슝 주석의 사진을 담았습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보다 하루 일찍 중국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회담은 중국과 대만의 국민당 1인자가 59년 만에 처음 만나는 큰 사건입니다. 이런 중요한 행사와 한중정상회담 일정이 겹친 것입니다. 우리나라로 예를 들자면 남북정상회담 하면서 다른 나라 정상을 별도로 초대한 것과 비슷한 모양새입니다.

이 문제는 외교지식이 없어서 언뜻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귀빈을 국가에 초대할 때 이렇게 일정이 겹치기도 하는 게 국제관례입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방문시에도 교황 베네딕토 16세,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의 방미와 일정이 겹쳤다고 하니 없는 일은 아닌가 봅니다. 대신 2면에서 한중정상회담 소식을 다뤘습니다. 사진은? 나와 있지만 역시 작아서 그리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서 중국 일간지들은 상당수가 28일자 지면에 한중정상회담을 중요하게 다룬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이는 숫자 일뿐, 보도가 매우 형식적이라는 문제가 노출됩니다. 사진만 보더라도 이번 정상회담에 관한 중국의 입장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 고위급 정치인이나 경제인과는 어떤 성과를 얻고 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틀간의 행보만 보자면 적어도 일반 중국 국민들에게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을 듯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숫자도 적고, 그 형태도 협력관계를 강화했다는 점을 체감할 수 없었습니다.

중국친구와 있었던 일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친구와 함께 인터넷을 하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부시 대통령의 골프카를 운전하는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평소에도 중국이나 한국의 문제점이든 장점이든 숨기지 않고 서로 잘 보여주는 스스럼없는 사이입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고 "우리나라 대통령 정말 간지 안나지 않아?"라는 말을 하며 같이 웃자고 보여준 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 처음으로 크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되물었습니다. 제가 중국어가 부족해 실수 했다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너희 나라 대통령이야? 정말? 정말? 새 대통령이 지금 운전 해 주는거야? 왜?"

한참 놀라던 친구는 제가 너무 무덤덤하게, "몰라. 좀 신기하지? 그 분 마음을 누가 알겠어? 보통사람들은 못 그럴텐데. 내가 중국에 온 후 일어난 일이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한국국민들도 일부는 부끄러워 할꺼야. 속상하지만 이미 저지른 일이니 진짜 뭔가 얻어오기나 했으면 좋겠어"라고 답하니 조금씩 진정이 됐습니다. 손짓, 발짓, 한중사전, 중한사전을 다 동원해서 말했는데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는 결국 이런 말을 하고 웃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다 자기나라 대통령을 안 좋아하는 거 같더라. 신기해." 저도 웃었습니다. "맞네. 언제나 한쪽은 무지 싫어해."

제가 중국인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그 친구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후진타오 주석이 미국 가서 부시 대통령의 골프카를 운전해줬다면 과연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한중 정상회담관련 보도를 보면서 그 사진이 자꾸만 떠오르고, 중국인 친구와의 일화가 마음에 걸립니다. 그 한 장의 사진이 미국인들이나 부시의 마음을 얻는 데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중국인들이나 중국지도자에게는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편이라는 이미지를 강렬하게 심어줬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행동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뒤늦게 절감했습니다.

아차. 혹시나 해서 중국 CCTV 사이트에 가서 이명박 대통령 사진을 검색해 봤습니다. 보도를 보고 이명박 대통령이 궁금해서 찾아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검색어 순위에 뜰 수도 있는 일입니다.

첫 번째 페이지는 이번 한중정상회담 사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장을 넘겼습니다. 위에서부터 두 줄은 한국정상회담 기사에 딸린 일종의 자료사진입니다. 대통령 당선 당시 사진이나 프로필 사진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한중정상회담을 소개하는 기사에 사용했던 사진으로 추측됩니다.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으니 이런 식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행보를 거꾸로 볼 수 있습니다.

쿵.

나타났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둘째줄 맨 마지막 사진부터 운전하고 있습니다. 중국 네티즌들도 이 사진을 보면 제 친구처럼 놀랄까요?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어떠하다고 판단할까요. 스크롤을 내려보았습니다. 또 문제의 사진이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의 골프카를 몰면서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다음장을 넘겼습니다. 꺄악. 이명박 대통령은 3페이지에 가서도 계속, 계속, 계속 운전중입니다. 악몽입니다.

이상. 북경만학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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