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한 독재자의 만행에서 비롯되었다. 미국과 영국의 도움으로 이란 국민들이 뽑은 민주총리를 밀어내고 이란의 샤(지도자) 자리에 오른 리자 팔레비는 사치와 독재를 일삼고, 결국 국민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샤를 끌어내린다. 이에 리자 팔레비는 곧바로 미국으로 망명하고 성난 국민들은 미국 대사관을 점령하는데,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6명의 미 대사관 직원이 캐나다 대사관저로 도피한다.

미국 정부는 6명의 직원을 구출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작전을 검토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이때 CIA에서 구출 전문요원으로 활동하던 토니 멘데즈(벤 에플렉 분)이 자신이 아들이 보고 있던 영화 <혹성탈출>에서 힌트를 얻어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과 손을 잡고 6명의 직원을 구출하기 위한 기상천외한 작전을 세운다. 작전명 일명 '아르고 엿이나 처먹어!"

벤 애플렉이 감독, 주연을 맡은 <아르고>는 33년 전 실제 있었던 인질 구출 작전을 영화화했다. 당시 이란에 억류되었던 인질의 무사 귀환을 위해 국가 기밀로 붙여졌지만, 90년 대 빌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며 인질 구출을 둘러싼 기밀문서가 해제되었기에 수많은 사람은 '아르고'가 어떤 사건이고 어떻게 해결됐는지 알게 됐다.

실제 사건이라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는 뻔한 결말을 보완할 긴장감 있는 전개를 필수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는 잘 알려진 실화를 영화화한다면 응당 뒤따라야 하는 전제다.

놀랍게도 <아르고>는 결말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보는 이들의 심장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그만큼 '아르고' 작전이 실패 가능성이 높았던 위험천만한 도박이었기도 했지만, 실화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내 진짜 역사까지 잠시 잊게 하는 벤 애플렉의 연출력이 빛나는 순간이다.

<굿 월 헌팅>, <아마겟돈>, <진주만>으로 익숙한 스타 배우이지만, 이제 벤 애플렉은 <아르고>를 포함 4편의 영화를 만들어낸 어엿한 감독이다.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이 함께 <굿 월 헌팅>의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미 감독으로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준 벤 애플렉이지만, <아르고>는 그를 스타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하는 대표작이 될 것 같다. 실제로 미국의 주요 영화 매체들은 이번 <아르고>를 두고 "아카데미의 강력한 후보작(인디와이어)", "영리하고 근사한 스릴러. 심장을 조이며 식은땀을 흐르게 한다(할리우드 리포터)", "촘촘한 긴장감이 압권인 스릴러(슬래쉬 필름)" 등 벤 애플렉의 연출력에 찬사를 보내었다.

하지만 <아르고>는 미국 정치의 폐부를 제대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배경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자칫 위험한 영화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아르고>는 이 점 때문에 영화화하기까지 꽤나 오랜 고민과 준비가 필요했다.

또한 1979년 이후 아직도 냉랭한 미국과 이란과의 관계를 비추어볼 때, 제 아무리 미국 할리우드 산 영화라고 해도, <아르고>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개봉하는 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방적으로 자국의 편을 드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접근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당시 이란에 남아있는 남은 인질들을 위해 공로를 숨기긴 했어도 훗날 미 CIA 역사상 가장 영리한 작전으로 '역시나 위대한 미국'이란 자긍심을 일깨워주지만, 이란으로선 눈앞에서 인질을 놓쳐버린 뼈아픈 과오다.

때문에 <아르고>는 사건의 배경을 지극히 중립적으로 처리하고, 대신 토니의 아이디어로 영화 스태프로 급조한 6명의 인질을 구출하는 스토리에만 초점을 맞춘다. 작전 개시 직전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질을 구출할 수 있었던 힘은 위대한 미국이 아니라 위대한 개인의 결단력에서 비롯된다. 거기에 절박함이 만들어낸 영리하고도 통쾌한 작전은 예상치 못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심장을 조여오는 긴장감을 선사하는 벤 애플렉의 영리한 연출력이 만들어낸 앙상블. 이제 벤 애플렉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낯익은 스타 배우를 넘어 할리우드의 신화의 계보를 이어나갈 유능한 감독 중 하나가 됐다.

한 줄 평: 실화를 영리하게 속이는 스타 출신 감독의 촘촘한 연출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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