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비>는 순정만화 ‘캔디’의 스토리라인을 답습하는 영화다. 어머니는 없고, 아버지는 지적 장애인이기에 순영(김새론 분)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핸드폰 고리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식구를 위해 매끼 식사를 차려야 한다. 밤에는 작은아버지 망택(이천희 분)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카운터를 맡는 등, 그 나이 또래의 어린이가 감내하기 힘든 삶의 역경을 하나 가득 메고 살아간다.

작은아버지 망택은 순영을 미국에 입양시킴으로 단단히 한 몫 챙기고자 하며, 순영의 동생 순자(김아론 분)는 언니 순영이 받은 달러를 돌려주겠다고 하면서 달러를 받은 뒤엔 언니 몰래 한국 돈으로 바꿔 용돈을 챙긴다. 지적 장애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들은 순영의 뒤통수를 치기 바쁘니, 순영 가족은 순영을 위한다기보다는 순영을 착취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한데 순영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순자에 초점을 맞추면 이 영화가 또 다른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순영에 포커스를 맞추면 <바비>는 현실에 디스 당하는 캔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순자에 포커스를 맞추면 <바비>는 흡사 ‘식충식물’과도 같은 영화가 된다.

식충식물은 곤충이 좋아할 냄새로 곤충을 유인한 다음에는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이다. 이를 <바비>로 대입하여 살펴보자. 순자는 가난한 현실이 지긋지긋하기만 한 어린이다. 순자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미국으로 입양되는 길 밖에 없다. 이를 위해 순자는 다른 과목 시간에도 영어교재를 꺼내 공부할 정도로 악착같이 영어공부를 한다.

미국인 양아버지에게 입양되는 건 언니 순영이지 순자가 아니다. 하지만 순자는 미국인 양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악착같이 애를 쓴다. 언니를 밀어내고 자기가 대신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다. 가족이 가족을 ‘디스’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리고 순자는 마침내 꿈을 이룬다. 미국인 양아버지는 순영 대신 순자를 입양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지점부터 순자는 언니를 챙기기 시작한다. 언니가 입양되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언니를 디스하던, 자매애를 갈라놓던 순자는 자신의 최종 목적인 미국 입양이라는 꿈이 이루어지자 언니를 챙기기 시작한다. 작은아버지에게 휴대폰을 두 대 사달라고 하고선 한 대를 언니에게 건네며 미국에서도 연락할 것을 약속하는 순자의 모습에선 ‘가족의 해체’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가족의 재결합’으로 이뤄지는 패턴을 보여준다.

하지만 순자가 그토록 꿈에 그리던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에서 잘 먹고 잘 살 것이라 기대하던 순자의 염원과는 정반대로 흘러간다. 순자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허상에 도취되어 미국인 양아버지에게 입양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은, 식충식물이 내뿜는 향기에 도취되어 다가가는 곤충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자기 딸에게 이식할 심장을 구하기 위해 한국에서 수양딸을 찾는 미국인 양아버지의 모습은 식충식물과 매치되지 않는가. 아메리칸 드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올인하는 순자의 비극적 결말은 식충식물, 혹은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의 허망함과 다를 바 없다. 순자의 관점으로 <바비>를 보면 <깊고 푸른 밤>처럼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디스하는 영화로도 볼 수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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