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오후 '대선 후보 캠프에 묻는다-정치제도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의 모습. 왼쪽부터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 이인영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 서해성 비례대표제포럼 운영위원장,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송호창 안철수 캠프 공동선대본부장. ⓒ뉴스1

또다시 정치개혁 문제가 이슈의 중심에 놓였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무슨 때만 되면 정치개혁을 빙자한 온갖 황당한 얘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하지만 여기에 환호하는 대중들이 있다. 대중의 정치개혁에 대한 욕망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간 개혁이랍시고 제안된 모든 아이디어들이 시원찮은 결말로 귀결된 것도 현실이다. 때문에 정치인들은 사실상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정치개혁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이 대중의 욕망에 올라타서 자신의 기획을 관철시켜야 하는 운명을 떠안고 있는 존재가 정치인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의 정치개혁에 대한 발언에서 바로 이 부분을 조명해볼 수 있다면 우리의 정치에 대한 이해 또한 더 나은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최근 논란이 된 ‘먹튀방지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야권단일화의 부담을 가중시키려는 새누리당의 공세로 시작된 논란은 문재인 후보가 법안 개정에 대한 전향적 의견을 밝히면서 동시에 ‘투표시간 연장’을 제안함으로서 이슈의 중심이 되고 있다.

먹튀방지법이라는 것은 정당의 후보가 대선후보로 등록한 이후 선거보조금을 지급받게 되는데 중도사퇴를 했을 경우에 이 선거보조금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문제를 개선하자는 법안이다. 다시 말하자면 소위 ‘명분’이 있는 주장이라는 얘기다. 야권이 후보등록 이후에 어느 한 쪽이 사퇴하는 것으로 단일화를 이룰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 문제는 민주통합당 쪽에 압박으로 작용해왔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후보등록 전에 단일화를 이루면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상관이 없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후보를 중심에 놓고 보면 이에 대한 전향적 결단을 하면서 새누리당에 대한 역공을 펼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결단으로 인해 압박을 받는 쪽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뿐만이 아니다. 최대한 후보단일화 일정을 뒤로 미뤄야 승산이 있는 안철수 후보 측도 압박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민주통합당 측이 배수의 진을 친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 측이 안철수 후보 쪽에 ‘후보 등록 전에 반드시 단일화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즉, 문재인 후보의 ‘결단’은 명분도 얻고 박근혜, 안철수 양 진영에 대한 압박도 강화하는, 나름 괜찮은 수였던 것이다.

물론 안철수 후보 측도 일찍이 정치개혁을 말한 바 있다. 이해찬-박지원의 동반사퇴에 대한 요구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애초에 출마선언 당시 민주통합당 측의 단일화 제안에 대해 안철수 후보 측이 내놓은 답이었다. 이는 소위 ‘이-박연대’에 대한 민주통합당 내부의 반발에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됐다.

그러면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에 대한 비전을 문재인 후보의 ‘결단’에 비견해 한 번 따져보기로 하자. 우선, 명분은 있는가? 단적으로 말해 명분은 없다. 첫째, 당 외 인사인 안철수 후보가 왜 민주통합당의 지도부 퇴진을 요구하는가? 둘째, 이해찬, 박지원이 물러나고 구성되는 지도부가 이들과 변별력을 갖는 개혁적 인사로 채워질 것이라는 보증이 어디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나는 들은 일이 없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정략’이다. 문재인 후보와의 고리가 강한 이해찬 대표와 이들과 정치적으로 연합한 박지원 원내대표가 지도부에서 물러나면 당 내에서 안철수 후보와의 친화력이 강한 이들이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초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안철수 후보 측의 발언을 이해할 수 있으나 이게 정치개혁이라는 주제 안에서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해석이 갈릴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개혁의 외피를 뒤집어 쓴 ‘정략’만을 갖고 정치인을 평하는 것은 성급한 일일 것이니 다른 발언도 돌아보자. 한참 문제가 됐던 안철수 후보의 ‘국회의원 100명 축소’ 발언과 같은 것들 말이다. 여기에는 명분이 있는가? 없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중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는 유일한 기관인 입법부의 권한이 점차 약화되고 행정부의 권한이 비대해지는 경향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점은 고등학교 정치교과서에도 나오는 얘기다. 국회의원의 수를 늘리고 줄이는 문제가 특정 기관의 권력 구성을 좌우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의원 수 축소를 중앙당 폐지나 보조금 축소와 같은 문제와 엮어서 말하는 것을 바람직한 정치개혁의 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할 것이다. 이에 대한 정치학적 맥락에서의 비판은 그동안 많이 진행되어 온 바 있기 때문에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면 다시 정략의 차원으로 돌아가 보자. 안철수 후보가 이러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발언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 번째로 국민의 정치권 일반에 대한 냉소에 편승해보겠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글의 서두에 말했듯 정치인이 대중의 욕망을 대변하는 것 그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대중의 욕망을 대변하는 행위로서 자신의 정치적 기획을 내놓았다면 그것은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두 번째 지점을 말해보자면, 안철수 후보의 이 발언이 사실은 ‘안철수 대통령’의 탄생 이후를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야 하겠다.

안철수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그는 거의 90% 무소속 대통령일 것이다. 무소속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고 나면 졸지에 같은 야당의 신세가 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 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임기가 시작하자마자 말 그대로 집중포화 모드가 시작될 것이다. 이러한 구도에서 무소속 대통령은 의회에 휘둘리며 사실상 자기 계획을 관철시킬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안철수 후보 입장에서는 헌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의 의회권력 약화를 지금부터 이야기 할 필요가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이다.

이런 측면을 돌아보면, 정치개혁문제에 있어서는 안철수 후보가 정답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고 밖에 평할 수 없을 것 같다. 정략은 명분과 함께 작동할 때에야 제대로 된 파괴력을 갖는 것인데 안철수 후보의 경우 기성 정치권의 행태를 비난하면서도 명분이 없는 정략을 고집하는 구태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 안철수 후보의 강점은 기성 정치권에 빚이 없고 대중적 열망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러한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정략은 일정 부분 포기하더라도 명분을 취해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그렇다고 문재인 후보의 정치개혁안이 상대적으로 빛나 보인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투표시간 연장을 제외하면 지금의 시스템에 크게 영향을 강제하기 힘든 지엽적인 문제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것은 안철수 후보와 구분되는, 책임있는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으나 결국 정치개혁이라는 큰 프레임에 있어서는 당 내 일각과 안철수 후보 측이 요구한 인적쇄신에 휩쓸리고 있기 때문에 결코 현명한 행보를 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결국 대중의 정치개혁을 향한 욕망이 이번에도 해소되지 않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결론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 ‘정답’을 제시하는 정치가 아니라 이런 ‘과정’ 그 자체에서 정치개혁을 향한 한 발짝을 읽어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은 그런 수준도 안 되는 것 같다. 그저 비극은 되풀이 되고 대중의 정치에 대한 냉소만 커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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