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어느 평화로운 농촌 마을, 여기 30년 가까이 남편에게 모진 학대를 받으면서도 아들을 위해 꿋꿋이 견뎌낸 여자 로즈(올랭드 모로 분)이 살고 있다.

그녀의 남편이 운전하던 중 한 소녀를 자신의 차에 치여 숨지게 한 이후, 남편의 로즈를 향한 폭력은 극에 달한다. 남편의 계속된 학대에 로즈는 집을 떠나고자 마음먹지만, 그녀는 집을 떠나는 대신 남편이 소녀를 죽였던 장소에서 그 방식 그대로 남편을 의도적으로 살해한다. 그리고 로즈는 집을 버리고 아들 토마스(피에르 모르 분)이 살고 있는 도시로 도망친다.

2009년 <세라핀>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마르탱 프로보스트 감독과 유럽 최고의 연기파 여배우 올랭드 모로의 두 번째 만남으로 화제가 된 영화 <롱폴링>. 주인공 로즈와 그의 아들 토마스는 오랜 시간동안 남편에 의해 학대당했다. 한때는 로즈에게 다정다감한 남편이었지만, 첫 아들 데니스가 사고사당한 이후 급격히 폭력적으로 변한 남편은 로즈와 토마스를 괴롭혀왔다.

아버지를 증오하던 아들은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났다. 그럼에도 로즈는 가정을 지켰다. 그녀가 농장을 지킨 이유는 오직 한 가지. 토마스를 위해서다. 진작에 남편의 학대를 피해 도망칠 수 있었고 여행 가방도 여러 번 꾸렸지만 그녀는 참았다.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줄 알고, 참아낼 줄 아는 로즈의 모성애는 우리 어머니들의 희생과 헌신과 참 많이 닮아있다.

하지만 참는 데도 한도가 있는 법. 정도가 더 심해지는 남편의 폭력에 그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로즈는 농장을 떠나면서 잠시 자유를 만끽하나 싶었으나, 남편을 살해한 죄책감과 맞물려 행여나 자신의 범행이 들통날까봐 두렵다. 로즈의 죄책감은 한 소녀를 죽이고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고기도 먹고 술도 마시고 도박도 하러가는 죽은 남편과 너무나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아들 친구이자 특종에 눈이 먼 기자 데니스에 의해 로즈의 범행 사실이 밝혀지게 되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인 것을 알게 된 토마스는 혼란에 빠진다.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어머니의 범행은 받아들일 수 없는 아들은 로즈에게 자수를 권고하지만, 그럴수록 로즈는 아들의 곁을 떠난다.

오히려 유일하게 온전히 로즈 편이 되어주는 쪽은 우연히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몸을 숨기고자 묶은 여관 여주인 탈보 부인(에디스 스콥 분)이다. 그녀가 남편 살해범으로 지명수배 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묻지도 따지지 않고 로즈를 이해하고 지켜주는 탈보 부인의 도움으로 탈주에 성공한 로즈는 아직 끝나지 않은 희망에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경찰의 포위망은 점점 그녀들을 좁혀 오기 시작한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학대받아온 토마스와 25년 간 남편의 괴롭힘을 참아온 로즈. 이들 모자의 선택은 언제나 극단적이다. 과거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트라우마에 자해까지 서슴지 않는 아들과 남편에게서 도망치는 대신 남편을 죽이고, 자수가 아닌 도주를 선택하는 로즈의 행위는 모두 가정 폭력이 낳은 잔재다.

남편, 아버지로부터 오랜 폭력에 시달려온 로즈와 토마스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대상이 둘 다 동성이라는 점은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자신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참지 못한 동성 애인에게 그의 아버지에게 당했던 것처럼 똑같은 학대를 당하고 마는 토마스와 달리, 이전에 로즈와 일면식도 없었던 여관 주인은 헌신적으로 그녀를 믿어주고 지지해준다. 같은 여자, 어머니라는 동질감이 로즈와 탈보 간의 연대의식을 가지게 한 것이다.

오랜 폭력과 학대로 극도로 정신불안에 시달리던 로즈가 자신을 괴롭힌 남편을 우발적으로 살해할 수밖에 없었던 동기는 명확하고 제법 설득력 있게 다루어진다. 그럼에도 그녀의 살인 자체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영화 <롱폴링>에서 로즈는 가정 폭력의 피해자이면서도, 남편 살인의 가해자다. 하지만 영화는 로즈를 무작정 가정 폭력의 희생자로만, 그렇다고 남편 죽인 잔인한 여자로 일방적으로 몰아붙이지 않는다. 로즈의 극단적 행위에 대한 판단은 어디까지나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자유와 행복을 위해 곧 붙잡힐 것을 알면서도 세상 끝까지 가보자는 각오로 임하는 로즈의 날갯짓은 그녀가 저지른 과오와는 별개로 응원하고 싶어진다.

남편에게서, 아들에게서, 가정이란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한 나비의 나비처럼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어머니의 질주. 그리고 유일하게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로즈의 도주를 돕는 여관 주인의 동행은, 지금까지도 페미니즘 영화의 대표작으로 각광받는 <델마와 루이스> 못지않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10월 25일 개봉.

한줄 평: 가정 폭력은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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