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회 대종상 영화제는 말 그대로 '광해 천국'이었습니다. 영화제의 꽃인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부터 의상상, 음악상, 편집상, 촬영상까지 모조리 <광해, 왕이 된 남자>가 휩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천만 관객을 넘었고, 상업영화치고 상당히 잘 만든 작품인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올 한 해 동안 <광해, 왕이 된 남자>말고도 한국 영화계를 수놓은 훌륭한 작품들이 꽤나 많았습니다.
최민식, 하정우 주연의 <범죄와의 전쟁>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에 사법부 개혁에 대한 화두를 던진 <부러진 화살>. 한국 영화계의 정통 멜로 바람을 불러일으킨 <건축학개론>. 그리고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계의 위용을 만천하에 알린 <피에타>. 천만 관객만 넘지 않았을 뿐이지 관객들에게 큰 여운을 남긴 작품이 줄을 이은 2012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대종상 영화제는 <광해, 왕이 된 남자>만 기억하고 있는가봅니다. 오죽하면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기 위해 무대 위에 등장한 <광해, 왕이 된 남자> 제작사 리얼라이즈 픽쳐스 원동연 대표가 영화계 동료들에게 미안함을 표할 정도로, 받는 이도 머쓱하게 만드는 시상식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배우상은 예년과는 달리 줄 사람에게 주었다는 반응입니다. 인기상을 수상한 이병헌이 남우주연상까지 독식하는 바람에 <범죄와의 전쟁>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준 최민식이 무관으로 남게 된 아쉬움이 있었지만, <광해, 왕이 된 남자> 속 이병헌만 놓고 보자면 그 역시 남우주연상 탈만한 자격이 충분했거든요.
무엇보다도 가장 반가운 수상자는 <피에타>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조민수와 신인남우상을 수상한 김성균을 꼽고 싶네요. 조민수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가장 유력한 여주주연상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는 바람에 아깝게 여우주연상을 놓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녀의 수상은 '유력'에 가까웠습니다. 조만간 열릴 스포츠조선 주최 <청룡영화제>에서도 조민수에게 여우주연상을 허할지 의문이지만 일단 대종상에서 여우주연상의 한을 푼 조민수의 수상은 당연하면서도 진심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은 일입니다.
또한 남우조연상 류승룡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영화로 동시에 후보에 올라 신인남우상을 거머쥔 김성균의 수상은 오랜 인내의 시간에 주어진 달콤한 결실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던 김성균은 한때 생활고에 연기를 포기할까 싶은 생각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우연히 <범죄와의 전쟁> 오디션을 보게 되고 그 후 영화계에 입문한 김성균은 오랜 시간 연극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사람들은 <범죄와의 전쟁>에서 2대8 단발머리 하정우의 오른팔을 보고 그제서야 김성균을 알아보았지만, 그 이전부터 그는 준비된 배우이자 날개만 달아주면 언제 어디서라도 훨훨 날 수 있는 백조였던 것이죠. 역시나 그는 <범죄와의 전쟁> 한 편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는 배우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웃사람> 등에서도 광기에 가득 찬 섬뜩한 연쇄살인마 연기를 펼친 김성균은 이제 한국 영화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거목'입니다.
지나친 광해 수상 남발로 어느 때보다 말이 많은 대종상 영화제였지만, 그럼에도 영화제가 개최될 때마다 말이 많았던 배우들의 호응도는 참 좋았던 영화제로 기억되는데요. 그 중심에는 단연 류승룡이 있었습니다.
대종상 영화제가 열리고 영화제를 축하하기 위해 축하공연을 펼치는 박진영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있는 임수정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고 구애를 청했습니다. 거기까지는 그동안 영화제에서 축하공연 온 가수들이 배우들의 호응도를 높이기 위해 많이 했던 이벤트였죠. 그런데 거기서 임수정을 향한 박진영의 검은 손(?)을 퇴치할 흑기사가 등장합니다. 올해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임수정을 사랑하는 카사노바로 활약한 인연 때문인지, 류승룡은 임수정을 향한 박진영의 구애를 적극적으로 막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박진영의 이벤트에 재치 있게 화답한 류승룡 덕분에 머쓱할 수도 있었던 축하 공연이 유쾌하고 화기애애하게 진행될 수 있었죠.
류승룡의 남다른 재치는, 시상식의 백미이자 그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수상소감에서 반짝반짝 빛나게 됩니다. 올해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2012년 충무로를 빛낸 스타로 입지를 굳힌 류승룡은 남우조연상 수상이 유력시된 배우였습니다. 류승룡 역시 <광해, 왕이 된 남자>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해 광해 15관왕에 보탬이 되었지만(?), 류승룡을 최고의 매력남으로 등극하게 만든 영화로 <내 아내의 모든 것>을 꼽고 싶습니다.
역시나 개념 소감의 달인 류승룡 선생답게, 그는 흥행, 작품성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광해 천국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한 <내 아내의 모든 것>을 거론하는 센스를 발휘했습니다. "<광해>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지만,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수상 소감을 밝히겠다고 하여 좌중의 폭소를 유발한 류승룡. 류승룡이기에 할 수 있었던 재치 있으면서도 뼈있는 수상 소감 아니었을까요.
연거푸 호명 받아 상 받으려 나오는 사람이 미안해하는 시상식. 제 아무리 천만 관객에 작품성까지 갖춘 영화라고 해도 한 영화가 모든 부문을 독식하는 현상은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한 영화가 동시에 3~4개관을 차지하는 멀티플렉스 문화와 너무나도 닮아있었던 대종상 영화제. 그나마 대종상 측의 지독한 <광해> 사랑에 밀려 무관으로 남은 자신의 다른 출연작 <내 아내의 모든 것>과 아쉽게 상을 받지 못한 선배들도 살뜰하게 챙긴 류승룡의 '이름 모를 젖소'가 살린 시상식. 이번 광해 천국의 대종상의 히어로는 단연 류승룡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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