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이 '편집국장 임명동의제 쟁취'를 내걸고 지난 29일부터 창간 17년 만에 첫 파업에 돌입했다. 미디어오늘 편집국 기자 거의 전원이 파업에 참여함에 따라 31일 발행될 예정인 주간지마저 제작이 중단된 상황이다. 미디어오늘 기자들은 "지면을 통해 다른 언론사의 편집권 독립 문제에 대해 비판을 해왔으면서도, 정작 내부에는 편집권 독립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 자체가 없다"며 파업에 나섰으나, 미디어오늘 경영진은 '일방적인 파업'이라며 기자들의 요구를 일축하고 있다.

파업 둘째날인 30일에는 입사 13년차인 조현호 저널리즘사회부장이 보직을 사퇴하고 파업에 전격 합류했다. 조현호 부장은 이완기 미디어오늘 사장에게 제출한 보직 사퇴서에서 "후배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미디어스>는 조현호 기자의 동의를 얻어 보직 사퇴서의 전문을 게재한다.

미디어오늘 창간 이후 17년 만에, 제 입사 이후 12년 만에 미디어오늘에서 파업이라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사태의 전후과정을 떠나 만 12년8개월 동안 이곳에서 청춘을 바쳐온 저로서는 너무나 참담한 심정입니다. 후배들의 행동을 막을 수도, 그렇다고 결국 최종 결정권자인 대표의 결단을 이끌어내지도 못하는 제 모습을 보며 더욱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런데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래된 고참선배이자 보직 부장이라는 이유로 동료 후배들과 떨어져 빈 사무실에서 기사 몇 건 챙기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후배들의 빈자리를 떼우며 기사 한 줄 쓰는 일에서 더 이상 의미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제 저널리즘 사회부장의 직을 내려놓겠습니다. 그리고 평조합원으로서 미디어오늘의 민주적 편집국장 선임제도를 하루속히 도입하라는 후배들의 뜻과 함께 하려 합니다.

▲ 미디어오늘 노조가 창간 17년만에 첫 파업에 돌입했다. 사진은 29일 파업 출정식 모습. ⓒ미디어오늘 노조

대표이사에게 마지막으로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제작거부와 파업이라는 후배들의 행동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다소 거칠고 서툴러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후배들이 무모함을 감수하고 이런 행동에 나섰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저 역시 기자가 ‘펜’을 놓겠다는 선택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 행동에는 얼마나 많은 책임이 뒤따르는지를 후배들에게 충고했습니다. 또한 목숨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런 선택을 할 만큼 얻고자 하는 것이 그렇게 소중한 것인지를 되돌아보라고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후배들은 “이번에 이것을 위해 우리가 싸우지 못한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 “다시 돌아와 기사를 쓸 자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후배들이 지키고자 한 ‘이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단지 웬만한 언론사라면 대부분 갖춰져 있는 ‘임명동의제’나 ‘중간투표제’와 같은 제도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자들의 업무는 몸과 마음 뿐 아니라 치열한 사고의 결과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어떤 조직보다도 굳은 신뢰와 열린 소통이 갖춰진 조직문화가 필요합니다. 독재정권 당시 선배 기자들이 직책과 무관하게 모두가 힘을 모아 저항할 수 있었던 데엔 기자 조직의 이런 독특함이 있었기에 가능했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제가 겪어온 미디어오늘 12년 가운데 전임 대표 6년, 이완기 대표 시절 4년 등 모두 10년 동안 조직 내부는 끊임없이 갈등으로 시달렸습니다. 조직 상하 뿐 아니라 구성원 상호간에도 신뢰가 무너져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날이 많았습니다. 다른 언론사를 취재하면서 기자들이 똘똘 뭉쳐서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부러운 때도 적지 않았습니다.

미디어오늘의 조직과 문화가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 가운데엔 편집국장의 잦은 교체와 이에 따른 구성원들의 잇단 퇴사가 있었습니다. 일을 할 만 하면 조직이 흔들리고, 사람들이 떠나곤 했습니다. 전임 대표 시절 편집국장은 6차례(김현수-김종배-김현수-이영태-박원식-박근애), 이완기 대표 시절 4차례(박근애-노광선-백병규-이정환-윤성한) 교체돼 왔습니다. 10년 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은 10명, 1년을 채 버티지 못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편집국장이 바뀔 때마다 구성원들은 혼란스럽고 무기력했습니다. 간혹 부당하다고 느껴질 때도 이의제기 한 번 제대로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곡절 속에서 기자들이 편집국장 임명 때 구성원들의 의견이 수렴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입니다. 5년 전 처음 단체협약안에 편집국장 임명제도 수립을 위해 협의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것도 바로 그래서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없었습니다. 전임 대표나 이완기 대표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분 대표는 ‘우리 조직으로서는 아직 시기상조’, ‘작은 조직에서는 조직 분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등의 우려를 들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많은 이들이 떠났습니다. 그리고 최근 거의 새로운 이들이 미디어오늘 구성원의 다수가 됐습니다.

입사한지 얼만 안되는 이들까지 이번에 왜 이처럼 ‘파업’이라는 마지막 수단까지 불사하고 나선 것일까요? 그동안 그들이 겪었던 마음고생이, 절박함이 그만큼 컸던 것은 아닐까요? 이들에게 ‘작은 조직에서 국장임명동의제도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편집권독립을 위해 다른 언론사들이 민주적인 편집국장 임명 동의제도를 도입할 때마다 독자와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을 해온 미디어오늘이 정작 내부에선 이와 유사한 장치는커녕 국장 교체 때마다 내홍을 겪는다는 현실에 후배들은 더욱 큰 자괴감과 상처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후배들에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거나, 시간을 갖고 협의해보자고 호소하거나 질책하면서 ‘미디어오늘은 이러니 이해하라’고 더 이상 설득할 자신이 제겐 없습니다.

대표께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후배들의 요구와 방식이 거칠고, 인내심이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에 결코 어떤 사심이 있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소 성급해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들이 더 이상 이런 문제를 갖고 소모적으로 자신들의 정력을 낭비하기 싫어서 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후배들이 요구하는 편집국장 임명동의제 등을 도입하는 것은 미디어오늘 조직의 신뢰와 소통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후배들은 조직의 신뢰와 소통을 제도를 통해 보장받고 싶어 합니다.

요구사항에 대해 서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아쉬움과 섭섭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럴 땐 대표께서 큰 양보를 하시는 것이 사태를 슬기롭게 풀어가는 첩경입니다. 특히 후배들이 제작거부와 파업에 나섰다고, 미디어오늘 내부의 문제를 노동관서에 의탁해 신고하고 서로 조사를 받는 모습,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진보언론을 표방하면서 고작 노동청이 우리 문제 안으로 들어와 그들의 손에 우리의 문제를 맡긴다는 것은 치욕스럽기까지 합니다.

대선이 코앞입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후배들은 펜을 놓고, 회사는 이를 그대로 놓아둔다면 역사 앞에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겠습니까. 후배들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다시 한 번 열린 마음으로 살펴보시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시길 부탁드립니다. 부디 높고 멀리 보십시오.

2012년 10월 30일 조현호 드림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