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왼쪽)와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오른쪽)의 모습 ⓒ뉴스1

미디어스는 이미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의 삼파전이 시작된 시점에 이번 대선에 좌파진영의 ‘마이너리그’가 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링크) 좌파후보와 이정희가 완주하면서 두 주자 중 어느 쪽이 승리하는지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예상이었다.

현재 시점에서 좌파진영에서 내세운 후보는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 뿐이다. 두 후보 모두 야권연대를 통한 진보적 정권교체에 복무하겠다고 천명하고 있고 야권연대에 좌파진영이 포섭되는 것에 반대하는 흐름이 있지만 진보신당 연대회의를 포함 그 어떠한 단체에서도 아직까지 후보를 내세우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심상정과 이정희의 행보는 ‘같은 셈법, 그러나 다른 상황, 그렇기에 다른 대응’을 가져오겠다고 평할 수 있다.

심상정 후보와 이정희 후보는 야권연대 및 후보단일화 틀 안에 들어가는 것을 정치적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같은 셈법’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민주통합당과 시민사회 측에서 그와의 연대에 공감을 느끼는 것은 심상정 후보일 뿐 이정희 후보는 아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그러나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그렇기에 심상정 후보는 자신의 선명성을 강하게 내세우면서 문재인과 안철수 두 후보를 견인해 가며 ‘진보후보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야권연대 틀 안으로 포섭되는’ 최선의 상황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새누리당 김종인의 말에까지 동의하며 사교육 전면금지를 주장하고,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를 촉구하며, 안철수의 정치개혁안을 비판하면서 진보정의당의 정치개혁안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선명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단일화 논의에 초청해 달라는 사인에 해당한다는 것이 사태의 핵심이다.

반면 이정희 후보로서는 야권연대를 원하지만 그것을 얻어내기가 힘든 입장이고 그럴 경우 완주까지 불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우리를 야권연대 틀 안에 부르지 않는 것은 새누리당의 승리에 기여하는 길이다’ 류의 정신승리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탄압(?)받으면 탄압 받을수록 그것을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 전형적인 ‘피해자 서사’의 길이다.

심상정 후보는 향후로도 이런 노선을 취하면서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국면에 밥숟가락을 얹어 야권단일후보를 만들어 가는 길을 택할 것이다. 그녀에게 고민은 두 사람이 단일화를 할 것인가와, 또 그 단일화 논의에 초청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둘 중 누구 하나를 편들 것인지 혹은 중립을 지킬 것인지 등이 될 것이다. 진보정의당은 두 사람의 후보단일화 논의가 시작될 경우엔 그 테이블에 초청받을 가능성이 높기에 이런 고민들이 곧 현실이 되어 닥쳐올 가능성이 높다.

다른 가능성으론 그녀와 우리 모두에게 상상하기 싫은 일이나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의 완주 여부가 고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과거의 진보정당 후보들과는 달리, 당내에서 불출마를 원하는 이들도 만만치 않았던 만큼 일이 잘 안 풀릴 경우 마지막 순간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며 사퇴하는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정희 후보 역시 향후로도 야권단일화 논의에 러브콜을 보내겠지만 이에 대해 응대하는 세력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통합진보당 측에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므로 상대방을 새누리당의 음모에 놀아난 이들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별도로 완주를 해야 할지 하지 않을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이쪽은 단일정파 정당인만큼 심상정 후보에 비해서도 의사결정의 구조는 단순하다. 역시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사심없이 사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고, 단일화가 이루어진다면 그 야권 단일후보에 수렴되지 않는 진보 층의 지지율을 등에 업고 완주해 보겠다는 욕망을 품게 될 수도 있다.

1997년 민주노동당 전신 국민승리21의 권영길 후보 이후 진보세력의 몫과 위상이 가장 퇴색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대선이다. 심상정 이정희 두 후보를 둘러싼 어지러운 정치공학을 살피면, 진보세력이 처하게 된 현재의 상황이 이 정치공학과 관련이 없지는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물론 두 후보는 자신들의 정치공학이 오늘날의 진보세력의 퇴색 및 몰락을 만들어낸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라고 보겠지만 말이다. 여러모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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