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보고 강제한류스타, 강제해외진출이라고들 했다. 싸이가 생각지도 못했는데 미국에서 강남스타일 신드롬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중에 싸이가 대학축제 때문에 귀국했을 때, 강제한류스타를 패러디해서 강제출국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일부에서 그 패러디를 못 알아듣고 싸이를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국익을 위해 강제출국시켜야 한다는 말로 오인해서 반발하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어쨌든, 영화 광해의 천만 관객 돌파도 싸이와 같은 의미에서 강제 천만이라 할 만하다. 그 누구도, 영화 광해 측도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못했던 천만이기 때문이다. 배급사 측에선 광해 흥행의 최대 목표로 700만 명 정도를 상정했었다고 한다. 개봉 시기가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없는 때였다. 여름방학도 겨울방학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기 자체가 천만 관객이 터질 시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언론도 모두 광해를 무시했다. 일단 싸이 때문에 광해를 조명할 여력이 없었고, 와중에 김기덕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었다. 김기덕의 수상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대기업 독점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며 영화들을 ‘블록버스터 대 작은 영화’의 틀로 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김기덕 프레임에 의해서 광해는 대기업의 스크린 독점 사례 중 하나 정도로 치부됐다. 일단 그렇게 포지셔닝되니까 관객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놀라거나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일이 못 됐다. 어차피 대기업이 스크린 장악해서 밀어붙인 성과에 불과하니까.

이런 프레임 때문에 광해가 천만 관객을 넘은 후에도 계속해서 광해와 관련된 기사엔 ‘광해의 그림자’ 류의 논조가 나온다. 나도 개인적으로 광해와 관련해서 받았던 인터뷰 요청 중에 태반이 대기업 스크린 독점의 폐해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이건 잘못된 시각이다. 물론 대기업의 스크린 독점은 심각한 문제다. 더 나아가서 천만 관객의 영화가 존재하는 것 자체부터가 문제다. 그런 로또 대박식의 흥행보다 100만에서 300만 정도 되는 중간급 흥행영화가 많은 것이 우리 영화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다. 왜 툭하면 온 국민이 한 영화를 봐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 문제는 별도로 논의할 일이고, 광해 천만은 다른 프레임으로 봐야 한다. 강남스타일 신드롬을 만든 것이 미국인들이라면, 광해 천만을 만든 건 한국인들이었다. 그 누구도 예측하지도, 기대하지도, 보도해주지도 않았는데 한국인들이 스스로 천만 관객이라는 사태를 만든 것이다.

대기업이 스크린 독점하고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는다고 국민이 이런 일을 거저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CJ는 광해 전에 흥행실패 사례가 계속 나와서 흉흉한 소문까지 나도는 상황이었는데, 대기업이 그렇게 흥행을 좌지우지하는 마법사라면 어째서 그랬겠는가?(물론 다시 말하지만 대기업의 힘이 대단히 강하긴 하다)

비수기에 이례적으로 터진 광해 강제천만 사태에는 한국인의 열망이 담겨있다. 광해 신드롬은 한국인 특히 2040 세대가 2012년에 외치는 메시지라고 봐야 한다. 광해 천만을 만든 주체를 대기업이라고 해석하는 건, 이러한 국민의 열망을 폄하하는 행위다. 국민은 광해가 대기업 영화건 아니건 그런 것과 상관없이 광해에게서 자신들의 마음 속 바람을 읽었고, 천만 명 이상이 그 영화를 관람함으로써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말하자면 이건 투표행위였다. 미리 치른 대선과도 같았다. 국민은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의 방향과 지도자의 상을 광해 관람을 통해 선언했다. 언론이 할 일은 이것을 읽어내고 현실정치에 이런 열망이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해 천만 관객 사태를 폄하해선 안 된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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