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23일 인하대 강연에서 밝힌 ‘의회·정당·선거제도 개혁 방안’이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반응은 3가지로 엇갈린다.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을 비롯한 정치 전문가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이나 인터넷 토론 사이트 등에서 주를 이루고 있는 반응은 ‘환영한다’이다. 정치권 인사들은 개인적인 차원에선 ‘아마추어같다’는 비판을 하고 있지만 정당의 공식 입장은 사뭇 신중한 편이다.

▲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23일 인하대 강연을 통해 '정치 개혁 3대 과제'를 제시했다. 국회의원 숫자 100명 축소, 중앙당 및 공청권 폐지, 완전 국민경선제를 제안했다. 안 후보의 이런 제안은 이후 격렬한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 사진은 인하대 강연 모습 ⓒ진심캠프

안철수의 정치 개혁은 결국 ‘반 정치’의 전면화였나?

안 후보의 3대 정치 혁신 제안은 ‘국회의원 100명 축소’, '중앙당 폐지 및 축소‘, ’공천권 폐지 및 완전국민경선제 실시‘이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특권을 내려놔야 한다”며 “국회의원 숫자를 200명으로 줄이면 1년에 5백억에서 1천억 정도를 절약할 수 있는데 그 돈으로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원 수에 따른 국가보조금 제도 역시 “기득권의 산물”이라고 규정한 안 후보는 “국고 보조금 액수를 줄여 민생에 쓰거나 정책을 개발할 때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중앙당 폐지 문제 역시 “패거리 정치, 계파 정치”의 종식을 위해 필요하단 입장이고, 공천권 역시 “국회의원들의 거수기 역할을 구조화한다”고 비판했다.

이런 안 후보의 입장은 물론, 전혀 낯선 것은 아니다. 장삼이사들의 술자리에서 기성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극단적으로 성토될 때, 자주 등장하는 논리이다. 국회의원의 생산성과 비효율성을 문제 삼아 깔끔하게 정치를 ‘축소’하자는 그의 논법은 ‘국회의원 줄 돈으로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는 장삼이사들의 단순한 이분법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를 두고 한 정치평론가는 “안 후보의 정치개혁안은 복덕방에서 계속 신문을 보며 시국토론을 하고, 정치 혐오증을 키운 아저씨들의 전형적인 논법”이란 촌철을 하기도 했다.

결국,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기반으로 이에 대한 저항은 곧 기득권 수호라는 논리를 전면화하고 있는 안 후보의 태도는 지난 수년 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정치적 냉소주의를 극단적으로 재현해내는 ‘반 정치’ 선언이란 지적이다. 이에 대해 ‘자음과 모음R' 기획위원인 박권일 씨는 안 후보의 정치 개혁안이 발표된 직후 개인 트위터를 통해 “동네술집 만취토론에서나 튀어나오던 얘기가 대선유력후보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되니까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라며 안철수 식 정치개혁대로라면 “경찰비리가 많으니 경찰수를 줄이고, 이혼이 많으니 결혼을 못하게 하자는 것”이냐고 조소하기도 했다. 박 기획위원의 이 반응은 안 후보의 정치개혁안이 가지고 있는 맹점을 잘 포착해낸다.

안철수 ‘정치 개혁안’의 진짜 문제점

안 후보의 정치 개혁안은 ‘현실 정치가 엉망이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해법으로 제시한 내용은 ‘개혁’이 아니라 오히려 엉망인 상황을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 있는 ‘개악’이란 지적이 높다. 현실 정치를 정상화하고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닌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방치하는 결론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자는 주장은 ‘비례대표성의 약화’와 ‘삼권분립 기능 약화’ 차원의 문제가 지적된다. 안 후보는 미국과 일본의 상황을 의원 숫자 축소의 근거로 제시했는데, 오히려 우리는 의원 수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숙명여대 홍성수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OECD국가 의원 1인당 인구는 평균 9만8천명이고, 유럽국가 평균은 5만명, 우리는 16만2천명”이라며 “유럽국가평균에 맞추려면 997명으로 오히려 늘려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미국의 상황은 주정부와 주의회가 한국의 지방자치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자율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체제인지라, 연방의원 숫자와 단순비교하는 것이 적절한 일은 아니다. 대의제 체제에서 국회의원이 국민의 의사를 집단적으로 대변한다고 봤을 때, 그 숫자는 늘어날수록 사회적 요구와 권리 담론이 풍성해진다고 보는 편이 마땅할 것이다. 국회의원 문제의 핵심은 특권의 폐지와 과다 대표성에 따른 권력화인데, 이는 국회의원 숫자를 조정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결코 아니다.

국회의원 숫자를 줄여 예산을 절감하자는 안 후보의 주장 역시 대단히 기능적이다 못해 저차원적이란 지적이 높다. 국가 예산 차원에서 1000억 원이 큰돈도 아니지만 국회의원들이 행정부를 감시, 견제하는 기능이 민주주의 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했을 때, 이 돈을 낭비적 차원이라고 이해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홍 교수는 안 후보의 제안에 대해 “이론적으로 봐도 옳지 않고, 현실적으로 보면 가능하지도 않은 얘기”라며 “만약 순수하게 '비용'의 문제라면, 개별 의원들의 권한을 축소하고 숫자는 늘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당 문제 역시 폐지가 합리적 안이 될 수 없단 의견이 많고, 보조금 문제 역시 진성당원제의 실현이 요원한 상황에서 정치의 문턱을 높이는 역효과가 초래될 것이란 지적이다. 과거 지구당 폐지 법안이 '정치개혁' 법안으로 통과되었을 때 사실상 부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보수정당은 별 타격이 없었던 반면 진성당원제 기반의 민주노동당 등만 타격을 받았던 사례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는 안 후보가 단 한 명의 국회의원만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 후보의 제안이 아무런 현실성이 없단 점이다.

▲ 무소속 안철수 후보ⓒ연합뉴스

그렇다면, 안 후보는 왜 이런 제안을 했을까?

안 후보 캠프의 정치 쪽 전문가들이 아무리 현실 정치에 대한 경험이 일천하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제안이 가져올 파장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부 참가자들은 안 후보의 발언을 전혀 알지 못했으며 그 방향이 안 후보의 정치개혁 방안이라면 캠프에서 퇴장하겠다는 입장까지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발언은 던져졌다. 물론, 안 후보의 독자적 입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이 ‘실기’에 대해 아무도 ‘수습’하지 않고 있는 상황 역시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23일 안 후보의 발언 이후 진심캠프 측 관계자는 안 후보의 발언을 제대로 설명 또는 해명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전략적 판단으로 봐야 한다. 파장과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이러한 발언을 통해 안 후보가 겨냥한 노림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안 후보가 강조한 ‘기득권’과 ‘특권’에 대한 언급에서 그리고 안 후보의 제안 이후 엇갈리고 있는 반응에 그 답이 있다. 안 후보의 제안에 대해 정치 평론가들과 학자들 그리고 일부 개혁적 이미지의 국회의원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그 외는 ‘침묵’하고 있고 심지어 바닥 여론은 ‘환영’하고 있기까지 하다.

안 후보 제안에 대한 민주당의 공식 반응은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에 관한 고민은 이해한다. 하지만, 제시한 방향과 내용에 대해서는 책임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고 본다”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안 후보의 발언이 대중 정당의 입장에서 매우 상대하기 까다로운 교묘한 주장이란 점을 보여준다. 민주당 입장에선 안 후보의 제안을 대대적으로 부정할 경우 자칫 ‘기득권’, ‘특권’의 이미지를 옴팡 뒤집어 쓸 수 있다. 정치적 냉소와 허무주의가 옳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대중의 인식이 거기에 있는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안 후보의 제안을 전한 기사에 달린 댓글이나 몇몇 토론형 게시판 사이트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안 후보의 제안에 현실성을 문제 삼는 분위기는 보이지만, 그 제안의 방향 자체에 대해선 환영하는 입장이 더 많아 보인다. 그만큼 기성 정치가 싫은 것이고, 국회의원들이 못 미덥다는 방증이다.

결국,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을 업고 현상으로 등장한 안 후보 입장에선 이번 제안을 통해 잃을게 별로 없단 분석이 가능하다. 정치 개혁에 대한 선명한 의제를 확보하며, 문제로 지적된 내용들에 대해선 오는 11월 10일 발표할 총론에서 수정/보강하면 된다. 대신, 그 전까지 안 후보는 정치 개혁 이슈에 대한 주도력을 발휘하며, 이에 저항하는 이들을 ‘기득권 세력’ ‘정치 특권층’으로 옭아매는 프레임을 펼칠 수 있게 된 셈이다. 실제 내용적 허무함과는 별개로 대중 선전의 차원에서 보자면 안 후보의 정치 개혁 제안은 ‘마당 쓸고 돈 줍는 꽃놀이 패’인 셈이다.

하지만 눈치 빠른 이들은 벌써 감지했겠지만, 이건 전형적인 ‘포퓰리즘’의 태도다. 이에 대해 박권일 기획위원은 “안철수는 이제 정책을 조금만 포퓰리즘으로 틀면 하시모토가 될 것이다. 착한 이명박이라니, 턱도 없는 과소평가였다”는 맨션을 남기기도 했다. 일본의 극우 정치인인 하시모토는 자민당과 결별한 이후 독단적 추진력과 극단적 성향을 결합한 포퓰리즘적 행태로 전문가와 대중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며 ‘하시즘’이란 신조어로 불리고 있는 정치인이다. 정치개혁 제안이 안철수 현상의 실체적 진실을 폭로하는 계기적 사건이 될지 아니면 후보의 단순한 실기 해프닝으로 끝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안철수 현상의 핵심으로 지적됐던 ‘정치개혁’이 첫 제안부터 절룩거리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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