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계약선수(FA) 자격 획득과 외국 리그 진출 문제로 소속 구단과 갈등을 겪어 온 여자 프로배구의 '간판' 김연경(24)에게 대한배구협회가 국제이적동의서(ITC)를 발급하기로 결정, 김연경이 현재 합류해 있는 터키 페네르바체에서 활약할 수 있을 전망이다.

배구협회 박성민 부회장은 22일 서울 와룡동 문화체육관광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연경에게 이른 시일 내에 ITC를 발급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부회장은 회견에 앞서 문화체육관광부 김용환 2차관, 임태희 대한배구협회장, 대한체육회 박용성 회장, 한국배구연맹(KOVO) 박상설 사무총장, 흥국생명 권광영 단장 등 정부와 체육계 인사들이 모여 회의를 한 결과 김연경의 해외 진출을 뒷받침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이들은 우선 현재 규정상 김연경이 흥국생명 소속인 점을 감안해 임대 선수 신분으로 조속히 해외진출과 관련한 계약을 마무리하고 이와 관련한 KOVO규정을 다른 스포츠 종목과 해외 규정 등을 고려해 3개월 이내에 개정하기로 했다.

▲ 2012 런던올림픽 여자 배구 3,4위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김연경이 서브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KOVO 규정에 따르면 프로배구 선수는 6시즌을 뛰어야 FA 자격을 얻게 되어 있는데 배구협회는 이 규정은 그대로 두되, 자격을 채우기 전에도 선수가 해외 진출을 원한다면 FA 자격을 얻어 외국에서 뛸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하기로 했다.

박 부회장은 이러한 내용이 "참석자 모두가 동의한 '최종 결정안'"이라며 "만약 KOVO 이사회에서 이에 반대한다면 배구협회에서 권한에 따라 ITC를 발급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정리하면 이번 발표문의 주요 골자는 규정상 김연경이 흥국생명 소속인 점을 감안, 3개월 안에 흥국생명과 페네르바체 사이에 김연경의 임대계약을 체결하고 김연경에게는 이른 시일 내에 1년 기한의 ITC를 발급한다는 것이다. 또한 FA와 관련된 KOVO 규정 3개월 이내 개정해 FA규정은 현행대로 6시즌으로 하되 선수가 원한다면 외국진출이 가능하고 국내 복귀 후 잔여기간을 채우는 것이다

김연경의 현재 소속팀을 흥국생명으로 인정하기는 했으나 향후 김연경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확실하게 김연경 측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박 부회장이 이번 합의안에 대해 "김연경의 주장이 실질적으로 반영된 셈"이라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합의에 대해 김연경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지금부터 운동에만 집중해서 코트에서 멋진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할 거고, 지금까지 도와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리고 정말 열심히 뛰어서 꼭 보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혀 만족감을 나타냈다.

물론 이번 합의 과정에 KOVO 이사회가 빠져 있어 논란의 불씨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번 합의 과정에 논란의 당사자인 흥국생명의 단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대세가 흔들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사실 2012 런던올림픽을 전후로 불거진 이번 ‘김연경 사태’가 이렇게 일방적인 김연경 측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FIVB가 김연경을 흥국생명 소속 선수로 유권해석을 내렸고, 이에 김연경 측이 반발하면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 제소를 운운했지만 상황은 전반적으로 김연경 측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국정감사 기간 국민들의 눈을 의식한 정치권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한 목소리로 김연경 감싸기에 나서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 한국 여자배구의 '거포' 김연경(24)이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해외 이적과 관련한 문제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합류해 있는 페네르바체에서 경기에 뛸 수 없는 상황이 된 김연경이 급거 귀국해 야당 국회의원들을 앞세워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 자리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이 김연경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뜻을 밝히면서 김연경은 새로운 동력을 얻었다.

노웅래 의원은 "세계적인 배구스타 김연경 선수가 배구협회의 애매한 규정 때문에 선수 생활을 존속할 수 없는 위기에 빠졌다. 무엇보다 선수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협회가 구단의 이익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김연경 선수가 하루 빨리 세계 무대에서 국위를 선양할 수 있도록 문방위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민희 의원은 "이 문제에 대해 보고받고 검토를 했다. 힘을 합치면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다. 배구협회는 이제부터라도 선수에게 무게를 실어주는 정책 결정을 해주기를 바란다. 흥국생명도 이 문제에 대한 결단이 어려울 수 있겠지만 김연경은 많이 컸다. 국제무대에서 훨훨 날개를 펼 수 있도록 대승적인 결정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전병헌 의원은 "기업의 배타이기주의가 선수의 날개를 꺾어서는 안 된다.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선의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 문방위는 기업의 눈치를 보고 있는 배구협회의 실태와 선수를 옭아매는 독소 조항을 검토해 사태 해결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흥국생명 구단에서 김연경의 기자회견에 대해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행위라며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김연경의 기자회견 직후 김연경과 그의 어머니의 눈물을 목격한 여론의 동정론이 힘을 얻으면서 이번에는 여당인 새누리당까지 나서서 김연경 문제의 전향적 해결을 촉구하며 흥국생명을 압박, 결국 이번 합의문 발표에 이를 수 있었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이 가능했던 또 다른 이유는 대통령실장을 지낸 현 정권의 핵심 실세가 배구협회장 자리에 앉아 있고, 지난 런던올림픽 이후 정치권에 대해 바짝 엎드려 있는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이 있었기 때문으로도 보여진다.

어쨌든 김연경은 자신의 해외리그 진출 문제를 자신의 뜻대로 관철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과정과 절차에 대해서는 분명 바람직스럽지 못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배구계 내지 체육계 내부적으로 적극적인 토론과 합리적인 합의 과정이 생략된 채 정치권의 입김에 놀아난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만약 김연경 사태가 런던올림픽이 끝난 직후에 열린 국정감사 기간에 불거지지 않았다면 김연경 측에 유리하게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은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다.

김연경이 자신의 바람대로 국제무대에서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물론 반갑지만 그런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과정에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한 점은 분명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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