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에 반정부 좌파세력이 본격 가담하고 수백 명이 청와대로 쳐들어가겠다며 경찰에 맞서 새벽까지 수도 한복판에서 불법 시위를 벌인 것은 '표현의 자유' 범위를 넘어서는 일탈이다. 과연 이들이 국민 건강을 염려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려고 거리에 나선 순수한 시민뿐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 동아일보 5월 26일자 31면.
오늘자(26일) 동아일보 31면 사설 <누구를 위해 "청와대로 쳐들어가자"고 하는가>의 일부분이다. 동아는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열린 촛불문화제가 차로와 인도를 점거한 시위로 변질되었다고 언급한 뒤 특정 세력이 계획적으로 시위에 가담했다는 의심(?)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동아일보와 색을 같이 하는 중앙일보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중앙은 한발 더 나아가 경찰이 연행한 '과격 행위자' 37명을 법에 따라 엄청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의 주장은 이렇다.

"우리는 이번 사건이 새 정부 들어 공권력이 행사된 첫 대규모 불법시위라는 점에서 검찰의 대응에 주목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이후 줄곧 법과 원칙의 준수를 강조해 왔다.…사법당국은 불법행위자 처벌과 아울러 이번 사태에 불온 세력이 개입했는지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또한 앞으로도 법과 원칙에 의거해 불법시위에 강력히 맞서야 한다"

▲ 중앙일보 5월 26일자 30면.
조선일보도 오늘자 8면 <시위대 "청와대로 가자"…法 사라진 '서울의 주말'>에서 "특히 25일 밤 서울 도심 도로는 시위대의 전유물이었다"며 "이들은 인도에서 차도로 내키는 대로 내려가고 올라오기를 반복했으며, 도로 완전 점거와 일부 점거를 멋대로 반복했다"라고 촛불문화제의 '불법적' 성격에 초점을 두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5월 26일자 8면.
촛물문화제를 보도한 오늘자 조중동의 기사 제목을 살펴보자.

조선일보 <차도로 뛰어든 '촛불집회'>, <시위대 "청와대로 가자"…法 사라진 '서울의 주말'>
중앙일보 <촛불집회 17번 만에 불법시위로 변질> <시위대 이틀째 도로 불법점거>
동아일보 <촛불, 끝내 차도 불법점거> <"청와대로 가자" 구호따라 차도로 우르르>

이렇듯 조중동은 지난 주말 서울 청계광장과 광화문 사거리 일대에서 진행된 촛불문화제를 △불법시위 △도로 불법점거△특정세력 가담 이렇게 3가지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경찰에 신고되지 않은 상태로 야간에 열렸기 때문에 불법시위이며 촛불문화제에 참석자한 시민들이 무단으로 도로를 불법으로 점거해 일대 교통이 큰 혼잡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또 '일부 시위전문가'들이 가세해 점차 과격화되었다는 주장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는데 조중동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일부 시위 전문가'와 '특정세력'은 같은 표현으로 이는 민주노총 조합원과 전교조 교사들을 의미한다.

조중동의 이런 식의 보도는 하루 이틀이 아니기에 새삼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난 이틀에 걸친 촛물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외면한 채 의도적으로 '불법'에만 초점을 두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조중동의 지적대로 이번 촛물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한 것은 사실이다. 이로 인해 인근 도로가 통제돼 교통이 마비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조중동은 왜 시민들이 도로를 점거했는지에 대해선 철저히 묵과하고 침묵하고 있다. 시민들이 어떠한 심정으로 청계광장에 모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지한 접근없이 그저 일부 세력의 선동에 따라 수동적으로 참여한 몰지각한 시민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제는 지겨운 보도 태도다.

이런 가운데 오늘자 한국일보는 왜 촛물문화제가 거리 불법시위로 번졌는지를 의미있게 조명해 눈길을 끈다.

한국일보는 3면 <쇠고기, 불만 총체적 反정부 시위로 돌변>에서 "참가자들의 절반가량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데는 상당한 정서적 공감대가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면서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발언을 빌어 "시민들은 정부의 비현실적인 쇠고기 협상 자세와 국민은 안중에 없는 듯한 태도에 불만과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 한국일보 5월 26일자 3면.
김 교수는 이어 "각종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국민의 뜻은 분명히 드러나 있는데, 정부가 책임을 지려는 자세없이 문제를 대충 덮으려는 모습에 분노하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경향신문도 11면 <미국소 반대서 정권비판으로 확산>을 통해 "이 대통령이 지난 22일 사태 수습을 위해 발표한 '대국민 담화'는 되레 시민들의 분노만 촉발시켰다"며 "문제의 본질인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성과 쇠고기 수입 재협상에 대한 언급은 피한 채 격해진 민심을 무마시키는데 급급했다는 비난이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 경향신문 5월 26일자 11면.
한겨레도 3면 <요지부동 정부에 '촛불 분노'…경찰 강제진압이 기름 부어>에서 "이틀 연속 진행된 시민들의 거리행진은, 촛불집회에도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며 "참석자들은 재협상 결과나 농림부 장관 해임안이나 달라진 게 뭐가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전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난 이틀 동안 청계광장 인근에서 진행된 촛불문화제에 조중동 기자들이 현장에 있었다면 많이 불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촛불집회 내내 시민들은 조중동을 '쓰레기'로 규정하고, 조중동 기자들을 향한 분노를 서슴없이 내뱉는 등 조중동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 한겨레 5월 26일자 3면.
그래서 그것 때문에 "폭력경찰 물러가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등을 외치는 시민들을 '특정 세력이 계획적으로 시위에 가담했다'고 보도한 걸까. "이런 게 민주주의냐"며 울부짖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외치는 시민을 향해 조중동이 '과격 행위자' 37명을 법에 따라 엄청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까.

하지만 적어도 언론이라면 '불법', '도로점거'라는 표현을 쓰기 이전에 왜 시민들이 늦은 시각까지 그곳을 지켰는지 그리고 그들이 왜 촛불집회에서 도로점거까지 나오게 됐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불법'을 강조하는 조중동의 오늘자(26일) 지면을 보며 왜 시민들이 촛불집회에서 조중동에 대한 분노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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