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에서 농민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통곡하고 싶어도 통곡할 힘조차 없다. 정권이 바뀌면 바뀔수록 살기가 더 고단하다. 노무현 정권은 농촌경제가 파탄 나도 좋다며 미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를 밀어붙였다. 참다못해 아스팔트로 뛰쳐나가봤자 돌아오는 것은 경찰의 곤봉세례 뿐이었다. 언론은 국가경제를 볼모로 하는 과격세력이라며 가짜여론의 돌팔매질을 퍼부었다.

이명박 정부는 한술 더 뜬다. ‘친기업’, ‘친기업’을 그것도 영어로 외쳐대더니 미국산 쇠고기 수입규제를 확 풀어버렸다. 광우병의 위험성을 묵살하고 연령과 부위에 가리지 않고 무제한 들여오도록 말이다. 한-미 FTA의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다 값싸고 질좋은 고기를 먹게 됐다며 미국산 쇠고기 자랑까지 늘어놓는다. 축산기반 붕괴도 국민건강 위협도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다.

▲ 한겨레 5월23일자 12면.
미국산 쇠고기가 봇물 터진 듯이 들어올 기세다. 소값이 폭락사태를 빚더니 이제는 거래조차 끊겼다. 송아지를 사다가 비싼 사료 먹여가며 한 2년 키웠지만 송아지 산 돈조차 건지지 못할 처지다. 세계적인 곡물파동으로 지난 1년 동안 사료 값이 뜀박질을 멈추지 않는다. 본전은커녕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을 판이다. 벌써 축산농민 3명이 죽음으로 항변했지만 아무런 메아리가 없다.

목돈을 마련하나 싶어 키웠던 소가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식당마다 광우병 한파가 덮쳐 텅텅 비었으니 팔 길이 막혔다. 멀쩡한 소를 죽일 수도 없고 키우자니 없는 돈에 빚만 는다. 한 푼이라도 아끼자고 끼니를 걸러 주니 배고파 울부짖는 신음 소리가 너무 애처롭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닌 듯싶어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나오느니 한숨뿐인데 무슨 날벼락인지 조류 인플루엔자가 터져 난리다.

여기저기서 닭이나 오리가 떼죽음 당하고 아니면 무더기로 생매장해 버린다. 가진 재산을 몽땅 땅에 파묻는 터니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다. 그 전에는 군데 군데 발병해서 남의 일인가 싶었는데 이제는 온 나라가 감염됐다며 법석이다. 방역망을 얼마나 엉성하게 쳤는지 조류인플루엔자가 농촌은 물론이고 대도시까지 파고들었다. 동물원에 있는 새들도 도살처분한단다. 가금류란 가금류는 씨가 마를 판이다.

재래시장에서 닭, 오리가 사라졌다. 재래시장을 조류 인플루엔자의 온상지로 아는지 산닭을 팔지도 도살도 못하게 아예 유통을 막아버렸다. 집에서 토종닭을 키우고 달걀도 낳아 더러 푼돈을 만졌으나 그것마저 할 수 없게 됐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다 조류 인플루엔자마저 겹쳐 이 나라의 축산산업이 송두리째 뿌리가 뽑힐 판이다. 집권세력의 입에서 쇠고기에 이어 미국산 닭고기를 더 많이 수입할 테니 걱정 말라는 소리가 안 나올지 모르겠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원유를 비롯한 국제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는데 이어 곡물가격마저 가세한 탓이다. 여기에다 환율상승까지 맞물려 수입물가 상승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영농비도 따라 뛰기 마련이다. 기름에 비료, 농약 값이 뛰고 종자 값도 오르니 농축산물 값이 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정부도 언론도 농산물을 물가상승의 주범처럼 몰아간다. 이러니 제 값 받기가 어렵다.

늙은 농민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목이 터져라 쌀 개방 반대를 외쳐 그나마 부분개방에 그쳤다. 그 덕에 지금 이 나라는 세계적인 식량위기에서 비켜나고 있다. 미국이 압력에 따라 정치권력의 뜻대로 개방했더라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었을지 식량빈국의 민중봉기가 답변을 주고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명박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미국 축산업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광고를 연일 해대며 정작 제 나라 축산산업의 파탄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농촌의 통곡에 귀를 막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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