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IPTV 시행령 공청회에서는 콘텐츠 동등접근권, 망 동등접근권, 지배력 전이 방지방안 등 주요 쟁점에 대한 각 업계의 견해차가 그대로 드러났다.

케이블과 지상파 등 방송업계 패널과 KT·하나로 등 통신업계 패널들은 같은 조항을 놓고도 해석을 달리하며 시행령을 각자 유리한 방향으로 제정하기 위해 공방을 벌였다. 이런 가운데 소비자 입장, 특히 장애인 등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방통위 "대기업 진입규제 더 완화 검토"

이날 공청회에서 방송통신위원회는 종합편성·보도전문편성 IPTV 사업이 금지되는 대기업의 기준을 현재의 자산총액 10조보다 더 완화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서병조 융합정책관은 "대기업의 기준을 3조에서 10조로 완화해 입법예고 돼있는데 이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재계의 입장을 전달 받았다"며 "변화된 글로벌미디어 시장을 고려한다면 대기업이 종합편성 PP에 들어오는 길을 더 넓게 열어줘도 될만큼 우리 사회는 다른 컨트롤 수단이 있다"고 말했다.

서 정책관은 "기준을 10조로 정한 데도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좀 더 확대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케이블과 통신, '진짜'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누구

▲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는 지난 23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자법(IPTV법) 시행령 공청회를 열었다. 업계 관계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정은경
"올챙이들 노는 곳에 황소개구리가 들어온 꼴이다."

방송채널사용사업자 단체인 PP협의회 정성관 이사(매일경제TV)는 "지금 상황은 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 시장에 IPTV가 들어온 것이 아니라 융합 시장에 SO(유선방송사업자)가 진입하려는 구도"라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올챙이는 케이블 사업자를, 황소개구리는 KT와 SKT를 말한다.

후발 사업자인 IPTV 사업자들이 빠른 시간 내에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콘텐츠 동등접근권을 규정하는 등 배려를 해준다지만 통신업계는 이미 거대한 규모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SO협의회 이덕선 회장(큐릭스 대표이사)도 "KT 연간 매출액은 케이블의 700배, 순이익은 12000배에 달한다"면서 "규모가 게임이 안되는데 같은 링에 올려놓고 공정 경쟁하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KT, SKT 등 거대 통신업체의 지배력 전이 방지를 위해 시행령에서 회계분리를 규정한 데 대해 그는 "회계분리로는 지배력 전이를 막을 수 없으며 백번을 양보해 법인분리는 안되더라도 사업분리는 해야 한다"고 개정을 요구했다.

방송업계 "'채널단위 콘텐츠 동등제공'은 사유재산 침해"

가장 뜨거운 쟁점은 역시 콘텐츠 동등접근권 논란이었다. 콘텐츠 동등접근권은 IPTV 사업자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차별없이 제공할 것'을 강제하는 내용으로 채널 단위의 PAR(Program Access Rule)와 프로그램 단위의 UAR(Universal Access Rule)이 있다.

IPTV법과 시행령안은 '채널'을 의미한다고 규정해두고 있으나 케이블과 지상파 방송사 쪽에서는 "사유재산 침해"라며 프로그램 단위로 제공하도록 하거나 아예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송협회 대표로 나온 MBC 김종규 뉴미디어부장은 "PAR 조항은 원래는 시청률이 낮더라도 이 사회에 꼭 필요한 공익적 프로그램을 강제 송출하도록 하는 제도인데 여기서는 거꾸로 시청률에 따라 선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부장은 "IPTV가 시장에 원활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무리한 조항을 넣었다고 본다"며 "하지만 이를 강제로 규정하는 것은 콘텐츠를 가진 쪽의 협상력을 저하시키고 IPTV 사업자가 갑의 입장에서 무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비판했다.

통신업계 "프로그램 단위 공급 땐 안정적 서비스 어렵다"

하지만 통신업계의 시각은 이와는 정반대다.

하나로텔레콤 이상헌 상무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 사유재산제도를 침해하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며 "프로그램 단위로 제공할 경우 주요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시청자에게 제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반박했다.

KT 미디어본부 심주교 상무 또한 "지금 반쪽자리 VOD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필수적 채널을 원하는 이용자들의 클레임이 많은 상황"이라며 "모든 채널을 다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무료로 사용하겠다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해를 구했다.

'망 동등접근권' 논란… KT "'필수'설비에 그쳐야" 강조

전기통신설비의 동등제공을 규정한 것을 두고서는 방송업계와 통신업계의 입장이 뒤바뀌었다. IPTV법 제14조는 타 사업자로부터 IPTV 서비스 제공에 필수적인 전기통신설비에 대한 이용 요청이 있는 경우 합리적이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절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KT 심주교 상무는 "필수라는 말에 주목해 매우 제한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며 "'독점적이고 대체제가 없는 경우'라고 명시를 해줘야만 필수설비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는 만큼 애매모호한 문구를 수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관련 시행령안은 '필수설비'의 구체적 대상은 고시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방송업계 쪽에서는 'KTTV'법이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KT에 유리해 보이는 이 법에 대해 심 상무는 오히려 "국제경쟁력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규제가 더 완화돼야 한다"고 주장해 심각한 시각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언론연대 양문석 총장 "사업자들 이전투구에 이용자 권익 없어"

"이 법은 방송 통신 융합 환경에서 인터넷 멀티미디어 등을 이용한 방송사업의 운영을 적정하게 함으로써 이용자의 권익보호, 관련기술과 산업의 발전, 방송의 공익성 보호 및 국민문화의 향상을 기하고 나아가 국가경제의 발전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IPTV법 제1조 목적)

언론개혁시민연대 양문석 사무총장은 IPTV법의 목적을 거론하며 "법의 내용과 달리 사업자들의 이전투구만 있고 방통위는 그들이 만든 쟁점에 계속 끌려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 총장은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배려는 기본적인 표현조차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소외계층에 대한 이용요금 차별화,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 시민의 자벌적 참여 보장 등을 시행령에 명시할 것을 촉구했다.

여성민우회 강혜란 소장 "개인정보 보호 조항 전무, 방통위에 유감"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강혜란 소장 또한 △보편적 서비스의 공고화 △공익적 채널 통한 문화다양성 확대 △어린이와 청소년 보호 △공정경쟁 및 개인정보 보호 등 네 가지 대전제를 강조했다.

강 소장은 "최근 하나로텔레콤의 정보유출 사건, 옥션 해킹 사태가 있었음에도 시행령에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조항 하나 없다는 것은 방통위에 유감"이라며 "최소 수집의 원칙, 주민번호 활용 금지, 시청기록 수집 및 저장금지 등 개인정보 보호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청회는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유의선 교수의 사회로 4시간 가까이 진행됐으며 이밖에 계명대 신방과 이상식 교수, 서강대 법대 홍대식 교수, 단국대 법대 지성우 교수, 법무법인 태평양 이상직 변호사, 한양대 법대 이호영 교수, KBI 권호영 책임연구원, 오픈IPTV 김철균 대표이사 등이 참여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