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주말 드라마 <내 딸 서영이> 여주인공 이서영(이보영 분)에게 가족 특히 아버지는 없으니만 못한 존재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한 번도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던 타고난 수재 서영이에게 아버지는 유일한 아킬레스건이자 인생의 걸림돌이다.

어릴 때부터 무능한 아빠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를 지켜보면서 성공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던 서영은 의대 진학을 희망하였지만, 엄청난 등록금 부담으로 쌍둥이 동생인 상우(박해진 분)에게 꿈을 양보한다.

그러나 심장병으로 쓰러진 서영의 어머니가 수술 도중 죽어가는 동안, 서영의 아버지 삼재(천호진 분)은 서영의 엄마가 힘겹게 마련한 서영의 마지막 학기 등록금까지 도박판에 탕진하고 만다. 고생만 하다간 엄마의 죽음과 자신의 인생에 마이너스만 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아버지 삼재에 대한 서영의 증오는 극에 달하고 결국 서영은 스스로 부녀간의 인연을 끊고자 한다.

아버지가 있는 집에서 뛰쳐나온 서영은 재벌집에서 상주하는 가정교사 일자리를 구하고, 그곳에서 남편이 될 강우재(이상윤 분)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타인을 대하는 데 있어서 지독하게 자기방어적이었던 서영은 퉁명스럽게 우재를 대했고, 묘하게도 우재는 이런 서영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그러다가 우재의 오토바이 도난건으로 급격히 가까워진 두 사람은, 우재의 적극적인 대시로 결혼까지 이르게 된다.

잘나가는 의류 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우재네 집에서 명석한 두뇌와 미모 외엔 가진 게 없는 서영을 며느리감으로 탐탁하게 받아들일 리는 없다. 하지만 우재의 아버지 강기범(최정우 분)은 의외로 순순히 서영을 자신의 며느리로 받아들인다. 그가 서영을 인정한 것은, 우재와 서영의 결혼으로 인해 자유로운 영혼 우재를 회사를 앉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타고난 서영의 재주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서영은 기범의 사업에 있어서 큰 도움을 안겨줄 복덩어리다.

오랜만에 뜻을 같이하는 부자의 놀라운 추진력으로 단숨에 신데렐라로 등극하게 된 서영은 우재의 집안에 자신을 아버지가 없는 고아라고 말한다. 분명 서영에게는 무능하지만, 아버지 삼재는 살아있다. 그러나 서영은 스스로를 부모 없는 고아로 규정짓는다. 언제나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태클'이었던 아버지의 존재를 밝히느니, 차라리 고아로 속여야 우재와의 결혼이 한결 쉬워질 것 같았다. 그리고 서영은 아버지 삼재에게 "기약 없는 유학을 떠날 것"이라면서 자신의 결혼 소식을 극비에 부친다.

당연히 상우는 부모의 존재를 속이면서까지 우재와 결혼하는 누나를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아버지가 밉고 지긋지긋해도 삼재는 부정할 수 없는 서영과 상우의 아버지이다. 자신을 속이고 결혼하는 딸을 상상조차하지 못한 채, 미국에서 공부할 딸을 위해 타지로 떠나기 이전 마지막 식사를 정성스럽게 차리고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비상금으로 쓰라고 딸 손에 꼭 쥐어주는 그런 아버지 말이다.

상우는 서영에게 아버지를 버릴 것이면 자신도 버리라고 절연은 선언한다. 하지만 서영은 동생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재의 가족들에게 상우조차 "멀리 유학을 떠났다"면서 거짓말을 이어나간다. 호적등본만 떼어보면 금방 드러날 거짓말이지만 우재의 가족들은 순진하게도 서영의 말을 믿었고, 고아인 며느리를 위해서 결혼식 당일 자리를 채울 하객 아르바이트까지 고용한다.

얄궂게도 최근 경조사 아르바이트 일을 시작한 이삼재는 평소보다 두 배 더 주겠다는 하객 아르바이트를 위해 결혼식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결혼식장이 딸 서영이의 결혼식이다. 하나밖에 없는 딸의 결혼식에 신부 아버지 자격이 아닌, 알바생으로 참관해야하는 삼재. 하지만 삼재는 자신에게 결혼 사실을 숨긴 딸을 원망하고 화를 내기보다 행여나 딸이 자신을 볼까봐 황급히 몸을 숨긴다.

아버지를 향한 극도의 증오심으로 부녀의 연을 끊은 서영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서영의 선택은 참으로 안타깝게 다가온다. 오죽 아버지가 미우면 매정하게 아버지를 외면할까 싶기도 하지만, 상우의 말대로 미우나 고우나 삼재는 서영을 이 세상에 내놓은 아버지다.

그러나 언제나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방해받고 있다고 판단한 서영은 아버지라는 이름조차 부끄럽고 외면하고 싶다. 그래서 서영은 자신의 결혼식을 숨기면서까지 삼재의 가슴에 깊은 대못을 박는다. 아니 그동안 아버지 때문에 상처받았던 서영은 자신의 행동 때문에 상처받을 아버지의 아픔에는 안중에도 없다. 어쩌면 그간 자신의 인생에 태클만 걸었던 아버지에 대한 복수라면서 더 기를 쓰고 아버지라는 존재를 부정하려고 한다.

그런데 서영의 마음을 알고 있는 삼재는 자신을 철저히 무시하는 딸에게 아버지로서 아무런 권리도 서운함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동안 딸에게 해준 것 없이 상처만 준 아버지였기 때문에 자신을 원망하고 외면하는 딸 서영의 철없는 투정을 그대로 이해하고 감싸준다. 하다못해 삼재는 서영이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딸의 등록금마저 도박판에 탕진하고, 자기 때문에 고생만 하다간 아내의 임종까지 지키지 못했던 죄책감에 사로잡힌 한 남자는 말이 없다. 자신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두 여자에게 상처만 남긴 나쁜 남자였으니까.

그러나 한편으로 삼재는 간절히 소망한다. 언젠가는 딸 서영이가 자신의 품에 돌아올 그날을. 설령 서영이가 자신이 눈 감는 그날까지 자신을 용서하지 않아도 좋다. 그럼에도 딸 서영이를 그리워하면서 사랑할 것이니까. 그래서 아버지가 아닌 '알바생'으로 사랑하는 딸의 결혼식에 참가한 아버지는 가슴 깊숙이에서 끌어 오르는 눈물을 참고, 그동안 못난 애비 만나 고생만 한 서영이가 좋은 남자를 만난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외면하는 딸임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딸이 잘 살길 바랄 뿐인 아버지. 저 멀리 떠나는 딸의 모습을 좀 더 오랫동안 보기 위해 발꿈치까지 드는 삼재의 딸 사랑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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