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반역자'가 있다. 인터넷 상에 짧은 호흡의 기사가 넘쳐나고, 140자 트위터가 대세인 뉴미디어 시대 속에서 반역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한겨레가 10월 말 창간 예정인 월간지 <나·들>이 바로 그것이다.

▲ 안영춘 <나·들> 초대 편집장 ⓒ나·들
한겨레 기자, OBS 기자, 미디어스 편집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 등을 역임한 안영춘 월간 <나·들> 초대 편집장은 10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읽는다'라는 행위는 결국 '읽기'라는 본래의 특성으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는 말로 현재의 언론환경을 꼬집었다. 그의 말대로 SNS와 스마트폰이 대세로 자리잡은 뉴미디어 시대에서 무언가를 '읽는다'는 행위는 무언가를 '보는 것'으로 대체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딘가에 오랫동안 앉아서 활자를 깊이 읽기보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각적 이미지를 보는 것에 더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월간지 <나·들>은 어떤 의미일까? 안영춘 편집장은 "<나·들>을 통해 기존 매체에서 볼 수 없는 내용의 탁월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글이 가진 고유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0월 말 창간 예정인 월간 <나·들>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다룬다. <나·들>은 모든 이슈를 '사건' 중심으로 바라보는 현재 매체의 문법을 거부하며, '사람'을 중심에 놓고자 한다.

안영춘 편집장은 "'사건에서 사람으로'가 <나·들>의 슬로건"이라며 '사람 매거진'의 특성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나·들>을 준비하는 동안 "전생에 나라 몇 개는 팔아먹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는 말로 고단함을 토로했다.

그러나, <나·들>의 구체적 콘텐츠를 묻자 안영춘 편집장은 갑자기 피로한 기색을 떨쳐내고 이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기존에는 없었던, 하지만 한국사회에 반드시 필요하고 뚜렷한 색채의 잡지라고 자부한다"며 자세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무엇이 베테랑 편집장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만들었을까?

기능보다 가치를, 사건보다 사람을 전면에 내세우며, 저널리즘과 인문학을 참신하고 기발한 시도로 비벼보고자 하는 잡지 <나·들>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미디어스>와 안영춘 월간 <나·들> 초대 편집장이 나눈 인터뷰를 강력 추천한다. 이하는 인터뷰 전문.

▲ 사람매거진 나·들 ⓒ나·들
미디어스(아래, 미) : <나·들>은 무슨 뜻인가?

안영춘 편집장(아래, 안) : 먼저 <나·들>은 1인칭 '나'의 복수형을 표상한 것이다. 1인칭 나에 가운데 점을 찍어서 나와 나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표현해보고 싶었다. 나와 나, 여러 사람들, 사회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의미를 담아보려고 했다.

미 : <나·들>은 전반적으로 어떤 주제를 다루는가?

안 : 매체 성격을 한 마디로 말씀드리기 상당히 어렵다. 기존 매체에 익숙한 독자에게 어떤 잡지인지 설명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시사'와 '인문'을 다룬다. 저널리즘이 인문학으로, 인문학이 저널리즘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 현재의 매체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분법적으로 시사와 인문을 구분짓지는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람 중심의 잡지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인터뷰들이 다양하게 나올 것이다. 어떤 사회적 의제라도 반드시 '사람의 문제'로 놓고 살펴보는 시도를 할 것이다. '사건에서 사람으로'가 <나·들>의 초기 슬로건이다.

미 : 그렇다면 기존의 매체의 기사나 보도는 '사람'이 아닌 '사건' 중심이라는 말인가?

안 :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한겨레 토요판에서 조국 교수가 친부에게 성폭행을 상습적으로 당한 여성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여성은 "성폭력 문제를 다룰 때 언론은 끔찍하고 선정적 느낌이 드는 사건만 보여준다. 나는 사건보다 그 사건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즉, 지금 한국의 저널리즘은 사건에 매몰되어 있다고 본다. 우리는 이와 다르게 사람이야기를 내러티브 형식으로 많이 구현할 것이고 시사와 인문을 녹이고, 상당 부분은 기획에 의한 연재물들을 다룰 것이다. 연재가 다 끝나면 단행본으로 발행할 것이다. 결국 <나·들>은 저널리즘의 구현 방식을 '사건에서 사람으로' 바꾸는 시도이다.

미 : 조만간 <나·들> 창간호가 나온다. 준비과정이 어렵지 않았나?

안 : 통상적으로 매체를 창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숱한 일들은 다 겪었다. 창간 준비기간이 3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6개월 이상이었다. 전생에 나라 몇 개는 팔아먹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웃음) 월간지 콘셉트를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같이 일할 사람들, 사내 주요 의사결정권자에게 그것을 공유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제 매체 창간 같은 건 안 할 것 같다.(웃음) 빠르게 변화하는 매체환경에서 저널리즘이 가치적 측면, 산업적 측면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6개월 동안 계속됐다. 결국 '사람'이라는 게 찾아지고, 사람 중에서도 주류는 아니지만 사회를 움직이는 데 매우 큰 힘이자 정서적 구조와 상태를 이루는 이들. 그들을 찾고 개념화시키는 과정이 주를 이뤘다.

미 : 타깃으로 하는 독자층이 독특하다. '386 세대보다 민주주의 이상 작동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 기능보다는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 윤리적 제품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사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안 : 처음에 타깃 독자층을 설정할 때, 인구통계학적 접근을 의식적으로 피했다. 한국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지만 개념화돼있지 않은 개인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들은 조직이나 진영논리에 의해서 포섭되지 않았지만 한국 사회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굳이 세대론으로 접근을 한다면 아무래도 20~30대가 될 것이다. <나·들>은 기존의 '386'이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의 전형성과 조금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386들이 지금 세대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다. 젊은 세대라고 하더라도 지배이데올로기에 젖어있거나 자기성찰이 없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가치를 이미 실행하고 실천한 사람보다 잠재된 실천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미 : 편집장으로서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안영춘 편집장의 글은 너무 어렵다는 평가도 있는데, 대중들이 <나·들>을 어렵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나?

안 : 내 글은 거대 담론을 다룰 때만 어렵다.(웃음) 일반적으로 스토리텔링을 할 때는 어려울 수 없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는다. 상근기자들은 되도록 담론 글을 피할 것이다. 나 역시 쉬운 글로 되돌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유가 인쇄매체가 너무 쉬우면 독자들이 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데 왜 돈을 주고 읽겠나? 그렇다고 어렵기만 해서는 안 된다. 내용의 탁월성도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글을 읽어나가는 데 있어서 '고유한 맛' 이런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 : <나·들>을 꾸려가는 기자는 누구인가?

안 : 상근기자 5명이 이끌고 있다. 이들은 기존 기자 생활을 해왔던 관성으로는 <나·들>을 감당해낼 수 없음을 토로한다. 곧 익숙해질 듯하다. 우리는 기자이자 큐레이터라고 생각하고 있다. 기자 모두 기획자이고 편집자이다. 내로라하는 유명필자를 섭외하라는 요청도 있었지만 의식적으로 피했다. 이미 이름값이 있는 필진에게서는 신선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 : 취재의 방식도 다를 것 같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이나 하층민 르포기사 같은 경우, 같이 생활하는 방식으로 일간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현장성을 살릴 계획은 없나?

안 : 그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기자는 객관적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재현 저널리즘'이다. 재현 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이 예능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 있는 것보다 '얼마나 귀를 열고 대상과 밀착하느냐' '나의 주관성을 드러내면서 얼마만큼 차이를 보이는가' 등 과정적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필요하면 현장에 가야하는 건 맞지만 거기서 정말 잘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이진숙이 과거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보여줬다고 하는데, 어느 전쟁이나 참상은 있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침략에 대해서 누가 얼마나 피해를 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진숙은 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미 : <나·들>의 판매가격이 15000원이다. 다른 월간지에 비해 비싼 가격인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안 : 사실 이 결정은 리스크가 매우 컸고, 경영진에서는 가격을 인하할 것을 요구했었지만 15000원 정책을 고수하기로 했다. 대한민국의 저널리즘을 타락시킨 것 중의 하나는 '옐로 저널리즘'을 고착화시키는 시장구조이다. 소비자는 보도나 기사에 언제든지 무료로 접근할 수 있으며, 신문 시장이 왜곡된 것 역시 바로 광고에 의존해 신문가격을 올리지 않은 것과 관련이 깊다. 그것을 따를 수 없지 않나? 안착하는데 어렵더라도 이 정도 가격은 유지해야 조금이나마 한국사회에서 저널리즘이 정상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기구독자에게는 매우 '과감'하게 할인할 예정이다.

미 : 시장에 언제쯤 안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안 : 처음 만들 때부터 '대박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을 했다. 회사에 보고하고 결재하는 중에 예상 판매부수를 정말 보수적으로 잡았다. 회사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될 만큼 미디어로서 지속가능한 판매수준은 내년 상반기면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광고를 바라보지 않아도 발행할 수 있는 시기는 2년 안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미 : 독자와의 소통을 기존의 매체들과 다르게 가져갈 생각은 없는가?

안 : 현재 <한겨레21>의 독자편집위원회 수준이 아니라 독자를 기획회의 자체에 참가하게 만들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못하겠지만 잊지 않고 이행하려고 한다.

미 : 독자들에게 편집장으로서 하고 싶은 말은?

안 : <나·들>을 기획하고 새롭게 독자들에게 다가가려고 하지만, 나 역시 기존 언론을 20년 해온 사람이자 40대 중반의 기성세대라고 할 수 있다. 한계가 분명 있다. 하지만 기존 저널리즘에서 벗어나 독자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다가가는 최초의 시도라는 점을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독자들이 여유 있게 지켜봐주시면 고마울 것 같다.

안영춘 편집장이 자신있는 목소리로 소개한 <나·들>의 킬러 콘텐츠를 <미디어스>가 미리 '살짝' 공개한다.


1) 3차원 인터뷰

안영춘 편집장이 적극 추천하는 꼭지. 주관이 뚜렷한 두 명의 젊은 작가가 인터뷰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안 편집장은 “두 작가가 만들어내는 '차이'가 인터뷰를 풍부하고 진실되게 보여줄 것”이라고 말한다. 3차원 인터뷰는 정보성에 목적을 두기보다 한 사람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부각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다. 안 편집장은 인터뷰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한 꼭지를 인터뷰이에게 제공할 예정이란다. 창간호의 표지가 될 인터뷰이는 '도가니' '의자놀이' 공지영 작가다.

2) 나들의 초상

나들의 초상은 이슈형 꼭지다. 기존의 시사지들이 다뤘던 접근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시사이슈를 다뤄본다. 창간호에서는 '대통령과 나'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대통령제와 대통령 선거, 대통령의 사람들 등을 살펴본다. 신성화되어있는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 그들을 '메시아'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진짜 '민낯'을 보여줄 것이다. 이번 선거에 화제를 줄 수 있는 인물이 소개될 것이라고 안 편집장은 덧붙였다.

3) 아파트 키드의 생애

자신이 살아왔던 생애를 자서전처럼 풀어간다. 단, '주거의 문제'로만. 아파트 키드는 2차 베이비 붐 세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급격한 아파트 가격의 상승으로 삶의 목표가 '노동가치'가 아닌, '투자가치'로 바뀌어버린 1차 베이비붐 세대. 그러나 그들은 현재는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위기에 몰려있다. 이들 자녀들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과 자본주의 등 대한민국 경제 전반을 거시적으로 훑을 예정이다.

4) 덕후와 잉여

'덕후 연구자' 박권일과 '잉여 연구자' 최태섭이 그들의 덕력과 잉력을 <나·들>에서 뽐낸다. 창간호의 '덕후'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정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밀리터리 덕후'로 익히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덕후와 잉여들은 주목하시길!

5) 연재만화 '원나잇'

에로스를 주제로 강도하 작가가 <나·들>에 연재한다. 강도하는 웹툰 <위대한 캣츠비>와 <발광하는 현대사> 등을 통해 알려진 유명 만화가이다. 안 편집장은 "대한민국 사회는 섹스는 넘쳐나지만 에로스가 전무하다"며 "에로스의 부재는 한국사회의 폭력성과 직결되어 있다. '원나잇'은 이를 꼬집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 편집장은 이 문제의식을 강 작가와 수 차례 공유했다고 전했다. 앞으로 어린 독자들도 <나·들>을 볼 텐데? 안 편집장은 "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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