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27일 빌보드 홈페이지
빌보드 1위에 대한 기대가 커지자, 왜 1위만 바라냐며 2등도 대단한 성과라는 말들이 나온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얘기다. ‘강제출국’이 필요했다는 주장엔, 왜 미국에서의 활동만 중시하냐는 말이 나온다. 정말 그럴까?

만약 미국에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2등까지 했으면 당연히 축하만 할 일이다. 그 상황에서 왜 1등을 하지 않았으냐며 뭐라고 한다면 말이 안 된다. 이번 사태의 문제는 그런 상황과 다르다.

열심히 하다 2등까지 한 것이 아니라, 손 안에 다 들어온 빌보드 넘버원을 걷어차버린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만약 미국에서 계속 활동했으면 이미 2주째 연속 1위를 하고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싸이 신드롬은 더 커졌을 것이며, 그러면 다음 주 그 다음 주 1위도 쉬웠을 것이고, 그에 따라 그래미상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에 임하다말고 갑자기 내기장기 약속이 있다며 고향으로 돌아가버린 상황이다. 미국사람들도 황당했을 것이다. 빌보드 넘버원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대학축제 행사를 뛰어야 한다며 고국으로 휙 가버린 사태가 말이다.

빌보드 넘버원의 상징적 의미는 두 말하면 입 아프다. 싸이의 가수 인생에 다시없을 기회이고, 우리 대중문화 차원에서 봐도 길이길이 남을 대역사다. 세계사적으로 봐도 식민지 출신 후발 국가의 빌보드 1위라는 의미가 있다.

그런 걸 걷어찬 상황인데, 걷어찬 주체가 누구냐. 이게 중요하다. 만약 싸이 자신이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평양감사도 자기 싫으면 그만 아닌가? 어차피 그의 삶일 뿐이다.

문제는 걷어찬 주체가 우리라는 데에 있다. 싸이는 한국에 지금 꼭 가야 하느냐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느냐고 의사타진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싸이와 계약했던 측이 당장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틀어졌다.

싸이를 배려했어야 했다. 싸이에게 지금은 일단 미국에서 갈 데까지 가보고, 대신에 다음에 무료 공연을 몇 회 해달라고 요구했어도 흔쾌히 들어줬을 것이다. 그런 정도의 이해심을 발휘 못하고, 당장 계약을 이행하라고 자신들의 사익만을 앞세웠다.

일이 그렇게 됐으면 우리 내부에서 여론이 일어나 싸이를 풀어주도록 조정을 해줬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 매체들은 싸이의 한국행을 미담으로 포장하며, 어처구니없는 투어행각을 강 건너 볼 보듯 했다.

업계의 협회나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도 나서서 계약 주체들과 싸이 사이에 중재라도 했어야 했다. 그런 일도 없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어떻게 한국 역사상 최초로 우리 가요가 빌보드 1위를 앞둔 상황에서, 당사자가 국내 행사 무대나 다니도록 방관했단 말인가? 지난 이주 동안의 싸이 행사 무대는 우리 대중문화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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