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 최고의 코미디 영화 중 하나인 <써니>가 개봉한 지도 벌써 1년이 훌쩍 넘었군요. 개봉 당시에 극장에서 괴성을 지르고 크게 박수까지 치면서 미친 듯이 재미있게 봤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그리 경박한 행동을 하면서 보게끔 만든 영화가 <써니>였으니 극찬이 아깝지 않았죠. 개봉 전에는 그리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가 강형철 감독의 작품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급증했었는데, 제게는 과연 <과속 스캔들>을 능가하고도 남을 영화가 탄생한 것이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써니>를 본 후에 <과속스캔들>보다 흥행에서 앞설 것이라고 했던 예측도 맞아떨어졌습니다.

강형철 감독은 <써니>를 통해 그야말로 신들린 연출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로 나뉜 탓에 등장인물이 많았고, 그로 인해 산만해질 수도 있었던 위험마저 사뿐하게 극복했죠. 그저 극복한 정도가 아니라 역으로 활용하여 과거는 코미디로, 현재는 드라마로 각기 분리한 채로 운용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조합을 이루게 하는 힘은 지금의 <써니>를 있게 한 핵심이었습니다. 쏟아지는 대사를 구수한 욕설과 섞어서 토해내는 장면 또한 각본과 연출의 호흡이 절정을 이루면서 <써니> 최고의 흥행요인으로 자리했습니다. 이 부분은 연출 이전에 각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써니>를 보면 어쩜 그리도 찰지고 재치로 가득한 대사를 쓰는지 놀라울 따름이었죠. 그런 걸 보면 강형철 감독은 연출력 못지않게 천부적인 이야기꾼이자 말솜씨를 가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토록 강형철 감독을 예찬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과속스캔들>에 이어 <써니>에서도 코미디 영화가 가져야 할 '가벼움의 미학'을 고수했기 때문입니다. 두 영화의 리뷰에서 공통적으로 꼽았던 최고의 장점도 이것이었습니다. 아울러 제가 한국의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늘 안타까워하고 지겹도록 패착으로 지적하는 길을 답습하지 않은 것도 <과속스캔들>과 <써니>였습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이 하나만으로도 두 영화는 큰 만족을 주었습니다.

한국 코미디 영화는 좀처럼 '웃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마치 스스로 코미디 영화라는 것에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요? 그래서 툭하면 억지 감동을 주입하려고 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더 심각하게는 웃기는 것조차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영화가 감동까지 얹으려고 하다가 회복불능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고 초지일관 코미디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했던 영화가 <과속 스캔들>이었습니다.

강형철 감독은 두 번째 작품인 <써니>에서도 역시 코미디 영화의 본분을 잊지 않았습니다. 사실 <써니>는 심각한 영화도 아니고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만인이 재미있게 즐기고 추억을 향유할 수 있는 선물을 안겨주는 영화입니다. 그게 바로 상업영화고 코미디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이상에 도달하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조차도 기특합니다. <과속스캔들>의 경우에는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다뤄서 예민할 수 있었던 바를 결말까지 나름 슬기롭게 또는 절묘하게 피해갔었죠. 물론 그것이 단점으로 지적될 수도 있고 저 또한 일부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소재로 전락시킨 수준은 아니라는 것과 코미디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에서 보자면 양해는 구하고도 남습니다.

간혹 소위 말하는 예술영화에 경도된 분들은 덮어놓고 상업영화를 비판하기 일쑤입니다. 최근에는 <피에타>가 그런 현상이 다시 일게끔 주도했죠. 그러나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는 자기 고유의 몫을 따로 가진 채로 양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 상업영화에 빠지면 예술영화를 외면하는 게 일반적이긴 합니다. 이 때문에 예술영화는 설 자리를 잃고 상업영화만 득세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죠. 그렇다고 해서 상업영화 자체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예술영화가 상업영화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건 부질없고, 타인의 취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시스템을 개선하여 앞서 말한 것처럼 두 영화가 양립할 수 있는 환경과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죠.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관객들의 지지와 호응은 필수입니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군요. 이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정식으로 다루기로 하고, 아무튼 이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장르도 저마다의 본분과 의무가 있습니다. 영화를 자본주의에 입각한 목적성에 따라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로 분류하고, 다시 상업영화를 각기 구성하고 있는 요소와 이 요소를 통해 추구하는 연출의 방향에 따라 장르를 부여한다면, 코미디 영화의 경우에는 당연히 관객이 포보절도하면서 웃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이자 목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써니>는 코미디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말이죠.

예술영화고 상업영화고 간에 제가 불평하는 첫 번째 이유는 어떤 의미에서든 본디 그 영화가 가지고 있어야 할 재미를 찾을 수 없을 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제 주관에 따른 예술성일 수도 있고 오락성일 수도 있습니다. <써니>를 두고 '가벼움의 미학'이라고 표현한 이유를 이것과 연관 지어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마 <써니>가 드라마 혹은 드라마에 코미디를 가미한 영화였다면 지금처럼 극찬하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써니>는 분명 본격 코미디 영화를 표방했습니다. 거기에 맞춰 철저하게 충실했으니 큰 불만을 가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상업영화와 코미디 영화로서 보여줘야 할 거의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있고, 그걸 보면서 충분히 즐겼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는 거죠.


저도 <써니>에 대해 단점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강형철 감독은 이제 두 번째 영화를 마친 거잖아요? 작품성에 대한 야심이나 지금보다 더 뛰어난 완성도를 기하는 건 차후에 조금씩 진일보할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까지 코미디 영화만 연출하다가 곧 촬영에 들어갈 <타짜 2>는 어떻게 엮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세 번째 영화인 <타짜 2>를 통해 강형철 감독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덧) 이번부터 '채널 CGV'의 필진으로 활동합니다. 매주 토요일에 방영하는 '새러데이 10 PM'의 영화를 소개하는데, 첫 순서가 다행히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써니>입니다. 채널 CGV에서 13일 밤 10시에 방영하는 <써니>는 감독판이니 저처럼 극장판으로 보신 분들에게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써니>의 단점이자 아쉬운 점으로 지적했던 부분이 극장판에서 조금이나마 만회를 하는 것 같더군요. 바로 운동권 학생이었던 나미의 오빠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직접 보면 왜 삭제했는지 수긍하게 됩니다. 한편으론 잔인한 세월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캐릭터를 보며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현실의 '박종운'과 같은 인물을 연상시켜서 더 안타깝고 분하네요. 그것과는 별개로 '복고'와 '어머니의 이면'으로 이뤄진 <써니>의 코드에는 변함이 없으니 여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겁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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