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품격>, <해를 품은 달>의 블링블링한 로맨스가 빠져나간 자리를 갈등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최근 시작된 <내 딸 서영이>에서는 아버지 이삼재(헌호진 분)를 증오하는 딸 이서영(이보영 분)의 부녀 사이 갈등을 그리고 있다. <착한남자> 속 서은기(문채원 분)와 한재희(박시연 분) 두 사람은 새엄마와 딸로 갈등을 겪고 있으며, 한재희와 강마루(송중기 분) 역시 갈등을 겪긴 마찬가지다. <각시탈>과 <넝굴당> 후속작은 지금 모두 캐릭터 사이의 갈등을 먹고 사는 드라마다.

어디 그 뿐인가. <신의>는 공민왕(류덕환 분)과 기철(유오성 분), 혹은 최영(이민호 분)과 기철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다섯 손가락>은 채영랑(채시라 분)과 유지호(주지훈 분), 그리고 유지호와 유인하(지창욱 분)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앞으로의 갈등을 예고하는 드라마도 있다. <메이퀸>은 장도현(이덕화 분) 회장과 천해주(한지혜 분), 혹은 장도현과 강산(김재원 분)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적이 있거나 밉상 캐릭터가 있어도 캐릭터 사이의 갈등이 부각하지 않는 드라마도 있긴 하지만, 현재 안방드라마를 점령하는 드라마는 절반 이상이 갈등을 먹고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갈등을 먹고 사는 요즘 드라마에서 ‘복수’ 역시 사랑 받는 테마임에 분명하다. 대표적인 복수의 서사를 그리는 드라마는 <착한남자>다. 우발적인 살인을 한 한재희를 대신하여 육 년의 옥살이를 하고 나온 강마루에게 되돌아온 건, 한재희의 변치 않는 사랑이 아니라 배금주의와 휴머니즘을 맞바꾸고만 변심이다. 강마루의 육 년 동안의 옥살이는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현대판 ‘주홍글씨’다.

강마루가 의대에서 제적당한 후 출중한 외모로 제비 노릇을 하며 여자를 후리는 건 다 한재희로부터 말미암은 ‘주홍글씨’ 때문이다. 한재희를 향한 강마루의 복수가 <착한남자> 이야기를 이끄는 힘이 될 건 자명한 노릇이다.

<메이퀸>은 아버지 세대의 죄악을 후대가 갚아야 할 이야기를 담는다. <메이퀸> 첫 회에서 천해주의 아버지는 장도현 회장에게 살해당하는 것도 모자라 아내마저 장도현에게 빼앗기고 만다.

윤정우(이훈 분)는 형님, 그러니까 해주의 친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어린 천해주에게 보여준다. 그 편지에는 딸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이 구구절절이 하나 가득 적혀 있었다. 천해주는 그 편지가, 자신의 친아버지가 남긴 편지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지만 편지의 내용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린다. 장차 아버지의 원수가 장도현 회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날에 천해주가 펼칠 복수극이 예고된다.

장도현에게 이를 가는 사람은 천해주 혼자가 아니다. 장도현은 교활한 술수로 강대평(고인범 분) 회장이 일궈놓은 사업을 가로챈다.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그의 손자 강산은 해외 유학을 통해 업계 최고의 실력자가 되어 장도현 앞에 나타난다. 할아버지의 복수를 어떤 방식으로 손자가 펼칠 것인가 하는, 장도현을 향한 강산의 복수 역시 예고된다.

<다섯 손가락>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복수극이다. 자신을 향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옭죄는 채영랑과 유인하 모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더 나아가 아버지를 화재로 죽도록 방치한 새엄마 채영랑의 정체가 밝혀질 날 아버지를 대신하여 채영랑에게 복수극을 펼칠 유지호의 복수혈전이 예고된다.

사실 복수라는 소재는 한국 드라마보다는 일찍이 영화에서 먼저 애용되고 있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이 아니라 하더라도 <악마를 보았다>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같은 영화들 가운데서 애용되던 소재였다. 헌데 이 소재는 20세기보다는 21세기 들어와서 영화 속 소재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다섯 손가락>과 <메이퀸>, <착한남자> 등 최근 드라마에서 복수라는 소재가 공통적으로 애호되는 건 우리 사회가 안정된 사회가 아니라 불안한 사회임을 방증하는 것일지 모른다. 사회학자 울리히 백은 ‘위험사회’라는 개념을 언급한다. 그가 언급한 사회 속 위험 가운데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정적인 파생물인 소득의 양극화 현상, 인간이 사회 메커니즘 속에서 부품으로 취급당하는, 언제든지 교체가능한 부품으로 전락하는 인간 소외 현상을 포함한다.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되고 인간 소외 현상이 그 어느 때보다 심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출하고자 하는 심리는 증폭되기 마련이다. 요즘 일련의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복수 애호 현상은, ‘위험사회’인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분노를 드라마 속 복수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받고자 하는 ‘변형된 힐링’이다. 한국 사회가 위험사회에 직면하지 않았더라면 복수가 이 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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