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가이드 북에서 별점 달린 식당으로 소개된다는 건 요리사에게 있어 필생의 숙원일 수도 있다. 한데 별 세 개가 달린 최고 식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스시 집이 있다. 고객이 앉을 의자라고는 단 열 개 밖에 없고 메뉴도 단품이다. 스시. 화장실도 밖에 있을 정도로 불편하다.

하지만 이 모슨 걸 상쇄하고도 남을 최종병기가 있으니 그건 손님을 향한 스시의 ‘꿈’과 ‘열정’이다. 남자보다 체격이 작은 여성 고객을 배려해서 여성을 위해 초밥을 약간 작게 만들기도 하고, 최상의 재료가 아니면 스시의 재료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다큐멘터리에서 소개되는 스시 레스토랑의 주인인 지로의 일상은, 성실함이 아니고서는 이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요리를 향한 어마어마한 열정을 보여준다. 지로의 열정을 시간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하다. 반세기도 아닌 무려 60여 년이라는 세월, 아니 그 이상의 세월을 스시 하나를 위해 몸 바쳤으니 말이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16시간 이상을 스시 만들기 하나에만 골몰하다보니 지로의 아들이 어릴 적에 한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릴 정도다. “엄마, 이상한 남자가 우리 집에서 자요” 여기에서 이상한 남자는 지로다. 아버지 지로가 스시 만들기에 열중하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잠잘 때 뿐이다 보니 아들이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생긴 해프닝이다.

<스시 장인: 지로의 꿈>에서 인생을 열정적으로 사는 이는 지로 하나만이 아니다. 지로의 두 아들, 그 중에서도 특히 장남은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오십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명성에 폐가 될까 고심한다. 아버지의 맛집을 아들이 이어받다가 망한 식당이 하나 둘이 아님을 그 누구보다도 지로의 장남아 잘 알고 있어서다.

지로의 식당에서 일하는 이들은 십 년이 되어서야 계란 요리를 할 정도로 엄격한 도제의 길을 걷는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단기간에 요리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요리사의 자세부터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닫기 위해 그만큼 고단한 세월을 견뎌야 하는 게다.

한 경지의 장인이 되기 위해 인생을 올인하는 열정을 보여주는 이는 지로와 그의 아들, 지로의 밑에서 일하는 요리사들만의 몫이 아니다. 지로의 식당에 쌀을 대주는 쌀 중개인은 자기 쌀에 대한 프라이드가 매우 강한지라, 지로가 아니면 자기가 공급하는 쌀을 제대로 밥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없다 하여 호텔에도 쌀을 납품하지 않는다. 돈이 최우선이 아니라 자신의 쌀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지로에게만 자신의 쌀을 구매할 자격이 있다고 보는 ‘장인 정신’ 때문이다.

<스시 장인: 지로의 꿈>은 인생의 열정에 관해 묻는 다큐멘터리다. 하나의 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이를테면 가당치도 않아 보이는 계란말이 하나를 위해 십 년의 세월을 감수할 자신과 열정이 있는가를 묻게 만드는 ‘열정의 이야기’이기에 그렇다.

아니, 어쩌면 현실을 ‘디스’하는 다큐멘터리일지도 모른다. 한 직장에서 한 평생, 아니 십 년을 근무하게끔 만들기는커녕 명예퇴직을 종용하는, 고용인을 파리 목숨 쯤 대우하는 이 시대의 컨베이어 시스템과는 반대로 거슬러 올라갈 줄 아는 옹골진 정신의 장인 이야기이기에 말이다.

영화를 관람한 후 부작용은 영화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걸 유의해야 한다. 만일 초밥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관람을 마치자마자 초밥 집, 혹은 참치회집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