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intro) : 정치는 '카피레프트‘다

2MB의 대국민담화를 보며 철 지났지만 그만큼 익숙한 유행가를 들은 기분이 들었다. 지난 정권도 대국민 담화가 꽤 많았던 것 같다. 레파토리도 비슷했다. 송구하긴 하다는데 뭔가 압박하고 또 자기 얘기만 하는 것까지. 정치는 '카피레프트(copy left, 저작권의 자유로운 공유)‘의 정신에 충실한 것인가 보다. “아임쏘쏘소리 벗 알라뷰, 다 거짓말~ 이야 몰랐어~♪uc0♬”

재벌 2세의 아이를 가졌다는 눈물의 심경고백. 어느 여배우가 일갈한다. “통속이라 욕하지 마라! 세상은 치정인데” 당연히, 사진 속 여배우의 얼굴에는 까만 띠가 둘러져 있다. 그러나 이후 어느 미디어에서도 그 사건은, 그 배우는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유일무이한 특종의 매체, 호기심과 관음의 신천지 인터넷 신공이 극강해질수록 아이러니하게 <썬데이서울>의 카더라가 더욱 간절히 그리워지는 이 나뿐일까? 세상은 내가 아는 것보다 점점 단순해지고, 너무 빨리 과거를 향해가고 있어 혼란스럽다.

▲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압도적 지지율을 자랑하던 정권이 초·중·고생과 혈투를 벌이고 있다. 난세 중에서도 말세가 도래했다. 취임한지 채 100일도 되지 않은 정권이 대국민(사과)담화를 발표하는 예는 일찍이 없었다. ‘일 좀 할 줄 알고 뽑았는데 허당이더라’는 장탄식이 어느새 욕지거리로 바뀌어 서울시청 뒤편 식당에서부터 산간벽촌까지 시끌벅적하다. 물론, 아직은 ‘그래도 초반인데 조금 더 지켜보자’는 인지상정도 있는 듯싶지만(지지율 22%) 대세는 훌쩍 기울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게임이 완전히 끝났다. 2MB는 이미 임기 말이다.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8할의 힘을 만들어낸 청소녀/년들의 오늘 걱정은 ‘2MB가 너무 부지런하다’는 것이고, 그 해결책으로 ‘한우가 직접 협상에 나설 것’과 2MB <퇴임시계>를 내놓았다. 2메가바이트로는 도저히 구동할 수 없는 센스다. 덕분에 그나마 세상이 조금 재밌어지고 있다. 청소녀/년들의 센스와 열정에 도저히 발맞춰 나갈 자신도 없고, ‘한치 앞도 모두 물라 다 안다면 재미없는’ 이 난세에 갑갑해 하지들 마시라. 해답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다. 시대의 코드는 <단순·무식·지랄발광>이다. <썬데이서울>을 탐독하던 시절의 단순함으로 돌아가서 철 지난 유행가 가락을 두드리면 된다. 음음음 워훠어~~♪uc0♬

2MB의 아픔 : 소녀시대,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2MB에 대한 ‘묻지마 지지’는 취업에 치인 80%의 20대, 이념에 질린 절반의 386, 추억과 향수로 사는 대다수의 4,50대의 고백이었다. ‘먹고사니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대의 '쪽팔린' 자기 부정이었다. ‘먹고사니즘’의 문제가 영원하다면(한국 정치에서 5년이면 영원이다) 2MB에 대한 지지도 영원해야 했다. 그런데 그 확고 불변의 법칙이 너무 초장에 산산히 박살났다.

워낙에 2MB의 기량이 시원찮아서 시작하기도 전부터 원투펀치를 여러 번 맞았지만, 결정적 한방, 카운트펀치는 이름모를 소녀가 때렸다. 소녀의 한방을 놓고 설왕설래가 한참이다. 생경한 사건에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본인 역시 침 좀 뱉는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이번 ‘소녀들의 카운트펀치’는 여전히 아햏햏하다. 탐구생활중이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관전평은 조만간 또 밝히겠다.)

소녀들의 맹활약에 대한 진단 없는 처방전만 남발되는 상황이 혼란스럽고, 물론 언젠가 ‘그리움 남기고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워라~♬’할 지도 모를 테지만. 지금 그 단발머리 소녀의 한 방은 2MB를 때린 유일한 한방이며 생각 이상으로 매우 아프게 꽂혔다. 이제 누구도 나비처럼 사뿐히 날아 벌처럼 쏜 소녀들을 더 이상 ‘어리다고 놀릴’ 자격이 없다. 난 정말이지 ‘스쳐가던 얘기뿐이던’ 집회를 반성하며 ‘어리다고 놀리지 않을’ 작정이다. 소녀시대의 도래, 그렇다면 2MB는 얼마나 아플까? 혹자에 의하면 그건 ‘뇌송송구멍탁’정도의 통증이란다.

▲ 서울 청계천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규탄 촛불문화제' ⓒ미디어스 서정은
2MB의 사랑 : 사랑한다면 동아일보처럼

‘고소영‘이 좋다 하시다 ’강부자‘까지 사랑한다고 밝혀 가방 끈 짧은 이, 믿음이 없는 이, 남쪽에서 태나고 살지 못한 이, 움직이지 않는 재산이 없는 이 모두를 도탄에 빠트리고 세상 모든 없는 자의 마음을 애닳은 망부가로 적셔 놓으시니 그 이름 불세출에 빛나는 2MB이시다. 이제 비로소 그 사랑을 직접 밝혀 커밍아웃하시니 찬란하게 아름다운 '우리 동아일보'되겠다. 사랑은 원래 일방통행이다. 쌍방교통의 사랑은 그리스로마 신화에만 나오는 것으로 현실적이지 못하다. 사랑에 관한 난해한 글을 즐기셨던 롤랑바르트 님하께서도 일찌감치 ’사랑은 권력‘이라고 말씀하셨었다.

사랑한다면 동아일보처럼. 사랑에 실패한, 사랑에 자신이 없는, 사랑할 용기가 없는 이들이여. 동아일보를 펼치라. 쇠고기가 따위가 뭐 대수인가. 님께서 안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쇠고기 스테이크 한 접시에 사랑을 시험하려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비겁하다. 뼈까지 들어있어도 30개월이 넘는다 해도 소고기는 쇠고기일 뿐이다. 초중고생은 단결하는데 조중동은 자꾸 단일 대오에서 앞서 나가고자 ‘분열을 획책’하니 이른바 의제설정 능력을 빼앗기지 않는가. 사랑한 사람들이 아무리 후회한다고 얘길 해도, 하지만 2MB 사랑 않고 혼자서 살아간다면 더욱 후회한다. 동아일보의 한결같고 고귀한 사랑에 2MB 정권 화끈한 은혜 내리신다. 2MB가 부른다. ‘동아일보, 넌 남이 아냐’

넌 남이 아냐 내안에 있어
너의 모든 아픔 나 똑같이 느껴질 만큼
네 마음까지도 네 몫인거야
네가 사는 날까지
빈 말 아닌 걸 알잖아

난 널 믿을 거야 네가 뭐래도
가끔 낯설지만
너 아직 날 사랑한다고

반전 : 알 수 없는 인생, 눈부신 그 시절 너의 지난날이 그리워요?

알 수 없는 인생처럼 상황은 불분명하고 정국은 안개속이다. 관전적 재미, 참여의 묘미가 있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상황에 흥미를 더하는 한 가지 팁, 그리고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려드리겠다. 최근 들어 현재의 상황이 ‘미선이·효순이 촛불집회’, ‘월드컵 응원’, ‘탄핵반대’의 연장전이라고 우기는 논리들을 많아지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광장문화와 참여민주주의의 확산이 성숙하고 상식적인 시민의 등장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구조적 근거를 갖추고 있지만, 이러한 논리를 이해하며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분석 가운데 이명박과 노무현을 대비하며 ‘노간지’를 부활시키기 위한 음모의 획책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2MB 패러디물과 더불어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사진이 동네 슈퍼에서 담배 피는 ‘노간지’의 사진이다. 매우 흥미로웠다. 그런데 그런 종류의 흥미로움이라면 선글라스 끼고 논두렁에서 막걸리 마시는 ‘박통’에 비할 수는 없음이다.

미디어 동네에서 ‘노간지’를 특히 예민하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2MB'와 ’노간지‘가 물과 기름 같아 보이지만 사실 동전의 앞뒤면이기 때문이다. ’2MB‘는 ’노간지‘의 미래였고, ’노간지‘는 ’2MB'의 어제였다. 미디어 동네는 방통위라는 괴물, 최시중이라는 실체적 지배자, 정연주라는 상징적 껍데기까지 유난히 2MB의 공세가 거센 그라운드이다. 2MB에 맞서 여전히 세상을 ‘민주 대 반민주’, ‘이명박 대 반이명박’, ‘조중동 대 나머지’로 보자는 시각은 얕은 함정이다. 허황된 반전의 꿈이다. 이 촌스럽고 경직된 시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5년 동안 충분히 경험해오지 않았나? 소고기와 소녀시대를 딛고 부활하려는 ‘노간지’와 그의 추종자들을 추적, 경계, 격리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면, 그저 살포시 외치면 된다. 노간지 님하들아, “그래요, 가끔 나 이렇게 당신 땜에 웃곤 해요~♬”

에필로그(epilogue)

- 이 글에서 언급, 인용, 연상되는 유행가는 총 몇 곡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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