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에 있어서 주말 밤 9시는 어쩌면 '계륵'과 같은 시간대였다. 물론 그 시간대에 임성한 작가의 <하늘이시여>가 막장 논란에도 불구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고, 손현주 주연의 <이웃집 웬수>가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잔잔한 호평을 얻기도 했지만, 밤 9시에 방영하는 SBS 주말 연속극 중에서 시청자들의 뇌리에 남은 드라마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번 SBS가 주말 9시 시간대에 야심차게 내놓은 <내 사랑 나비부인>은 내놓는 작품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 문은아 작가의 작품이다. <너는 내 운명>, <웃어라 동해야> 등 대한민국 막장 드라마의 역사를 다시 쓴 유명 작가로, 문 작가가 쓴 작품은 대부분 30~40% 대의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청률 지상주의 방송계에서, 쓰는 작품 족족 히트를 치는 문은아 작가는 주말 9시 드라마 왕국 재건을 꿈꾸는 SBS의 절묘한 히든카드다.

역시나 문은아 표 드라마 아닐까봐, <내 사랑 나비부인>은 첫 회에서부터 엄청난 스피드로 달려 나간다. 여주인공 남나비는 뛰어난 미모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톱스타로 군림하지만, 10년 째 한결같은 표정 연기로 네티즌들의 조롱을 받기 일쑤다. 거기에 '된장'을 두고 냄새가 나서 못 먹겠다는 폭탄발언으로 나비는 졸지에 10만 안티를 양산하고야 만다.

그녀의 발목을 잡는 발연기 논란에서 벗어나고자 유명한 감독에게 작품을 섭외해달라고 요청까지 했는데 그 감독은 나비에게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 서브 역할을 주었다. 설상가상 주인공 역할은 과거 남나비의 새파란 후배에 불과했던 연지연(이희진 분)으로 내정되었다. 연지연은 과거 나비에게 자신의 남친을 뺏긴 적이 있어, 예전과는 달리 위치가 뒤바뀌어버린 나비를 마구 비꼬아 버린다.

무너지는 자존심에 화가 꼭대기까지 난 나비는 홧김에 술을 마시고 그 상태로 차를 몰다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되고야만다. 과거처럼 '톱스타' 네임벨류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지만 이미 10만 안티 양병에 한물 간 여배우에게 경찰의 은혜로운 자비(?)가 통할 리 없다. 결국 음주운전 소식이 발각된 나비는 CF마저 끊기고야 만다.

그렇게 도망치듯 해외로 출국하다가, 그 과정에서 성공한 교포 사업가 김정욱(김성수 분)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골인한다. 이렇게 무개념 허영녀가 남자 하나 잘 만나 인생 펴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비의 남편 김정욱은 과거 새 아버지의 돈을 들고 튄 아킬레스건이 있었고, 김정욱의 가족은 여전히 김정욱이 집안의 돈을 들고 튄 것에 깊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김정욱의 새 가족들은 분명 김정욱의 정체를 눈치 챌 것이고,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도 그랬듯이 남편의 숨겨진 시댁 식구들과 마주할 나비에게는 혹독한 시집살이가 예고된다.

보통 드라마 같으면 3~4회 정도 진행되는 분량이건만, 역시나 문은아 작가답게 1회 만에 빠른 스피드로 진행된다.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순탄치 않은 나비의 인생이건만, 워낙 빠르게 지나간지라 내면의 갈등,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에서 오는 서사의 깊이는 찾을 수 없다. <웃어라 동해야>가 그랬듯이 문은아 작가가 구현한 월드는 논리적으로 시청자들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생각할 틈도 없이 자극적인 장면을 휙휙 전개하는 미학을 추구한다.

LTE보다 빠른 속도로 지나갔지만,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내용을 지루할 틈이 없이 보여주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문은아 작가 작품답게 <내 사랑 나비 부인>은 1시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훌쩍 지나가게 한다. 애초 문은아 작가 작품에 깊이 있는 철학이나 정교한 갈등을 바라는 이는 없었을 것이고, 문 작가의 대표작들이 그랬듯이 보고 웃고 즐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 사랑 나비 부인>은 여주인공 나비의 몰락, 결혼으로 인한 재기 성공, 그 후 태풍 예고 등 너무나도 많은 내용을 첫 회에서 보여줬기 때문에, 산만해 보이는 문제점도 보인다. 거기에다가 <추적자>, <골든타임>, <유령> 등 정교하고 논리적인 전개를 앞세운 전문 드라마의 인기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성공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주말, 일일 연속극마저 상식적인 전개를 요하는 시대에, 과도한 설정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데 초점을 맞추는 문은아 작가의 작품은 식상해보일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한 문은아 작가의 과장과 왜곡의 미학을 돋보이게 한 것은, 망가짐을 주저하지 않는 배우 염정아의 호연이다. 도회적 미모를 가진 미스코리아 출신답게 지적인 커리어우먼 이미지가 강했던 염정아는 이번 <내 사랑 나비부인>을 통해 180도 이미지 변신을 추구한다. 물론 얼마 전 개봉한 영화 <간첩>에서 기존 이미지와는 다른 억척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허나 냉철한 미모의 간첩이 생활고에 찌든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힘들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상식적인 이해가 곁들어진 영화와 달리, <내 사랑 나비 부인>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저 망가져주기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문은아 작가가 설정한 나비는 연기도 못하고 뛰어난 얼굴로 톱스타가 된 주제에, 뇌도 된장에 쌈 싸 드신 개념 없는 백치미가 흐르는 여자다. 한마디로 나비와 같은 유형은 여성 시청자 입장에서는 '비호감덩어리'이다. 물론 그녀는 자기관리를 못해 대한민국 최고의 톱스타에서 가장 밑바닥으로 추락했지만 결국은 미모 덕분에 성공한 억대 사업가를 만나 사모님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조만간 다시 나비에게 위기가 찾아올 것이지만, 아직까지도 자기 마음에 들면 후배 남자친구도 손쉽게 뺏어버리는 팜므파탈 나비 같은 캐릭터는 수많은 여성 시청자들에게 있어서 '동정'이나 '지지'보다 '퇴출'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발연기'가 아닌 '명연기'로 사랑받는 배우 염정아를 통해 캐릭터색을 다시 입은 '나비'는 단순 '비호감 허영녀'가 아니라 하는 행동은 밉지만 그럼에도 이해하고 용서하게 하는 '관용'을 베풀게 한다.

생애 처음으로 무개념 허영녀에 도전하는 염정아의 망가짐의 투혼이 인상 깊은 나머지, 행동은 과장되었지만 지극히 '평면'적인 된장녀 캐릭터 나비에 생동감과 측은지심까지 안긴 셈이다. 첫 회 염정아의 남다른 원맨쇼로 인해 시선잡기에 성공한 <내 사랑 나비부인>. 만약 <내 사랑 나비부인>이 흥행에 성공한다면 순전히 나비부인 염정아의 공이 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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