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이란 말이 유행이다. 이명박 정부가 내놓는 일련의 사회-경제정책이 1970, 1980년대 군사독재시대의 망령을 떠올린다고 해서 생긴 말이란다. 언론대책을 보더라도 암울했던 그 시절에 활개 치던 통제기술이 오랜 세월 박제되었다가 되살아나는 듯하여 모골이 송연해진다. 국민의 귀와 눈을 가로막고 입을 틀어막고는 방송을 통해 쌍나팔을 불던 그 시절이 말이다.

합법성-정통성이 결여된 군사정권은 언론통제를 통해 통치기반을 유지했다. 정보의 유통경로를 장악하기 위해 언론의 보도-논평을 통제하고 조작했던 것이다. 다양한 통제기구를 두고 다중점검을 통해 통제의 강도를 높였다.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 보안사령부, 치안본부, 문화공보처라는 군관의 조직을 통해 언론을 2중3중으로 감시하고 관리했던 것이다.

▲ 광우병대책위는 21일 오전 서울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이명박 정부의 광우병 비판 여론통제, 공영방송장악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곽상아
기관원이 언론사에 상주하다시피하며 보도-논평내용을 일일이 지시하고 간섭했다. 그것도 사안에 따라 언론사별로 통제수위를 달리하기도 했다. 획일성을 피해 자율성을 보장한 듯이 비치기 위한 술책이었다. 이것이 보도지침이다. 수시로 언론인의 성향과 동향을 조사-분석하고 정부부처 출입을 제한했다. 청와대는 일종의 앙그레망이 나와야 출입이 가능했다.

영어를 좋아하는 이명박 정부는 언론과의 관계를 ‘프레스 프렌들리’라고 말한다. 노무현 정권의 적대관계와는 달리 친밀관계로 가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언론이 권력과 친밀관계를 유지한다면 그것은 권력을 감시-견제해야 하는 기능과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유착관계로 간다는 뜻이다. 이 정부는 조중동 같은 우호매체와는 회유와 설득을 통해 유착관계를 견지한다는 자세를 분명하게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매체에 대해서는 통제의 채찍을 높이 든 모습이다.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이라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언행을 보면 유신정권의 중앙정보부장을 떠올린다. 그 자리가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지키는 선봉장이란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5공의 허문도를 연상시킨다는 신재민 문화관광부 차관이나 보도관제를 남발하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도 그 아류를 닮은 모습이다. 그들은 업무영역과 소관사항을 뛰어넘어 잇단 실정으로 인한 민심이반을 언론통제를 통해 덮으려는 행보를 거침없이 내지른다. 그 옛날의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눈에 보인다는 점이다.

임기가 보장된 언론사, 언론기관, 언론단체의 수장들을 들어내려는 저급한 행태에서도 언론장악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언론유관기관의 우두머리를 친정권적 ‘낙하산’으로 포진시켜 언론통제를 더 효과적으로 수행해 나가겠다는 정략을 말이다. KBS 사장, YTN 사장, 방송광고공사 사장, 언론재단 이사장을 쫓아내기 위해 벌이는 추잡한 행태가 그것이다.

광우병의 진실을 말했다고 해서 MBC <PD수첩>에 대해 법적대응이란 겁주기로 으름장을 놓는다. YTN의 <돌발영상>에 이어 EBS의 <지식채널e>도 결방으로 이어졌다. 외압의 마수가 뻗쳤음이 드러났다. 국민일보의 청와대 입 땅투기 기사삭제도 그 같은 손길이 숨어있다. 그 연장선에서 포털 사이트에 대통령 비판 댓글을 삭제해달라는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안가에서 언론대책회의가 있었다고 한다. 국무회의에서 방송대책을 말했다고 한다. 비판신문에 정부광고를 주지 않겠다는 소리가 나왔다. 뒤이어 아니라며 법적대응을 말한다고 한다. 그 옛날 숱하게 들어본 소리를 닮았다. 총칼 든 군벌통치 치하에서 완장 찬 사람들이 많이 설쳤다. 철권을 휘두르며 언론에 재갈을 물렸던 것이다. 그 때를 연상시키는 소리가 뒤따르니 언론대책이 그 옛날로 회귀하는 느낌이다.

언론환경이 그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정보의 유통경로를 장악하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고 믿던 그 시절은 막을 내린지 오래다. 정보의 유통경로가 다가화되어 언론통제는 이제 불가능해졌다. 설혹 방송을 장악해서 쌍나팔을 불더라도 거기에 진실이 없다면 국민은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 군사독재 시절 권력의 시녀로 타락한 방송이 온갖 추태를 부렸지만 국민의 귀와 눈을 잡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 때는 가장 원시적인 소통수단인 소문(hearsay)이 주류매체보다 더 신뢰를 받았다. 언론을 억압하면 할수록 지하매체가 생기를 찾기 마련이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전통매체에 진실이 없고 거짓만 난무한다면 인터넷이나 UCC로 간다. 벌써 인터넷매체의 접속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언론통제가 신뢰의 위기를 부르면 오히려 권력기반이 흔들린다.

무엇보다도 그 때 그 시절보다 국민의 의식수준이나, 교육수준이 훨씬 높아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곰팡내 풍기는 언론통제기술로는 권력기반을 강고하게 만들 수는 없다.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만 아니까 수명이 다 끝난 언론통제의 망령을 되살리는 것이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솔직한 소통과 대화가 최선의 언론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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