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Joy에서 한국 방송사상 최초로 MTF 트랜스젠더 토크쇼 ‘XY그녀’가 방영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이것이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가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인생이 아름다워’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처럼 지상파 드라마에 동성애자의 존재가 그려지기 시작했지만, 트랜스젠더만을 주제로 매주 토크쇼를 방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케이블 채널이지만 공영방송 KBS 계열 PP에서 방영된다는 것에 대한 기대도 컸다. 토크쇼가 트랜스젠더를 흥미 위주로만 다루지 않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인권적 측면에서 다룰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XY그녀'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XY그녀’가 계속 방영되면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알 기회도 마련될 거라는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반동성애를 표방한 보수단체들이 방송사와 출연자∙MC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협박을 퍼부은 결과 ‘XY그녀’는 단 1회 방영하고 무기한 방영 보류되었다. 이 사건은 어떤 다른 소수자들보다 성소수자의 경우 방송 출연 자체가 물질적 위협으로 돌아오고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건이다.

지난 8일 방영되었던 ‘XY그녀’ 1회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모범적인 내용이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근절 메시지, 국내 뮤지컬 사상 최대의 히트작으로 자리잡은 <헤드윅> OST 등이 인트로와 엔딩에 깔렸고, 국회의원 진선미의 축하 메시지도 있었다. 트랜스젠더 출연자들 또한 이성애자의 연애 고민을 능청스럽게 받아치는 기갈찬 모습과 겪어야만 했던 삶의 애환을 첫사랑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속깊은 모습이 교차하였다. 아마도 이 쇼가 계속 방영되었다면 소위 ‘자극적’인 얘기로 빠질 틈도 없이 지극히 ‘인간적’인 토크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쇼는 더 이상 방영되지 못했다. 지금까지 방송국에서 방영 예고된 프로그램이 보류된 건은 ‘PD수첩’ 방송 보류 건처럼 상부의 정치적 외압에 의한 건이 유일하다. 진실을 밝히는 종류의 탐사 프로그램은 설사 정치적 외압이 있다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싸울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트랜스젠더의 진솔한 삶’을 보여준다는 프로그램은 소위 ‘시청자 외압’에 의해 금세 방영 보류가 되며 이에 대한 사회적 공분 또한 거의 전무하다. 성소수자와 같이 혐오가 당연시되고 섬뜩한 사적 위협이 횡횡하는 분야의 사회적 소수자들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은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간 방송에서 성(性)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무조건 불방되었던 것도 아니다. ‘사랑과 전쟁’에는 놀랄 만한 수준의 부부간 에피소드가 많이 방송되며, 심야토크쇼에서도 성적인 농담이 곧잘 흘러나온다. 성적인 것이 곧 나쁜 것이라고 인식되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기이할 정도로 이성간 성적 욕망 표현 수위는 ‘넘을 듯 말듯’ 곡예를 타면서 성소수자는 존재를 방송에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유해하다는 공격을 받는다.

모든 사람이 성소수자의 방송 출연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일부 동성애혐오 세력이 도저히 성소수자가 방송에 출연할 수 없을 정도로 혐오성 문자, 전화 폭탄을 주도한다. 이들은 ‘며느리가 남자라니 웬말이냐’라며 줄곧 선정적인 동성애혐오 광고들을 내걸었으며 이번 ‘XY그녀’의 경우 반대 세력은 대구 초등학교 성폭력 사건과 성소수자 방송 출연을 연결시키는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광고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논리가 아무리 괴악하여도 이들의 활동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그닥 갖고 있지 못하며 ‘일반인의 정서’라는 이름으로 도리어 끌려가고 있는 것이 상황이다.

이쯤에서 종교를 표방한 이들의 활동이 얼마나 반민주주의적이며 반인권적인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방송에 출연한다는 이유로 트랜스젠더의 신변을 공공연히 위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회의 안녕을’ 어지럽히는 일이다.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대에 걸쳐 에이즈나 걸려 죽어라’는 협박 문자를 보낸다면 그 역시 공공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활동이 오히려 표현의 자유라는 이유로 옹호되거나 제재하기 어려운 것이 되고, 성소수자 인권을 내세운 표현이 검열되거나 철회된다면 그야말로 표현의 자유 개념이 선후가 뒤바뀐 것이 된다. 이들의 극악한 행태들을 계속 무력하게만 바라볼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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