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한국처럼 정부가 TV와 신문의 편집 독립성을 완전하게 침해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뉴스 어젠다를 조종하기 위해 (방송사) 사장을 지명하는 (한국) 정부의 간섭만큼 저급하고 직접적인 간섭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26일 오전, '미디어 공공성 강화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루크 크롤리(Luke Crawley) 영국 BECTU 부사무총장의 발언이다. BECTU(Broadcasting Entertainment Cinematograph and Theatre Union)는 '방송ㆍ예능ㆍ영화ㆍ극장 노조'로서 영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가장 큰 노동조합이다.


▲ 윌리엄 모니에 프랑스 PSB 노조 사무처장(왼쪽)과 루크 크롤리 영국 BECTU 부사무총장(오른쪽) ⓒ미디어스

루크 크롤리 총장은 토론회가 끝난 이후 <미디어스> <미디어오늘> <PD저널>과 가진 공동인터뷰에서 정연주 KBS 사장 불법해임, 해고 언론인 속출, 비판 프로그램 폐지 등 현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진 일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며 "한국이 정말 언론의 독립성을 지켜내고자 한다면, 12월 대선에서 현재의 대통령을 쫓아내는 게 첫 번째 과제"라고 짚었다. 아무리 제도가 잘 돼 있다고 하더라도 언론을 '통치'의 한 수단으로 인식하는 현 대통령 하에서는 언론자유, 독립성이 요원한 일이라는 인식으로 보인다.

프랑스 공영방송인 PSB의 윌리엄 모니에(William Maunier) 노조 사무처장 역시 프랑스 방송의 규제기관인 '시청각 고위 위원회'(CSA)가 대통령 지명 3인, 하원 의회 지명 3인, 상원 의회 지명 3인으로 구성되지만 기본적으로 고도의 '전문성'을 확보한 이들이 위원으로 선임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독립돼 있는 것이 '프랑스의 역사이자 문화'라고 밝혔다. 프랑스는 언론인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언론인들이 스스로의 양심과 명예를 침해당할 위기에 놓였을 때 법적 보장(퇴직보상금 청구 가능) 하에 그만둘 수 있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 일명, '양심조항'이 노동법에 설치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독립된 방송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도 '재정적 압박'을 피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영국의 경우, 현 정부가 BBC의 주 수입원인 수신료를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동결하기로 결정한 탓에, BBC가 1만8000명의 전체직원 가운데 1200명을 구조조정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프랑스 역시, 새로 선출된 정부가 최근의 경제위기로 인한 긴축정책의 일환으로 내년도 공공부문의 기금모금액을 약 4% 삭감해 방송 분야에서도 정리해고, 활동 축소 등이 예상되고 있다. 윌리엄 사무처장에 따르면, 모든 방송 노동조합은 이 발표에 대응하고 PSB를 지키기 위해 캠페인과 반대집회, 시위, 파업 등을 조직 중이다. 내달 2일에는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 한국의 경우 현 정부 들어서 해고 언론인이 속출하고, 비판 저널리즘이 거세졌다는 평가가 많다. 이런 현실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루크 크롤리 영국 BECTU 부사무총장 "한국에 와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종합한 결과, 한국이 정말 언론의 독립성을 지켜내고자 한다면, 12월 대선에서 현재의 대통령을 쫓아내는 게 첫 번째 과제라고 판단했다. 그것 외에는 당장 이 문제를 치유할 다른 전망이 없다고 본다.

그리고 집권당, 야당, 그리고 제3의 대선 후보가 뜬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이 언론자유와 독립성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히 살펴야 한다. 안(안철수 후보)의 경우에도 아직 미디어정책이 어떤 것인지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알아보라. 영국 역시 선거에서 선출된 이후에 정치인들이 등을 돌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한국도 그러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대선후보들이 언론자유와 독립성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숨기고 있는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윌리엄 모니에 프랑스 PSB 노조 사무처장 "소수를 제외하고는 정치인들을 믿을 수 없다. 대신에 우리는 정치적으로 약속을 한다. (어떤 부분들을 지키겠다라는) 일종의 협약식을 여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구체적으로 질문지를 짜서 후보들에게 모두 보내고, 선거 이후에는 그것을 증거로 삼아 압박한다. 후보자들에게 언론자유를 포함해 미디어정책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질문하라. 예를 들어, '새로운 방통위원장은 어떤 식으로 선출하겠다'라는 구체적인 답변을 미리 받아놓을 것을 제안한다."

- 수신료 동결로 BBC도 재정압박이 심하다고 했는데, 폐해는 없나?

루크 크롤리 영국 BECTU 부사무총장 "현 정부가 BBC의 주 수입원인 수신료를 동결하는 바람에, 자발적으로 1200명을 정리해고 해야 할 상황이다. 런던 같은 경우에도, TV 뉴스룸과 라디오 뉴스룸 그리고 월드와이드 서비스 뉴스룸의 공간이 다 따로 있었는데 올해 말까지 하나로 합친다고 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근로자들이 정리해고될 것 같다.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대도시인 버밍엄의 방송국은 노조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아예 문을 닫았다. 재정압박으로 인한 폐해가 없을 수 없다.

정부가 계속 비용을 절감하도록 요구하고 있어서 BBC가 위축돼 있다. 정부 비판 보도의 경우에도, 전보다 덜 비판적이다. 요즘 재정위기다 보니 영국에서 논쟁거리가 많은데 논쟁적 이슈에 대해서도 BBC가 날카롭게 치고 들어가지 못한다. 논쟁에 휘말리지 않고, 어느 편도 들지 않으려 하고 있어 문제다. "

- 재정적으로 힘들어짐에 따라 기자들이 자본의 눈치를 보면서 자기검열하는 일은 없나?

윌리엄 모니에 프랑스 PSB 노조 사무처장 "공영방송의 경우 광고와 기사는 전혀 관계가 없다. 한 건물 안에 있기는 하지만 광고 담당부서와 기사 담당부서는 별개 회사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자기검열이 있을 수 없다. 민영방송의 경우는 공영방송사와 사정이 좀 다르긴 하지만, 각 매체들이 전체 광고 파이 중에서 20~50%를 골고루 가져가기 때문에 기자들이 별도의 압박을 받지는 않는다. 자기검열이 있을 수 없는 구조다."

- 프랑스의 경우, 규제기관인 '시청각 고위 위원회'(CSA)가 '독립기관'이지만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이다. 때문에, 한국에서는 2008년 방통위 출범 당시 '정치적 독립' 면에서 큰 결함이 있다는 비판이 거셌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윌리엄 모니에 프랑스 PSB 노조 사무처장 "프랑스의 CSA는 어느 정부 부서와도 전혀 관련이 없으며, 굉장히 독립적이기 때문에 '비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사르코지 정부 출범 이후 방송보도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으나 프랑스의 기본적인 전통과 문화가 그렇다. 위원들 9명 중 6명이 보수당 또는 대통령과 친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문적'이라 정치적으로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방송 분야에 대해 고도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굉장히 저명한 인사들로만 위원들이 구성된다.

CSA는 공영방송만 규제하는 게 아니라 민영방송도 규제하는데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면 (규제기관들 중 한 쪽이) 항의하지 않겠는가. 규제 대상에 대해 균형을 갖추려면 굉장히 객관적인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다."

- 9명 중 6명이 보수당 또는 대통령과 친한 사람인데, 정부여당의 간섭 없이 공영방송사 이사들을 지명할 수 있다는 점이 한국적 현실과 비교해 볼 때 의아하다.

윌리엄 모니에 프랑스 PSB 노조 사무처장 "역사적으로 그렇다. 그런데 사르코지 정부 출범 이후 2009년 정부와 CSA 위원들이 공동으로 공영방송사 이사들을 지명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버렸다. (9명 중 6명이 보수당 또는 대통령과 친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동안 전문성을 바탕으로 합의를 통해 이사들을 임명했었는데, 사르코지법으로 인해 비전문적이고 정치적인 인물들이 임명되는 경향이 있어서 최근에 우리가 임명 과정이나 절차를 좀 더 민주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르코지법 폐기를 위한 압박활동도 진행한다. 현 문화부 장관 역시 사르코지법 폐기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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