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당시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의 분신에 항의하며 상경투쟁을 벌이던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의 모습 ⓒ연합뉴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첫 일정으로 찾은 구로디지털 단지 발언이 여러 각도로 해석되며 화제가 되고 있다. 본지 기사에 대해서도 ‘핵심을 왜곡했다’는 비판이 있다(기사 링크). 문재인 후보 발언을 “기존 정치권과 재계의 구호를 원론적으로 반복한 것”이라 표현한 것에 대한 불만으로 여겨진다.

물론 본지 기사에서도 소개되었듯, 문재인 후보 발언의 내용의 핵심은 “정부·사용자·노동자가 협력해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발언은 ‘일자리 대통령’을 겨냥하고 첫 방문지를 구로디지털 단지로 찾은 대권후보가 하기에는 지나치게 추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와중에 노동계의 양보를 먼저 요구하는 발언도 섞였기 때문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가령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노동 시간 단축과 사측의 고용 확대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노동계 측 주장대로만 실행할 수 없다고 말했더라도, 업종별․업체규모별로 단계적 대응을 말했다면 훨씬 현실성 있는 대책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재계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할 수 있는 발언이 제약되었다는 주장도 가능하지만 그렇다면 애초 이 행보의 '컨셉'이 분명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가능해진다. 노동계 인사들과 재계 인사들을 함께 불러 두루뭉술한 발언을 하는 자리가 '구로디지털 단지'여야 했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본지 기사나 노동계․진보 인사들의 문재인 후보 비판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는 ‘적어도 박근혜보단 친노동적 인사인 문재인 후보를 미리부터 흔드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심리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비판이 그 사람의 낙선을 의도하는 것이라는 해석은 옳지 않고 이런 논리대로라면 대통령이 된 문재인을 비판할 수도 없다. ‘대통령 되기 전엔 비판을 자제하라’는 논변은 그대로 ‘정권 초엔 비판을 자제하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논리는 노동계와 민주당을 막연하게 ‘우리 편’으로 상정하고 전자에 대해 후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요구하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계가 새누리당이 아닌 민주당에게 대항하면서 이명박의 세상이 왔거나, 박근혜의 세상이 올 거라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류의 발언은 ‘진심’이 아니라 재계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호의적으로 해석하면서, 노동계는 ‘진심’을 알아차리고 반발하지 말아야 한다는 편파판정이 된다.

물론 문재인 후보의 원론적인 발언만으로 그의 노동정책을 추론하는 것은 무리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는 후보 시절 재벌개혁이나 노동문제에 대해 ‘주류’의 시선에서 보면 굉장히 ‘과격한’ 발언을 했지만 참여정부에서 그것들이 실행되지는 않았다. 문재인 후보가 그보다 조심스러운 캐릭터라고 해서 참여정부만큼도 개혁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의 ‘진심’이 다른 쪽에 있을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 역시 없다.

▲ 대통령 후보 시절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탈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스타일이었다. 그에 비하면 문재인 후보의 발언은 훨씬 더 조심스러운 편이다. ⓒ연합뉴스

결국 추상적인 발언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구체적인 정책의 부족함인데, 개혁세력의 준비부족은 개혁의 성공가능성을 감소시키게 된다. ‘비판’을 ‘발목잡기’로만 바라보지 말고 ‘담금질’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정책 영역을 떠나 정치력의 측면에서 봐도 문제가 생긴다. 막연하게 노동계의 협력을 요구하는 자세는 2003년에 있었던 참여정부와 노동계의 극한 갈등이라는 ‘경험’을 활용하지 못한다. 2003년 4월에서 8월까지 노동계는 철도노조 파업, 화물연대 파업, 지하철 파업, 조흥은행 파업 등을 연달아 일으키며 참여정부와 극한의 대립을 벌였다. 이 시기엔 이라크 파병 반대 투쟁, 새만금 간척 사업 반대 투쟁, 전교조의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반대 투쟁까지 겹쳐 진보진영 전체가 참여정부와 ‘전쟁’을 벌였으나 결국 핵심은 노동이었다. 2003년 10월엔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지회장, 세원테크 이해남 노조지회장,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이용석 광주본부장, 한진중공업의 곽재규 조합원이 연쇄적으로 자살했다. 이들의 죽음은 손배가압류를 비롯한 사용자 측의 적극적인 노조 탄압 공세와 결부되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의 분신자살을 경험했고 손배가압류 제도의 개선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노동계의 투쟁은 무조건 ‘선’이고 정부의 대응은 ‘악’이라는 잣대로 접근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개혁 세력의 집권이 자동적으로 노동계와의 협력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냉엄한 현실을 지적하고 싶다. 그 당시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달았던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IMF 극복 과정에서 고통을 떠안았다고 본 노동계가 참여정부에게 건 기대치가 있었는데, 손배가압류 등 노동계가 떠안게 된 문제들을 정부가 적절하게 해결해 주지 못한 탓이 크다. 참여정부의 대응 자체가 잘못이었다기 보단, 사회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에 무력했던 차원이다.

그러나 그 무력함의 책임을 노동계에 돌려 “정권을 길들이기 위한 파업은 안 된다”나 “본때를 보여주려 했다”(노무현) 같은 발언을 하거나, “참여정부는 ‘쥐’고 노동계는 ‘고양이’다”(유시민) 같은 말을 해서 갈등이 격앙된 부분도 분명히 있다. 특히 "죽음으로 항거하는 시대는 지났다"(노무현)는 말은 김진숙 지도위원이 추모사에서도 언급했듯 노동운동가들에게 상처로 남았다. 결과적으로 이 극한 투쟁 이후 참여정부는 진보세력 내부에서 고립되고 임기 중반 이후 관료집단과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노동계 역시 2천년대 중반 이후 ‘정규직-생산직-중년-남성-노동자’의 협소한 틀을 극복하지 못하고 쇠퇴하게 된다. 양쪽 모두 다른 선택이나 합의가 가능했을지 곱씹어 봐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그래야 ‘미래’ 상황도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목 잡아서 개혁을 못했다’는 단순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 2003년에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지 않았다면 참여정부가 ‘알아서’ 손배가압류 법을 개정해 줬을까? 그랬을 리는 만무하다. 또한 발생한 갈등 상황에 대한 결과론으로 한쪽에 책임을 물린다면 2008년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도 스스로를 중도파 정권이라 착각했던 이명박 정부가 극우파를 중용하고 사찰에 의존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사찰의 책임이 이명박 정부에 있지 촛불시민에 있는 게 아니라면, 한미 FTA에 대한 책임도 참여정부가 져야지 노동계가 져야 할 일은 아니다.

▲ 이명박 정부의 '나쁜 노동정책'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된 김진숙 지도위원의 '희망버스'도 그 기원은 2003년의 투쟁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김진숙은 바로 김주익이 죽은 그 크레인 위에 올라갔다. 이명박 정부와 참여정부의 차이는 크지만 두 정권을 관통하는 문제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연합뉴스

물론 만일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맞닥트릴 환경은 참여정부 때와는 다르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모델을 한정적으로나마 수용하려고 시도했던 참여정부 시대와는 달리,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경제 정세는 자유주의 개혁세력과 진보주의자들의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협력이나 합의는 정세적 필요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으로선, 노동계의 반발을 섭섭해 하거나 비판하기 전에 2003년과 같은 극한 갈등을 피하기 위한 관계 구축에 들어가야 할 때다. 일단 임박한 쌍용차 청문회에서부터 '정권 교체가 답'이란 말만 반복하지 말고 진지하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또 노사정 합의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원론’이 ‘진심’으로 다가서려면 재계와 노동계 양쪽을 비중있게 접촉하면서 현 시점에서 가능한 점진적인 계급 타협책을 제시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문재인 발언 비판’을 ‘발목잡기’로 받아들이기엔, 산적한 문제가 너무나도 많은 상황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