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장면 1.

18일 이명박 대통령이 어마어마한 공권력과 함께 광주민중항쟁 28주년 기념식에 다녀갔다. 그는 기념식에서 화해와 상생을 이야기했다.

#장면 2.

18일 전국의 노동자 농민 학생이 망월동 묘지를 참배했다. 그들은 망월묘지를 점령한 8000여 명의 전투경찰에 막혀 기념식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장면 3.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 등 민주 열사의 유족들 역시 전투 경찰에 가로 막혀 기념식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가 행사장을 막아선 경찰 앞에서 초청장을 찢고 있다. ⓒ 광주드림 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망월동은 이런 곳이 아니야. 당신네들이 막을 장소가 아니야. 당신네들은 부끄러워서 못 올 데가 이 곳 망월동이야. 길을 열어!"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민주열사와 80년 광주시민들이 묻힌 망월동에서 국가가 부린 횡포다.

5·18민중항쟁 28주년엔 각종 모순들이 유난히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5·18기념식에 참석하고, 일부 오월단체들이 학생들의 시위를 염려해 사전 집회신고를 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죽음으로 부당한 권력에 맞섰던 5·18민중항쟁이 '경제 살리기'와 '유니버시아드 유치'에 이용될 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림자

▲ 무엇이 두려웠을까? 18일 국립5·18민주묘지 일대에는 대통령 경호를 이유로 경찰 8000여 명이 투입된 가운데, 경찰은 구묘역(오른쪽)에 모인 노동자와 학생들이 신묘역(왼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차량 수십 대로 바리케이드를 쳐 놓았다. ⓒ 광주드림 임문철 기자

5·18민중항쟁이 국가기념일이 된 순간부터 그림자는 드리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 그림자는 정권이 바뀐 2008년 들어 가장 어두운 듯 하다.

기념식 사상 최대 경찰병력이 배치됐고, 망월동을 찾는 참배객들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불신 검문'에 응해야 했다. 만장들 사이로 새까맣게 늘어선 전투경찰은 망월동이라는 장소에 파열음을 냈다.

다시 한번 따져보자. 국가 기념일이 되면서 '민주화 운동'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언어 순화를 강요당했지만 5•18은 민중 항쟁이었다. 국가가 민중을 배신했을 때 민중이 들고 일어섰던 것이다.

5월 항쟁은 단순하지 않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민중생존권 투쟁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기층 민중을 중심으로 양심적 시민세력이 연대해 전개한 급진적 대중적 민중항쟁이었다.

'불법 시위 엄정 대처' '폭력 시위 근절' 등을 이야기 하는 정부와는 애초 서로 맞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5•18민중항쟁은 아주 심각한 불법 시위에 폭력 시위 아니던가.

5·18민중항쟁이 국가기념일이 된 순간부터 '화해'라는 수상한 단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5·18국립묘지에 거대한 대리석 조형물들이 들어서고 깔끔하게 단장된 그 순간부터다. 아직 어느 누구도 그에 맞는 책임을 지지 않았는데,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있는데 화해와 상생이라니.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5·18기념식이다. 무엇을 기념하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에 이제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유폐된 과거, 화석화된 정신, 위험하지 않는 추모…이런 것들이 국가가 원하는 것일 게다.

5·18민중항쟁은 80년 이후 벌어졌던 많은 저항의 역사와 맞닿아 있음에도 각종 기념물들은 오월민중항쟁을 80년 단 열흘간의 시간에 가둬둔다.

이것을 용인해 준 것이 '우리'임을 생각하면 더욱 참담해진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국가 기념일 영역 밖에선 사뭇 다른 광경들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17일 금남로 거리와 옛 도청 앞 광장에선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목소리가 넘쳤다. 금남로로 모여든 전국의 노동자 농민 학생들과 시민들에게서다.

▲ 17일 저녁 옛 도청 일대에서 열린 5.18민중항쟁 제28주년 기념 전야제는 2008년 민주성회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등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촛불들의 집결이다. ⓒ 광주드림 임문철 기자
광주역에서 집결해 전야제가 열렸던 옛 도청까지 행진했던 노동자 농민 학생의 대열은 구경 나온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집회의 대열이 이 같은 격려를 받은 것은 군사정권 시절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어진 전야제는 '80년 5월의 2008년 식 재현'으로 보였다. 할 말 있는 누구에게나 발언권이 주어졌던 80년 5월의 민족민주성회의 재현이었다.

국민의 건강권을 내버리고 미국의 이익에 끌려 다닌 정부에 대한 성토의 장이었다. (구호도 등장했다. 정치적 구호가 등장하면 집회이고 일몰 후 집회는 불법이니 5•18민중항쟁 28주년 전야제는 정부논리대로 하면 불법집회가 되겠다. )

금남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인가. 반노동자 정책으로 일관하는 정부에 저항하는 노동자들과 한미FTA와 쇠고기 수입개방 등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농민들과 그리고 새로운 피해자로 등장하고 있는 초중고생들이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정부의 엄포에도 불구, 할 말은 하겠다는 '저항'이다.

정부주도 기념식과 촛불로 물결을 이뤘던 전야제. '이것을 기념하라'고 정해준 기념의 공간과 2008년 5월 17일 금남로 광장의 모습. 5·18민중항쟁 28주년, 참담함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는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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