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던 그르던 어느 사회에나 '습관적 연상'과 이를 설명하는 '일상적 표현'들이 있다. 그리고 미디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더 '습관적 연상'과 '일상적 표현'에 많이 의지하면서 언어의 입체감을 잃고 있다.

예를 들어, 폭발적인 물가 인상을 설명하는 미디어의 표준어는 '엄마의 장바구니'이다. 따뜻한 가족애를 보여주는 장면은 '아버지와의 소주 한잔'으로, 젊은 세대의 소비 지향성을 표현할 때는 '언니의 화장품', 88만원 세대의 무기력함은 '츄리닝 입은 오빠'를 그리는 식이다.

▲ 최근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이 모두를 합치면 최고의 선수!!" 이미지 ①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해보자. 그렇다면 미디어는 '한국인'을 구현하며 어떠한 연상과 표현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한국인의 이미지는 조선소에서 철근을 용접하는 노동자였다. 애국가 장면에도 나왔던 것 같고, 새해 첫날이면 둥근 해와 함께 새벽 작업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사진이 신문에도 실렸던 기억이 있다. 강인한 남성이었고, 아버지였고, 엔지니어였다. 비록 지금은 준비 중이지만 언젠가 반드시 완성되리라는 확신과 우리가 아직은 아침이지만 곧 찬란한 낯으로 웅비하리라는 기대에 찬 메시지였다.

두 번째 한국인은 IMF때 만들어졌다. 맨발의 박세리였다. 애국가의 장면 역시 노동자에서 박세리로 교체되었다. 어렵지만 할 수 있다는 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였고, 도전 외에는 살길이 없다는 암시였다. 기술이 안 되면 깡으로 악으로라도 해야 한다는 체면이었다. 새마을운동의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해야 하나, 한강의 기적을 잇는 맨발의 기적이었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하면 된다'의 정신으로 세계와 맞서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세 번째 한국인의 이미지는 2002년 월드컵의 거리 응원이었다. 광장을 붉게 메운 함성은 그 자체의 규모와 스펙터클만으로 대단한 성취로 읽혔다. 어렵지만 해냈다는 실천이었고, 도전해서 살았다는 환호였다. 우리만의 원천 기술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최초로 등장한 '하면 된다'가 아닌 '할 수 있다' 버전의 한국인이었다. 뜨거운 자부심을 갖자고 했었다.

▲ 최근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이 모두를 합치면 최고의 선수!!" 이미지②

이후 비슷한 감정적 구조와 맥락에서 변주되어 오늘의 한국인을 이해하는 3개의 중대한 사건이 있었다. 황우석의 원천기술 사기, D-WAR의 애국심 마케팅, 글로벌 기업 삼성의 비자금 조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3개의 사건을 지배했던 '연상'과 '표현'들이 집약된 가장 최근 버전의 한국인이 바로 ‘박지성’이다. 박지성의 일희일비에 대한 미디어의 초집중은 그가 오늘을 살아가는 바로 '대표 한국인'의 위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박지성은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욕망하고 염원하는 거의 모든 요소들은 갖추었다. 우선, 그는 현존하는 최고 리그인 EPL(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초일류 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일원이다. 그의 팀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춘 선수들이 즐비하지만 그 역시 그들보다도 확실히 앞서는 무엇, 바로 '활동력'이라는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

박지성이 프리미어 리그의 맨유에서 뛰는 것 자체가 뭉클하게 애국심을 충족시키고 박지성의 겸손하고 성실한 행보는 이에 적극 조응한다. 박지성의 공차기는 한국인의 부지런한 일상에 대한 증거이자, 박지성이 지구방위대 수준의 멤버들과 세레모니를 나누는 것은 우리를 당당한 세계의 일원으로 인식하는 도취이다.

맨유의 우승으로 EPL은 끝났고, 맨유에게 이제 남은 것은 사실상의 공차기 세계 챔피언을 가리는 2007-200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뿐이다. 오는 22일 첼시와 상대하는 맨유는 리그 우승에서 드러났듯 첼시보다 우수한 전력으로 챔피언에 가장 근접한 팀이다. 국내 상황만 보자면 이 모든 상황의 중심에 박지성의 이름이 아로새겨져 있는 듯하다. 가히 '신드롬(syndrome)'이다.

이 글은 챔스 결승전을 앞두고 박지성의 성적을 폄훼하거나 그의 활약을 무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박지성 수준의 선수들이 나올수록 국내 스포츠 저널리즘의 수준도 향상되어야 함을 요구하는 글이다. 박지성 신드롬은 사실 아주 의도적으로 박지성의 이름 앞에 질문을 붙여놓고 이에 대한 답을 입맛에 맞는 외신 편집을 통해 자답하는 미디어의 장삿속으로 출발했다.

▲ 최근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이 모두를 합치면 최고의 선수!!" 이미지③

그것은 결국, 한국인의 정체성에 관한 국가주의적 호명이었고, 동양인의 콤플렉스를 상쇄하려는 인종주의적 접근의 재탕이었다. 황우석의 원천기술 사기, D-WAR의 애국심 마케팅, 글로벌 기업 삼성의 비자금 조성의 맥락도 본질적으로 그것이었다. 국내의 미디어는 박지성의 플레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고, 그의 이름이 '한국인'의 중심에 새겨지도록 부추기고 있다.

국내 미디어가 박지성에게 붙여놓은 질문은 박지성을 호날두, 루니, 긱스의 급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은 당연히 아닌 것을 묻는 점에서 아주 저급하다. 미디어의 이 질문은 견고하게 박지성과 한국인의 애국심을 엮음으로서 대답을 주저하게 만들고 댓글을 폭발시키는 장사 수완을 발휘한다. 당연히 박지성은 그들의 급이 아니다. 그리고 아니어서 기분 나빠야 할 이유도 없다. 누구보다 그걸 잘 아는 미디어가 계속해서 그런 기사를 써대는 이유는 교묘하게 '그렇다'는 답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또 박지성을 향해 그가 하위권 팀 전용 선수 아니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결국, 아시아의 물건이 지구 도처에 널려있지만 대개가 싸구려더라는 경험을 자극하며 '우리의 박지성'도 사실은 명품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위한 싸구려냐는 도발을 일으킨다.

우리에겐 너무도 자랑스러운 박지성의 국적이 외신의 조롱거리가 되고, 온 국민이 맨유빠가 된 상황이 부끄럽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스포츠저널리즘의 역할은 무엇인가? 박지성을 향한 미디어의 초집중과 신드롬 제조는 무엇을 향해 있는가?

22일, 박지성 선수의 출전과 선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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