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사법 살인'이라고 불리우는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발언을 놓고 방송뉴스가 의도적으로 축소보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12일 KBS <뉴스9>는 4번째 리포트를 통해 "반복되는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를 없애기 위해서 새누리당이 막강한 권한의 특별 감찰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며 새누리당의 특별감찰관제 도입을 중점적으로 전달한 뒤, 리포트 중간에 인혁당 발언 논란을 잠깐 언급하는 데 그쳤다.

박근혜 후보가 2007년 '무죄' 판결을 받은 인혁당 사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라고 발언한 시점은 지난 10일. 박근혜 후보는 10일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를 두고, 민주통합당은 "박근혜 후보가 역사적 사실과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회피 또는 부인하는 것은 헌법의식의 부재를 반증하는 것이자, 역사관을 의심할 만한 문제"라고 비판하는 등 비난 여론이 빗발쳤으나 10일 저녁 방송3사 메인뉴스에서는 관련 내용이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민언련은 브리핑을 통해 "유신체제를 정당화하는 박 후보의 역사인식과 과거사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 나아가 법적 판결까지 뒤집고 보는 사법체계에 대한 이해부족의 문제 등 박 후보의 미흡한 점을 보여준 사례"라며 "대선후보에 대한 정책이나 공약 검증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한 나라를 이끌 대통령 후보의 '역사인식'임에도, 방송3사는 관련 보도를 내지 않음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후보가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의 최근 다른 증언을 감안해 역사 판단에 맡겨야 한다"(오전) "대법 판결(재심 판결)은 존중한다"(오후)고 했던 11일에도 방송 메인뉴스의 보도는 '여야 공방' 프레임으로 처리됐다.

분노한 유족들이 새누리당을 항의방문 하고,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의 '사과브리핑'이 번복된 12일 저녁에는 어땠을까. 12일 논란의 핵심은 박근혜 후보가 홍일표 대변인의 브리핑에 대해 "홍 대변인과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 없다"고 하고, 밤 늦게 이상일 대변인을 통해 "과거 공권력에 피해입은 분들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드린다"고 밝히면서 끝까지 '사과'를 거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방송뉴스의 프레임은 '박근혜의 사과 거부'보다 '새누리당내 혼선'에 맞춰졌다.

MBC <뉴스데스크>는 12일 톱 <朴 인혁당 평가 '사과' 당내 혼선>에서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선후보의 인혁당 평가 발언을 놓고 내부 혼선을 빚고 있다"고 보도했으며, SBS <8뉴스> 역시 톱 <새누리 "朴 인혁당 표현 사과"..혼선>에서 "새누리당이 박근혜 후보의 인혁당 발언을 놓고 혼란에 빠졌다. 인혁당 사건 유족들의 사과요구에 대해서 당과 후보 측이 서로 엇박자를 냈다"고 전했다. 박근혜 후보의 '사과 거부'에 대한 비판은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후보 모두 유가족과 희생을 두번 죽이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민주통합당 대변인 발언을 통해 SBS에서 간략히 언급되는 데 그쳤다.

이날 방송3사 보도 가운데 특히 심각한 것은 KBS다. KBS <뉴스9>는 4번째 리포트를 통해 "반복되는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를 없애기 위해서 새누리당이 막강한 권한의 특별 감찰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대가성이 없더라도 금품을 받으면 엄벌하고 신규 공직 진출과 승진도 제한된다"며 특별감찰관제 도입을 중점적으로 전달했으며, 인혁당 발언 논란은 이 리포트의 중간에 언급되는 정도다. 박근혜 후보의 퇴행적 역사인식을 드러내는 심각한 문제는 뒤로 빼고 측근 비리 근절을 위한 새누리당의 노력을 한껏 띄운 것이다.

해당 리포트는 "박근혜 후보는 과거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는 우리 현대사의 아픔으로 피해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위로한다고 밝혔다"는 문장으로 끝나는데, 이 리포트만 보면 박근혜 후보가 이날 끝까지 인혁당 사건에 대한 사과를 거부했음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KBS는 이날 방송3사 가운데 유일하게 유족 기자회견을 전혀 다루지도 않았다.

김동찬 언론연대 기획국장은 "어제 인혁당 발언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의 핵심은 '끝까지 박근혜 후보가 사과를 거부했다'는 것인데, '혼선이 빚어졌다' 정도로만 보도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비껴가는 것 아닌가. 유력 대선후보의 역사인식을 검증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공방' 정도로만 보도하는 것 역시 부적절하다"며 "특히 KBS는 박근혜 후보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는 핵심적이고도 중요한 정보는 드러내지 않고 교묘하게 감추는 의도적인 축소보도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지호 언론노조 정책실장도 "인혁당 사건은 재심 판결을 통해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판결이 2개 있다'고 한 것 자체가 한국의 사법제도와 전체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며 "방송뉴스가 누락, 축소, 물타기 등 3가지 방식을 통해 의도적으로 '박근혜 띄우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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