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여름 끝자락의 연예계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사람은 강제 해외진출(?)이라는 특이한 행보로 가요계를 점령하고 있는 싸이입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다른 각도로 접근해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늦여름의 여주인공이 두 명이나 화려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습니다. 한동안 대중에게 잊혀 있던 이름. 하지만 그 이름 석 자만으로도 수많은 이미지와 로망을 불러일으켰던 여배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대표작이 너무나도 적고 그나마도 오래전 일이 되어 버린 비슷한 행보를 걸었던, 배우 이전에 그냥 스타였던 잘나가던 누나들. 전지현과 김희선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녀들은 분명 자신들로 대표되는 시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각종 CF로 광고 시장을 장악하며 구매 욕구를 자극했고, 이름을 본 딴 패션 아이템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매 작품들은 그녀들이 출연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화젯거리가 되었고, 각종 가십과 소문의 진원지로 이슈를 선점하는 아이콘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표 미인, 남성들의 이상형 순위를 따질 때 언제나 상위권에 군림하면서 이름 자체가 고유명사처럼 활용되는 여자 연예인으로 누릴 수 있는 인기의 정점을 오랜 기간 유지하기도 했죠.

하지만 정작 배우로서의 성과는 아쉬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긴 연기 경력 중에서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들은 그녀들이 누린 유명세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해외진출, 장르 변화, 캐릭터 변신 등등 스스로의 연기의 폭을 넓히고 이미지를 쇄신하며 배우로 인정받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기도 했지만 그리 신통한 결과를 얻지는 못했죠. 그러다 결혼 소식이 전해지고 간간히 CF나 아침 방송에서 전해주는 행복한 신혼생활 같은 소식으로나마 노출되곤 했습니다. 배우로서의 생명도, 스타로서의 영향력도 서서히 소멸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올해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죠.

천만 관객을 동원한 ‘도둑들’의 힘이 오로지 전지현에게만 있다는 것은 과대포장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녀의 매력을 재발견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김희선의 ‘신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드라마는 전적으로 김희선의, 김희선에 의한, 김희선을 위한 작품입니다. 유오성의 극중 괴이한 헤어스타일만큼이나 괴상하게 비틀어진 이 드라마에서 그녀의 매력을 빼버린다면 별다른 시청 포인트를 찾기 어려울 만큼 그녀는 당당하게 자신이 왜 김희선인지를 과시하고 있죠.

왜 대중이 그토록 그녀들을 사랑했었는지, 적절한 배역과 캐릭터가 주어졌을 때 이들이 얼마나 반짝거릴 수 있는지를 증명한 통쾌한 부활 선언입니다. 물론 각자 호흡이 길기는 했지만 꾸준하게 자신만의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고, 성인으로서의 생각과 행동이 깊어지고, 바로 이런 오랜 기간 동안의 숙성과정이 자신이 가진 본연의 매력을 발산할 때 더욱 더 큰 파괴력을 가지게 해준 힘이었겠지만 이런 강력한 한방이 너무 오랜만에, 이제야 터진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반가움의 한 편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같이 묻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녀들은 꾸준하게 변화를 모색해왔었습니다. 전지현의 작품 프로필을 보더라도, 김희선의 배우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걱정했던 인터뷰의 행간을 살펴보아도 이런 고민과 시도의 노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죠. 하지만 정작 대중이 다시 그녀들에게 환호하고 사랑을 주는 지점은 역시나 처음 이들이 우리에게 소개받았던 당시의 캐릭터 그대로입니다. 도둑들에서 고고한 고양이 같은 섹시함을 보여주던 전지현은 그녀가 처음 호피무늬 원피스를 입고 나온 CF 속 춤사위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엉뚱하고 발랄하면서도 당당한 사랑스러운 신의 속 김희선은 목욕탕집 남자들의 막내딸이 의사가 되어 고려 말로 들어온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은 돌고 돌아 다시 그 자리, 10여년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이 두 여배우는 자신의 출발점으로 돌아온 것이죠.

물론 배우에겐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이 필요합니다. 모든 배우가 작품마다 색다른 변신을 강요받아야 하고, 언제나 다른 캐릭터로 대중 앞에 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자신의 고유의 매력까지 깎아 먹을 수 있는 위험한 강요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전지현다운, 혹은 김희선다운 매력을 발산하는 것은 여배우로서의 성장과 롱런을 가로막을 수밖에 없는 유통기한의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배우는 나이를 잊는다지만 만약 40대의 김희선, 전지현이 지금과 똑같은 배역과 캐릭터로도 호응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50대, 60대의 모습은 어떨까요? 배우로서의 생존을 위해 과연 도둑들과 신의에서의 극중 모습들이 얼마나 더 유지, 활용될 수 있을까요?

그녀들 스스로도, 그리고 제작진으로서도 분명 그 한계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들의 카운터 파트너들로 풋풋하기 그지없는 김수현과 이민호를 옆에 배치해서 두 여배우들의 나이를 잊을 수 있도록 대중의 착시를 유도하고,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강조했던 것이겠죠. 다른 가능성을 찾기 위해 그다지도 다양한 연기를 시도해보거나, 오랜 휴식기를 통해 숙고의 시간을 보내왔던 것이겠죠. 성공이 반갑고 즐겁지만 동시에 그런 노력들이 결국은 도돌이표 같은 캐릭터 소화로 묻혀버리는 것이 아쉽기에 하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차기작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단순히 전지현다운, 김희선 같은 캐릭터만을 소화하는 배우로 남기에는 그녀들은 여전히 젊고 매력적이고 당당하기 때문이죠. 지금의 화려한 복귀 신고가 한동안 이루지 못했던 그 다음 발걸음으로의 발판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번 복귀로 자신의 첫 번째 절정기 때의 매력을 재확인시켜 주었다면 그 다음은 또 다른 매력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물론 이런 바람은 단지 이 두 여배우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남자 배우와는 다르게 30대만 되어도 용도폐기취급을 받는 수많은 억울한 여배우들. 극의 중심에서 누구의 엄마, 이모, 주변인 배역으로 내몰려야 하는 빛나는 재능들을 위해서라도 좀 더 힘을 내주길 기대하는 것이죠. 너무 과한 기대인가요? 하지만 이들에겐 그만큼의 에너지가, 능력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녀들의 연기자로서의 도전은 어쩌면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