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부의 ‘KBS 장악’ 시도에 대한 논평 -

이명박 정부의 ‘KBS 장악’ 음모가 노골화 되고 있다.

15일 〈PD저널〉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김금수 KBS 이사장을 만나 미국산 쇠고기 파문을 다룬 방송보도에 불만을 표시하고 정연주 KBS 사장의 조기사퇴를 언급”했다고 한다. 이날 최씨는 ‘‘최근 미국산 쇠고기 파문 확산과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이 방송 때문이며 그 원인 중 하나가 조기 사퇴 요구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KBS 정연주 사장 때문’이라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일부 친한나라당 성향의 KBS 이사들이 최근 ‘정연주 사장 사퇴권고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어 정부 여당이 ‘정연주 축출’과 ‘KBS 장악’을 위해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는 의혹을 낳고 있다. 최시중 씨와 김금수 이사장이 만난 다음날인 13일 오전, KBS 이사회는 간담회를 열었는데 이 때 친여성향의 일부 KBS 이사들이 ‘정연주 사장 사퇴 권고 결의안’을 제기해 상정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고 한다. 결국 이 문제는 20일 임시이사회에서 다시 논의하게 되었다.

방송법 상 KBS 이사회는 사장을 대통령에게 임명제청 하는 권리만 있을 뿐 해임이나 면직에 관해서는 어떤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친여성향 이사들이 ‘사퇴 결의안’이라는 해괴한 방식을 동원해 정연주 사장의 사퇴를 압박하겠다고 나선 것은 ‘정부여당-방통위원장-친여성향의 KBS이사’ 등 범 여권세력이 모종의 계획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정연주 사장의 사퇴를 반대하는 일부 이사가 부당한 압력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KBS 이사인 신태섭 동의대 교수는 KBS 이사회 간담회가 열린 13일 학교로부터 경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학교 측의 승인을 받지 않고 KBS 이사를 한 것을 문제 삼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동의대 측은 ‘학교에 대한 (교육부의) 감사가 실시 될 수 있다’며 ‘학교를 위해 KBS 이사직에서 물러나 달라’고 요청했다 한다.

신태섭 교수가 KBS 이사가 된 것은 1년 6개월 전이다. 친여성향 KBS 이사들이 ‘정연주 사퇴권고 결의안’ 채택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이를 반대하는 신태섭 이사에게 이런 압박이 가해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교육부의 감사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동의대 총장의 발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KBS 이사회가 ‘정연주 사퇴권고 결의안’을 의결하기 위해 반대 의견을 가진 이사를 압박해서 쫓아내겠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교육부와 대학까지 동원하겠다는 뜻이다. 동의대는 15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신태섭 교수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고 한다.

KBS를 ‘정권의 나팔수’ 만들겠단 말인가

정부 여당이 최시중 방통위원장, 친여성향 KBS 이사, 교육부, 사립학교까지 동원해 ‘정연주 축출’에 나선 의도가 ‘공영방송 KBS 장악’에 있다는 것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여권과 친여세력, 이른바 ‘보수단체’로 불리는 단체들은 비뚤어진 방송관을 갖고 끊임없이 ‘정연주 체제의 KBS’를 공격해 왔다. 이들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방송이 자신들에게 협조하지 않아 정권을 놓쳤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 아래서 KBS가 이른바 ‘코드방송’을 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각종 시사교양프로그램을 비난해 왔다. 최시중 씨가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폭락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반대 여론 확산을 ‘KBS 탓’, ‘정연주 탓’ 했다는 것은 이들의 왜곡된 방송관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공영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이들은 정연주 사장을 흔드는 논리로 ‘경영능력’도 문제 삼아 왔다. 이 과정에서 KBS의 적자 경영이 정 사장의 ‘무능’을 입증하는 증거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KBS 운영의 근간이 되는 수신료가 1981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28년째 2500원으로 동결되어 있고, 방송통신융합 상황에서 매체 간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지금 KBS의 재원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40%에 불과하다. 적정 수준의 수신료 인상을 통해 KBS의 재원구조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고 광고수입의 비중을 낮추는 것이 KBS가 공영방송으로 제 역할을 하면서도 적자를 내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에 따라 KBS가 프로그램의 공영성을 강화하고 경영의 효율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재원구조를 정상화하는 노력 없이 ‘흑자경영’을 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공영방송 KBS를 돈벌이를 위한 경쟁으로 내모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우리는 공영방송 재원구조의 정상화를 촉구하며 사회적 논의를 거쳐 ‘28년간 동결된 수신료를 현실화하자’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여당은 수신료 현실화의 발목을 잡으면서 정연주 사장의 ‘무능’을 질타해왔다. 여기에 이른바 ‘보수세력’들도 합세했다.

우리는 묻고 싶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정연주 사장을 쫓아내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앉히면 ‘수신료를 인상하지 않고’,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흑자경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정부 여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연주 사장을 쫓아내고 또 한 번의 ‘측근인사’로 공영방송 KBS를 장악하고자 한다면 국민들은 ‘제2의 수신료 거부운동’까지 벌일지 모른다.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 인사들이 단 몇 개월 동안 보여준 언론 통제의 사례들을 통해 이 정부의 언론관에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언론사 외압 행사,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다룬 MBC <PD수첩>에 대한 소송 검토, 방송통신위원회를 동원해 인터넷 댓글을 통제하려는 시도 등등 이 정부의 언론관은 80년대 군사독재정권의 언론관보다 나을 것이 없다. 이런 정부가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 사장까지 쫓아내고, 측근인사를 앉힌다면 KBS가 정치적 독립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또 국민은 이런 KBS를 ‘공영방송’으로 여길 것인가?

최시중 씨는 즉각 물러나라
정부 여당은 지금 자신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신뢰를 접었다. 대오각성하고 국정운영의 새로운 방식을 찾아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까 말까 하는 판국이다. 정권의 지지율 추락을 ‘방송 탓’이나 하며 공영방송 사장을 바꾸어 ‘대국민 홍보를 잘 하면 된다’는 식의 구시대적 발상은 국민의 저항만 초래할 뿐이다. 최시중 씨가 ‘정 사장 퇴진’ 압박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오자마자 벌써부터 네티즌 사이에서는 ‘정연주를 쫓아내면 수신료 거부운동을 벌이겠다’는 반응이 나온다.

국민들은 미국 쇠고기 수입 파문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실체 뿐 아니라, 공영방송의 중요성과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수구보수신문들의 행태를 명명백백 알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정연주 사장을 쫓아낸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뻔하다.

정부 여당은 치졸하고 사악한 ‘공영방송 장악’ 음모를 즉각 중단하라.

우리는 국민들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음모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KBS 이사회 내 일부 친여 이사들에게도 경고한다. 방송법에도, KBS 정관에도, 그 어디에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사장 사퇴 권고 결의안’ 추진을 당장 중단하라. 끝까지 이를 밀어붙인다면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에 들러리 섰다는 국민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홍보특보’인지 방송통신위원장인지 분간을 못하는 최시중 씨도 더 이상 추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물러나라.

덧붙여, KBS 노조 내의 일부 ‘친여 부화뇌동 세력’들도 KBS를 이명박 정권에 ‘상납’할 생각이 아니라면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정체성을 지키는 데 나서기 바란다. 국민들이 KBS 노조를 지켜보고 있다.

2008년 5월 16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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