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하지만 며칠 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주세요’_故 최고은 작가

촉망받던 최고은 작가의 생활고로 인한 죽음을 계기로 제정된 <예술인복지법>(이른바 ‘최고은 법’)이 오는 11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정작 문화예술인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4대보험 적용이 국회논의과정에서 무산됐고 예술인복지재단의 안정적 재원도 불투명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예술인복지법> 시행을 앞두고 벌써부터 “전면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시나리오 작가 고 최고은씨가 남긴 쪽지 ⓒ민중의소리

“예술인복지법인데…대부분 예술인들은 해당사항 없다”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에서 <예술인복지법>이 통과됐다. 고 최고은 작가의 죽음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지지부진했던 해당 법 제정을 견인했다. 하지만 <예술인복지법>에는 ‘예술인의 업무상 재해에 관한 보호’(제7조)를 통해 산재보험만 포함됐을 뿐 나머지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은 빠져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문화평론가 나도원 문화평론가는 30일 SBS라디오 <김소원의 SBS전망대>와의 전화연결에서 “최고은 작가가 산업재해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라면서 “스턴트맨 같은 분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예술인들이 해당사항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소설가가 원고 쓰는데 컴퓨터가 폭발한다거나 음악인들이 감전당해서 쓰러지거나 이런 일은 굉장히 희박한데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면서 누가 가입 하겠냐”면서 “산재보험 자체도 문제다. 또 근로 계약이든 도급계약을 체결한 예술인이 선택적으로 가입하도록 돼 있는데 산재 보험료가 100% 본인 부담으로 돼 있어 사실 해택이랄 것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난 18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예술인 지위와 관련한 법안(새누리당 정병국 의원, 민주통합당 서갑원, 최종원, 전병헌 의원)들을 살펴보면, 여·야를 떠나 “예술인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한다”며 4대보험 적용을 포함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직업 예술인들을 법적으로 근로자(또는 유사 근로자)의 신분을 보장해 줌으로써 국민 4대보험 가입 대상자로 편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 전병헌 의원 역시 2009년도 문화예술인실태조사를 근거로 “조사 대상자의 59.2%만이 국민연금 등 각종 공적연금에 가입했으며 고용보험은 28.4%만이 가입돼 있는 등 노후 대비나 실직에 대한 대책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라며 “예술인의 건강보험과 고용보험 등에 있어서 특례적 가입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4대 보험 적용이 축소됐다.

문화관광부 관계자는 “18대 국회에서 경총과 환노위의 반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재보험의 경우에는 골프장 캐디, 택배기사 등을 특례로 인정해주는 사례가 있었으나 고용보험은 특례가 없었다”며 “예술인에 고용보험을 특례로 한다면 다른 취약 직종도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적용에 대해서는 “현행법으로도 예술인의 가입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사실상 고용보험이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문화부에서는 고용보험이 제도상 어렵다면 예술인복지재단의 사업을 통해 실업급여를 어느 정도 지원하는 방법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문화부는 355억 원의 예술인복지재단 예산을 신청, 기재부와 협의 중에 있다.

영화산업노조·문화연대 “예술인복지법, 전면재개정 해야”

그러나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및 문화연대 등은 <예술인복지법>과 관련해 사실상의 전면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설립 정도가 유일한 성과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홍태화 조직국장은 “<예술인복지법>에 근로자 의제에 대한 부분이 빠졌다”면서 “예술인들의 산재와 고용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전면개정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태화 조직국장은 “‘예술인’이라는 정의에서부터 법 취지와 어긋난다”며 “영화 쪽만 보더라도 예술인복지법을 통해 혜택을 받는 이들은 배우와 감독, 작가뿐이다. 촬영, 조명, 분장, 의상 등 현장 스태프들은 다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말 어려운 예술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 역시 “예술인의 정의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예술인복지법>에서 사실은 예술인복지재단 설립이 유일한 성과”라며 “해당 법은 노동권이나 결사의 자유, 문화다양성 측면에서 완결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이원재 사무처장은 “문화예술계와 내부 소통을 통한 <예술인복지법> 전면개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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