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다" "이 자리에 있지 않겠다"

▲ 14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명장 수여식에서 김재우 방문진 이사가 옷을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의 김재우 이사장은 27일 이사장 선출을 위한 방문진 회의에 참석해 위와 같이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재우 이사장은 논문표절 논란을 의식한 듯 회의에 참석하자마자 스스로 "단국대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으며, 회의 도중 야권 이사들이 "어떻게 책임진다는 거냐?"고 따지자 "이 자리에 있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김재우 이사장은 야권 이사들의 동의도 얻어 27일 9기 방문진 신임 이사장으로 조건부 선출됐다. 김재우 이사장이 2005년 단국대로부터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 '한국주택산업의 내장공정 모듈화에 관한 연구'는 최근 학술단체협의회로부터 "매우 심각한 수준의 표절"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논란이 거세지자 단국대도 표절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 9월말경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김재우 이사장은 이 조사의 결과에 따라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

김재우 이사장은 8기 방문진 이사장 재직 시절 고급 승용차 교체, 유류비 과다사용, 경조사비 과다지출, 고액연봉 비서채용 등 공금유용 문제를 지난해 방문진 내부 감사에서 지적받은 전력이 있다. 그 밖에도 김재우 이사장은 법인카드 남용 등의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아예 이사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셌으나 끝내 이사장 연임을 거머쥔 것이다.

김재우 "책임진다"면서도 전제에 대해서는 '불분명'

그러나 단국대의 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김재우 이사장이 자진사퇴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일단, 김재우 이사장이 "단국대 조사 결과가 나오면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다'는 것의 전제가 '학위 취소'인지 아니면 '표절 판명'인지 자체를 분명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권 이사들은 김재우 이사장의 발언을 "표절로 판명되면 자진사퇴한다"로 해석한 데 비해, 여권 이사들은 "(이사장의 거취에 대해) 백지상태에서 재논의하겠다는 것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등 벌써부터 해석의 차이가 극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야권 추천의 최강욱 이사는 27일 회의 직후 기자들 앞에서 "김재우 이사장이 '표절로 판명된다면 책임지겠다'고 해서, 우리가 '자진사퇴하지 않는다면 불신임안을 제출하겠다'고 했다. 이에 나머지 이사들도 동의하면서 조건부로 이사장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여권 추천의 김광동 이사는 28일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야권 이사들의 주장은) 자의적이고, 희망이 반영된 것"이라며 "단국대 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 백지상태에서 재논의하기로 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방문진 관계자는 28일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김재우 이사장이 '단국대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다'고 했지만 '책임'을 지는 전제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 하지 않았다. 전제 자체가 불투명하다"며 "'표절 판명시 자진사퇴' '백지상태 재논의' 등 여야 이사들이 각각 말하고 있는 것은 회의 과정에서 모두 나왔던 이야기"라고 전했다. 그는 "3시간 동안 별별 이야기들이 다 있었고, 서로 명확하게 합의문을 만들어서 도장을 찍은 게 아니라 이사들이 각자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여권 이사들, 자기네끼리 '대책회의'

김재우 이사장을 비롯한 여권 이사 6명이 "9월 말 경 단국대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당분간 임시 이사장 또는 권한대행 체제로 가자"는 야권 이사들의 요구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여권 이사들 사이에서 '김재우 체제'를 계속 끌고가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14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김재우 이사(오른쪽 네번째) 등 이사 9명이 임명장 수여식을 기다리고 있다.ⓒ연합뉴스

여권 이사 6명은 27일 오후 공식 회의에 앞서 40여분간 따로 모여 논의하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27일 오후 3시로 예정됐던 방문진 이사회는 40여분 늦게 시작됐다. 여권 이사들이 이사장 선출을 앞두고 '대책회의'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실제로 여권 이사 6명은 모임 직후 이사회에 참석해 "논문 표절 논란은 방문진 이사장 업무 수행과는 관계없다"고 주장하는 등 이사장 선출을 밀어붙였다.

28일 김광동 이사는 '조건부 재선출'이라는 표현에 대해 "편의적으로 언론들이 붙인 표현일 뿐"이라며 "이미 김재우 체제는 들어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광동 이사는 "임시 국회의원, 임시 장관, 임시 기자가 없듯이 임시 이사장도 없다. 김재우 이사장은 이미 신임을 받았고, 이사회 수장으로서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며 "이미 김재우 이사장은 박사학위 논문에서 각주를 달지 못한 것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했다. 단국대 조사 결과를 통해 이 부분이 확인된다고 해서, 이사장이 자진사퇴까지 해야 하는가"라고 밝혔다.

신 여권 이사도 "논문표절, 방문진 업무수행과 무슨 상관?"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었던 신 여권 이사 3명의 선택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김재철 사장을 비호했던 8기 방문진의 김광동, 김재우, 차기환 이사와 달리 김용철, 김충일, 박천일 이사 등 신 여권 이사 3명은 김재철 사장 퇴진 등 MBC 정상화 문제에 있어서 8기 이사들과 다른 선택을 하지 않겠느냐는 시선이 있었으나 이들 역시 8기 방문진 이사들과 다를 게 없었다.

회의 참석자에 따르면, 김재우 이사를 이사장으로 추천한 김광동 이사 외에 새롭게 선임된 여권 이사들도 "논문표절은 방문진 이사장의 업무수행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박천일) "나중에 거취 표명하겠다는데 왜 그러느냐"(김용철) "충분히 문제제기가 됐으니 일단 믿고 가자"(김충일)며 '김재우 이사장 만들기'에 앞장섰다. 야권 추천의 최강욱 이사는 김재우 이사(44년생)를 제외한 이사들 가운데 최고 연장자인 김용철 이사(49년생)를 이사장으로 추천하기도 했으나, 김용철 이사는 이사장 후보에서 자진사퇴하면서 이사장직을 김재우 이사에게 넘기기도 했다. 김용철 이사는 MBC 부사장 출신으로서, 2007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언론 관련 자문을 담당한 커뮤니케이션 위원회에 참여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MBC 관계자는 "논문표절, 법인카드 남용 문제는 상식선에서 현재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단국대의 발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황당하다"며 "새로운 여권 이사 3명도 8기 방문진 이사들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부패구조를 제도화하는 거수기일 뿐"이라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야권 이사들에 대해서도 "아무리 숫자가 적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며 "김재우씨가 '책임진다'고 했지만, 나중에 대충 뭉개더라도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된 것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진상조사 소위 구성 등 김재철 퇴진 문제도 불투명

김재우 이사장이 연임에 성공하면서 김재철 MBC 사장 퇴진도 어렵게 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MBC노조는 김재우 이사장 선출 직후 성명을 내어 "방문진 이사로서 전혀 자격이 없는 자가 이사장을 연임하게 된 것은 끝을 모르는 비리의혹과 노동조합 탄압으로 악명을 떨친 김재철을 보호하라는 청와대의 특명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언론노조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역시 자신의 대선 가도를 위해 현재의 언론장악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밝혔다. 민언련 역시 28일 "김재우 이사장 연임은 그동안 MBC 정상화를 기원해온 국민들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는 행위이자, 앞으로도 계속 MBC를 불법부당하게 장악해 정권의 주구로 악용하겠다는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낸 처사"라고 말했다.

새롭게 출범한 9기 방문진 이사회는 내달 6일 김재철 MBC 사장과 관련한 진상조사 소위원회 구성을 논의할 계획이지만, 여야 이사들이 합의를 이룰지는 미지수다. 여권 추천의 김광동 이사는 "김재철 사장 건만을 놓고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할 수는 없다고 본다"며 "MBC의 공정성 확립, 노조의 정치세력화 혹은 정치편향의 문제도 함께 검토해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김재철 MBC 사장 진상조사 소위원회 구성 안건은 야권 추천의 최강욱 이사가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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