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으로서의 한겨레신문의 생존조건!

오늘(15일)은 한겨레신문 창간 20주년이다. 이 땅의 모든 민중, 독자 그리고 6만명의 주주들과 함께 진심으로 창간 20주년을 축하한다.

한겨레신문 창간 20주년을 이틀 앞둔 13일에는 한국언론학회(회장 권혁남 전북대 교수)가 ‘한겨레와 한국사회 20년’이란 제목으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한마디로 한겨레신문이란 창문을 통해 한국사회가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차분하게 되돌아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좋은 기회였다.

▲ 한국언론학회 주최와 한겨레신문 후원으로 '한겨레와 한국사회 20년' 심포지엄이 지난 1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개최됐다. ⓒ송선영

잘 짜여진 세 명의 언론학 교수의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깊이 있는 발제와 분석 및 전망에 이어 중견 역사학자, 정치학자, 사회학자, 언론학자 그리고 현직 기자 등이 지정토론자로 참석해 알찬 토론을 벌였다.

20층 국제회의장을 메운 방청석의 열기도 뜨거웠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방청객 대부분이 40대 이상의 장년층이었고 특히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점이다.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 한겨레신문이 우리 사회가 암울했던 군부독재 시대를 넘어 민주화로 나아가는데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한겨레가 20년 전 창간 당시의 발행 목적과 창간 정신 등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한국 사회와 한국 언론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으로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데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였다. 이것은 지난 20년 동안에도 한겨레신문 안팎에서 고민해 온 것이기도 하다. 이른바 ‘고급 정론지’와 ‘진보적 대중지’ 중 어느 것을 지향할 것인가와 관련해서는 발제자와 토론자들 사이에서도 약간씩 의견이 달랐다.

언론학자들의 입장에서는 각각 개념을 어떻게 정리하든 ‘고급 정론지냐, 진보적 대중지’냐가 의미있는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또 ‘규모의 경제’가 작동할 수 있는 적정한 부수가 몇 십만부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놓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기자는 한겨레신문의 생존과 관련한 이 논쟁에 대해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 다소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런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한겨레신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신문 시장과 신문 업계 전체의 처참한 현실이 그런 논쟁을 무의미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날 토론회의 촛점이 한겨레신문의 기사 즉 결과물(소프트웨어 혹은 상부구조)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기업으로서의 한겨레신문의 생존조건(하드웨어 혹은 하부구조) 등에 관해서는 살펴 볼 수 없었던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한겨레신문이 살아남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 한국일보 5월 8일자 33면

왜, 대도시에서 조차 변두리에서는 한겨레신문을 보기 어려울까?

기자는 고양시에서도 파주시와 바로 붙어있는 변두리 지역에 있는 서민 아파트에 살고 있다. 집에는 한겨레신문 1부와 동아일보 2부가 들어오고 있었다. 경향신문은 사무실에서 보고 있다. 14일에 이어 오늘(15일) 아침에도 한겨레신문은 배달되지 않았다.

여기에 한겨레신문이 처한 현실과 우리나라 신문시장의 구조적 모순과 독점의 폐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한겨레신문의 생존조건과도 맞닿아 있다.

동아일보를 1년 6개월 이상 구독하다가 3일 전에 구독정지를 통보했다. 그 다음날부터 동아일보는 들어오지 않고 있는데 덩달아 한겨레신문까지 배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 한겨레신문과 동아일보를 같은 지국에서 배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 신문시장의 현실이다.
구독시장은 물론이고, 광고, 판매 및 배달시장까지 조선, 동아, 중앙 등 이른바 족벌신문들이 고스란히 장악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족벌신문들의 일부 지국에서는 일부러 같이 배달하고 있는 다른 부수가 작은 신문들을 일부러 배달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나서 사정도 모르고 결배에 화가 난 독자들에게 현금이나 상품권 제공과 무료구독기간 6개월 이상 제공을 전제로 신문을 바꾸라고 제의한다.

2년 동안, 조중동 세 신문에서 13번의 상품권과 현금 받아

동아일보는 왜 2부를 구독하게 됐는가? 지난 2년 동안 기자가 사는 집에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세 신문으로부터 무려 13번의 현금과 백화점 상품권을 받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13번 구독계약을 체결했다. 그 중 동아일보로부터 받은 것이 3번이다. 3번 계약을 한 것이다. 그런데 지국에서 계약을 지키지 않고 신문을 2부만 배달해 왔다. 왜 3부를 전부 배달해 주지 않느냐고 지국에 물으니, 본사에서 한 집에 2부 이상은 배달하지 말라고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 한국언론학회 주최와 한겨레신문 후원으로 '한겨레와 한국사회 20년' 심포지엄이 지난 1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개최됐다. ⓒ송선영

동아일보는 2부라도 배달해 주니까 그나마 나은 편이다. 조선과 중앙은 아예 배달 자체를 하지 않는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와 각각 5번의 계약을 체결했다. 기자의 신분이 알려진 이후 본사에서 지국에 기자의 집에는 무조건 신문을 배달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조선과 중앙은 계약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조선과 중앙일보를 상대로 민사상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검토 중이다.

조중동으로부터 13번의 경품을 제공받고 이 중 2건을 신고해 포상금 243만원을 받았다. 나머지 경품은 한꺼번에 신고하기 위해 보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겨레신문의 첫번째 생존조건과 장애물이 등장한다. 가설이라고 해도 좋다. 신문이란 상품이 좋으면, 즉 양질의 기사와 컨텐츠만 생산하면 신문이 팔리는가? 독자들이 한겨레신문을 많이 볼 것인가? 대답은 “아니다”

한겨레신문의 최고경영진들은 지난 20년 동안 이 잘못된 가설에 근거해 경영해 왔다. 이것이 한겨레신문의 경영 위기의 첫 번째 이유다. 한겨레신문 경영 위기의 주요 원인이 컨텐츠에 있지 않다는 얘기다.

부수가 갑자기 늘어나면 유동성 위기가 올 수 있다

두 번째 잘못된 가설. ‘신문 부수만 늘어나면 무조건 매출이 늘고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가설이다. 2-3년 동안 장기적으로 꾸준히 신문 부수가 늘어나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부수가 갑자기 늘어난다고 해서 매출이 바로 늘어나지 않는다. 종이값 등 제작비용만 늘어나고 광고수입 등은 부수가 늘어난 것과 비례해 늘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잘못하면 유동성 위기만 초래할 수 있다.

왜? 신문 부수가 늘어나면 구독료 수입이 대폭 늘어야 하는데 신문구독료가 제조원가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신문이 많이 팔릴수록 손해가 날 수 있다. 그러면 조중동 등 족벌신문들은 왜 부수 늘리기에 집착하는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신문을 찍을 돈이 있고, 둘째는 신문을 많이 뿌리고 대기업과 재벌 광고를 ‘독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중동에 의한 신문 구독, 배달 및 광고 시장의 독점과 제조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구독료, 이 두가지 때문에 한겨레신문은 세 번째 장애물을 만날 수밖에 없다. 전체 매출액 중에서 광고 수입과 구독료 수입의 비중이 97-98년 IMF 외환위기 전에는 ‘8: 2’이던 것이 지금은 9:1이 됐다.

불법 판촉 행위 근절 못하면 한겨레신문의 미래는 없다

▲ 도시에서는 불법경품 제공으로 이렇게 시정명령을 받고 시골에서는 경쟁에 끼지도 못하는 동아일보. ⓒ김훤주
이런 구조에서는 한겨레신문은 근본적으로 경영난을 타개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한겨레 경영진은 신문 경영의 하부구조인 시장 정상화, 즉 조중동 등 족벌신문들의 불법 판촉행위 등에 대해 전면적이고 집요한 싸움을 하지 않았다.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라는 슬로건으로 많은 민중들을 감동시켰던 20년 전 창간 정신만으로 한겨레신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기자가 보기에 한겨레신문의 컨텐츠는 경쟁력이 있다. 전혀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신문시장에서 조중동 등 부자신문들의 약탈적인 불법 판촉행위를 바로잡지 못하면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상대적으로 부수가 작은 신문들의 미래는 없다. 생존 자체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한다.

한겨레신문 창간 20주년이 되는 날에 독자로서 마냥 축하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년 뒤에 한겨레신문이 창간 30주년 기념행사를 가질 수 있을 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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