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자놀이> 책이 출판되면서 열린 6일 기자간담회의 모습 ⓒ연합뉴스

2012년 8월 6일 나온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의자놀이>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의자놀이’ 공식계정 @musical_chair에 따르면, 8월 23일 현재 <의자놀이>는 알라딘에선 종합 1위를 하고 있고 다른 서점에선 교보문고에서 3위를 찍는 등 온라인서점 순위 2위에서 4위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공지영 작가가 트위터에 밝힌 바에 따르면 발간 10여 일이 지난 8월 17일에 3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고 한다. 이는 작년 ‘희망버스’로부터 시작된 시민사회와 누리꾼들의 노동문제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이어가는 긍정적인 사건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의자놀이>의 판매호조 뒤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의자놀이 스캔들’도 있다.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하종강과 르포작가 이선옥이 공지영과 출판사 측에 제기한 잘못된 인용의 문제다. 이 사건은 트위터 등 인터넷 세계에선 큰 이슈가 되었지만 언론에서 보도가 되지는 않았다. 사건 초기 중앙일보 인터넷판에서 보도된 것이 전부이고 진보언론에선 전혀 보도가 나오지 않았다. 프레시안 북스에 자유기고가 노정태가 <의자놀이> 서평을 쓰면서 논란에 대해 평한 것과 한겨레21 ‘이주의 트위터’ 지면에 문화평론가 이택광과 한겨레 이재훈 기자가 해당 주제로 쓴 것이 전부다. 이것들의 특징은 죄다 ‘외고’란 것이다.

진보언론에서는 이 일을 사소한 일로 치부하고 <의자놀이>가 제기하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에 집중하자는 판단을 내렸다 생각할 수 있다. 그 판단은 존중할 만하다. 사건 당사자들인 하종강과 이선옥은 이 일이 널리 퍼지길 바라지 않아 취재요청을 거부하는 상황이라 기사화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는 당사자 간의 협의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었던 문제가 논쟁이 지속되면서 진보담론과 한국 출판산업의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미디어스는 책을 만드는 편집자들에게 이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묻기로 했다. 그리고 이 기사는 의견을 묻기 전 사건을 모르거나 피상적으로 아는 이들을 위한 '의자놀이' 스캔들에 대한 요약정리다.

<의자놀이>엔 여러 필자의 글과 기사가 인용되어 있다. 책 앞날개를 보면 “이 책은 여러 사람의 자발적인 재능기부로 만들어졌으며, 인세와 판매 수익금 전액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후원금으로 기부됩니다”라고 적혀 있다. 공지영 작가는 인세를 기부하고 출판사 역시 10만 부까지는 수익금을 기부하기로 한 상황이다. 인용에는 주석은 달려 있지 않지만 인용 끝에 출처 및 날짜를 표기했고 책 뒤의 “출처 및 참고자료”에 일괄적으로 한 번 더 표기했다.

책 출간에서 문제 제기까지

그런데 책 22쪽에서 24쪽에 실린 하종강의 경향신문 칼럼에 대한 인용만이 달랐다. 본문에는 누구 글이라는 표기가 없어서 마치 공지영이 쓴 글처럼 되어 있고 칼럼 내용을 가져다 쓰면서 어떤 부분은 공지영이 말을 덧붙이는 식으로 가필도 되어 있다. 하종강은 출판사로부터 인용의 허락을 구하는 전화만 받았다. 편집자가 "선생님 칼럼을 싣겠습니다"라고 하기에 부록에 싣는 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종강이 자신의 칼럼이 르포작가 이선옥의 글을 기반으로 쓴 거란 사실을 굳이 출판사 측에 알릴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선옥의 취재내용이 공지영의 경험처럼 둔갑한 상황이 되었다.

이후 상황을 공지영, 하종강, 이선옥 등이 인터넷 게시판과 트위터에 올린 해명서를 통해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선옥은 8월 5일 대한문 분향소에서 <의자놀이> 책을 살펴보다 이 문제를 발견한다. 그녀는 친분이 있는 해고노동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해고노동자는 바로 공지영에게 연락해 이 사실을 알렸다. 이때 해고노동자로부터 이선옥은 본문에 다른 사람 글인 걸 표시하지 않은 이유는 문장 흐름상 그랬다는 답변을 돌려받았다.

한편 출판사는 6일에 그 해고노동자를 통해 이선옥의 문제 제기를 듣게 된다. 출판사는 7일에 이선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했다. 이 통화에서 이선옥은 공지영의 입장에 대해 물었고 출판사는 공지영 작가가 상황을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 이선옥은 이미 그저께 사적인 채널로 공지영에게 사실을 알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답변을 듣고 공지영과 출판사 측에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 몇 시간 후의 통화에서 출판사 측은 공지영이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원하는 대로 해 드려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선옥은 이 답변이 작가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라 느꼈다고 한다.

그 후 이선옥은 하종강과 의논해서 공동대응을 하기로 했다. ‘원하는 것’을 이메일에 적어서 보내기로 하고, 7일 자정쯤에 메일을 보냈다. 메일의 내용은 두 개의 문제제기와 두 개의 요구로 이루어져 있다. 두 개의 문제 제기는 하종강의 글을 공지영의 글처럼 오해받게 쓴 것에 대한 항의와 자료조사를 많이 한 공지영이 이선옥의 글을 모르고 인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그리고 두 개의 요구는 문제가 된 글을 삭제해 달란 것과 제작된 책을 배포 중지하고 이미 배포된 책은 가능한 한 회수해 달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작가의 입장을 듣고 싶으니 메일 내용을 공지영에게도 전해달라 부탁했다.

다음날 오후 두 사람은 출판사 사람들과 만났다. 출판사 대표는 관행에 따르면 두 사람의 요구가 과도한 것은 아니나 3만 부의 책이 시중에 깔린 상황에서 회수가 어렵다고 양해를 구했다. 편집 책임자는 보름 동안 월급도 반납한단 심정으로 만든 책에 오점이 생겨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자정까지 출판사의 답변을 듣기로 했다.

저녁 무렵 출판사는 두 사람에게 출고가 안 된 3천 부 가량의 책은 낱장갈이를 해서 내겠다 하고 기존에 배포된 책들에 대해선 회수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겠다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협의를 통해 8일 자정 무렵 두 번째 메일을 보낸다. 두 번째 메일의 입장은 출판사나 저자가 이러한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것만을 공식적으로 밝혀주고, 새로 제작하는 책에선 문제의 부분을 삭제하고 그 사정을 설명하는 문구를 명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공지영 작가의 입장표명만 있었으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아쉬움도 함께 전했다. 두 사람은 결국 최초의 요구는 모두 철회한 셈이었다.

공지영의 트위터와 문제상황의 전파

그런데 두 사람이 출판사의 답변을 기다리던 그 시각 공지영은 트위터에 글을 쓰고 있었다.

이 트윗을 몇 시간 후에 본 하종강과 이선옥은 고민에 빠졌다. 고민 끝에 출판사와의 협의는 그대로 진행하되 공지영의 트윗에 대해서는 ‘찍소리’를 해보기로 했다. 하종강은 “이거 저한테 하는 말이죠? 잘못을 바로잡자는 요구를 이렇게 받아들이나요? 이처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일까지 벌어지지는 않기를 바랐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만드시는군요”라고 공지영에게 멘션을 보냈다. 이때부터 트위터리안들도 <의자놀이>와 관련해서 무언가 논란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공지영은 처음엔 DM에서 해당 트윗이 하종강과 상관이 없다고 변명했지만 얼마 후 올린 해명서에서 그 말을 뒤집었다.

출판사 편집부는 다음날인 9일 오후 1시에 ‘의자놀이’ 공식계정을 통해 하종강․이선옥과 합의한 대로 문제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사과문은 공지영의 글처럼 보이게 된 편집이나 가필의 문제는 제대로 적시하지 못했다. 어떤 인용문은 인용표시를 뒤로 돌렸고 이에 대해 하종강의 사전허락을 받은 것처럼 썼다. 이선옥 글의 ‘재인용’ 문제만을 편집과정에서 미처 알지 못하고 일어난 실수처럼 묘사했다.

한편 공지영은 편집부가 사과글을 올리기 전인 9일 오전에 또 다른 트윗을 썼다.

이 트윗 이후 하종강은 “거대한 문화권력에 맞서, 힘없는 르뽀작가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할 듯. 상처받고 많은 것을 잃겠지만 피할 수 없게 만드는군요.”라는 트윗을 썼다.

이후 상황은 공지영, 하종강, 이선옥이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해명하는 글을 올리며 논쟁이 전개되었다. 공지영이 먼저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글을 올렸고 이에 대해 하종강과 이선옥이 각자의 입장을 해명하게 되었다. 논란이 커지자 출판사는 저작권 전문가 김기태 교수에게 이 문제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를 문의하고 문제없다는 결론을 ‘의자놀이’ 계정에 소개했다. 가장 먼저 올라온 공지영의 해명은 보지 않으면 이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공개한다.

쳇바퀴 도는 논쟁

이 해명은 사과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하종강과 이선옥의 행동들을 비난하고 있다. 문제는 따옴표 안의 표현들이 정말로 그들이 한 말이냐는 것이다. 하종강과 이선옥이 공개한 두 건의 메일에서는 저런 표현들을 찾을 수 없다. 또 두 사람은 출판사와 대화를 하는 중에도 자신들은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물론 이 부분은 출판사의 증언이 없는 이상 객관적으로 확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외에도, 문제 제기를 노동판에 오래 있었던 이들의 텃세로 규정하거나, 쌍용차 노동자들의 사정을 들이밀며 두 사람의 문제 제기를 멈추게 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무엇보다 출판사 해명과 대동소이하게 자신의 인용이 어떤 부분에서든 문제가 된다는 인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시점에서 하종강과 이선옥 두 사람의 요구는 이미 출판사와 합의가 끝난 데다, 공지영은 위에서 인용한 ‘사과문’ 이후 자신의 행동들에 대해선 전혀 사과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논의는 어쩔 수 없이 평행선이다. 공지영이 ‘표절’ 내지 ‘도용’을 했는데 그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개탄하는 이들도 있고 쌍용차 노동자들의 문제가 엄연히 있는데 이런 싸움을 시작한 하종강과 이선옥을 비판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공지영 작가 지지자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하종강과 이선옥이 겪는 고초가 상당하다. 진보지식인 진중권 등도 트위터에서 공지영을 옹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출구전략'이 안 보이는 이 논쟁을 논점별로 분해해서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미디어스는 책을 만드는 입장에 있는 편집자들의 의견을 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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